정부, 한국형 국부펀드 설립 추진…반도체 지분규제 완화로 투자 숨통완화

구윤철, 기재부 대통령 업무보고
국유재산 1300조원 전략적 운용
반도체 대상 금산분리 규제 일부 완화

반도체 이미지 [헤럴드DB]


[헤럴드경제=배문숙 기자]정부가 내년 한국형 국부펀드 설립을 추진한다.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Temasek)’을 모델로 삼아 국유재산을 전략적으로 관리·운용해 가치 상승을 도모하고, 이를 미래 세대에 이전하겠다는 구상이다. 또한 반도체 산업에 한해 금산분리 규제를 일부 완화해 첨단산업에 대한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를 지원할 계획이다.

1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전날 세종시에서 열린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한국형 국부펀드를 설립해 1300조원 규모의 국유재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가치를 극대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의 미래 성장 분야이거나 예상 수익률이 10~20% 수준으로 높은 프로젝트라면, 부동산이든 산업이든 가리지 않고 투자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국부펀드를 내년 6월까지 설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구 부총리는 “물납으로 받은 주식도 재원이 될 수 있다”며 “테마섹도 초기에는 2억달러 규모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3200억달러로 성장했다. 작은 돈으로 시작해 수익률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국부펀드는 2005년 설립된 한국투자공사(KIC)가 유일하다. KIC는 위기 대비용 비상금인 외환보유액을 운용하고 있어 고위험·고수익 투자엔 한계가 있다. 반면 한국형 국부펀드는 정부 보유 국유재산을 활용해 미래 성장산업과 전략적 프로젝트에 공격적 투자를 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하게 된다.

싱가포르 테마섹은 미래 유망 산업과 글로벌 자산에 대한 광범위한 투자를 통해 국가 재정 기반을 강화한 대표적인 국부펀드 성공 사례로 꼽힌다. 테마섹은 1974년 설립 이후 올해 3월까지 연평균 수익률 약 15%를 기록, KIC의 4.8%보다 세 배가량 높은 성과를 보였다. 한국 정부는 이를 벤치마킹해 국내외 기업 인수·합병(M&A), 기술·산업 인프라 투자, 기업 성장 지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국부 확대를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기재부는 국유재산의 관리·처분 기준도 강화한다. 활용도가 낮은 재산은 제값에 처분하며, 할인 매각은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특히 300억원 이상 규모의 국유재산 매각 시에는 국회 상임위원회 사전 보고를 거치도록 하고, 부처별 매각 전문심사 기구를 신설하는 등 관련 관리체계를 정비할 방침이다.

이번 국부창출 방안에는 공공조달을 활용한 미래 산업 육성 계획도 포함됐다. AI, 로봇, 기후테크 등 분야에서 혁신제품 공공구매 목표를 2030년까지 연간 1조 원에서 3조 원으로 확대하고, 혁신제품 지정 수도 5000개까지 단계적으로 늘린다.

또 이날 보고에서는 금산분리 원칙은 유지하되, 지주회사 규제를 완화해 대규모 투자 자금 조달 통로를 확대하는 내용도 발표됐다. 반도체 업종에 한해 일반지주사의 손자회사가 자회사(증손회사)를 두려면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하는 규정을 지분 50%로 완화하고, 일반지주사도 금융리스사를 제한적으로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현행법상 일반지주사는 금융계열사를 둘 수 없다.

정부가 금산분리 규제를 직접 손대지 않겠다는 원칙을 밝힌 것은 기업 자율성과 금융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의도다. 구 부총리는 “금산분리 원칙은 전혀 손대지 않으면서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분야에는 자금 조달이 가능하도록 금융 측면 규제를 일부 합리화할 것”이라며 “투자 펀드가 기업 성장과 산업 혁신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규제 개선은 특히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반도체·AI·배터리·에너지 등 전략 산업의 투자 환경을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예컨대 SK하이닉스는 외부 자본을 활용한 특수목적법인(SPC) 설립이 가능해져 반도체 인프라 투자의 숨통이 트일 전망이며, 삼성전자 등 대기업도 투자 환경 개선의 간접적인 혜택을 기대하고 있다.

국가 간 무역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 대응해 국내 기업들의 해외 수출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다만 이를 통해 소수 기업만 혜택을 누리지 않도록 재정 지원을 받은 기업들이 얻은 이익의 일부를 환수해 ‘전략수출금융기금(가칭)’을 신설해 공유하도록 했다.

구 부총리는 “잠재성장률 반등과 양극화 극복을 위해 ‘2026년 경제성장전략’을 1월 중 마련하겠다”면서 “적극적 재정 정책과 소비·투자·수출 부문별 대책으로 ‘1.8%+α’의 성장을 뒷받침하고 외환 및 부동산 시장도 상시 점검체계로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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