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비만 70%…갈길 먼 배터리 재사용

‘배보다 배꼽 큰’ 폐배터리 재사용
엄격한 KC인증에 검사비용도 과도
모듈 아닌 ‘셀 단위’ 검사 한국 뿐
‘순환경제’ 구호속 재자원화는 먼길



“제품원가가 100원인데, 인증비용이 70원이 되는 게 말이 됩니까”

최근 폐배터리 재사용 사업을 하는 한 중견 업체 대표의 발언이다. 배터리의 가장 작은 단위인 셀단위의 충·방전 물리검사가 기본으로 요구되는 현재의 인증 절차를 밟고나면, 대표 수중엔 인증비 영수증만 남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폐배터리 시장은 올해 3조원 규모에서, 2050년 600조원 규모로 커질 것이란 관측이다. 전기차 교체 시기 등을 고려하면 시장 폭발 시기는 2020년 후반으로 전망된다. 시장에선 차량용 배터리를 다시 써보겠다는 산업이 KC 인증 장벽 앞에서 “사업이 아니라 벌칙”이 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관련기사 3면

▶“제품 원가 70%가 인증비”=에너지저장장치(ESS) 제조기업 (주)모비 이형규 대표는 최근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차량용 배터리를 재가공해 판매하는 사업은 국내에선 사실상 불가능한 형편이다. 제품 원가가 100원이면 이 가운데 70원이 인증비가 차지하는 기형적 구조”라며 “과도하게 엄격한 인증제 때문에 사업성이 낮다고 판단한 기업 여러곳이 손을 들고 나갔다”고 말했다.

차량용 배터리 재사용 사업은 전기차 시장 확대 덕에 사업 가능성이 큰 시장으로 각광 받았다. 통상 전기차에 들어가는 차량용 배터리의 수명은 5년(최고 성능의 70% 이하)이고, 이를 넘기면 교체 필요시점으로 알려진다. 2010년대 후반부터 전기차 보급이 확대됐고, 차량에 탑재됐던 배터리들 역시 재활용 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오는 시점이다. 문제는 배터리 재가공에 필요한 KC인증이 과도하게 ‘안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현행 배터리 인증 기준(KC10031)은 지난 2023년 국가기술표준원이 도입했다. 해당 기준에 따르면 전기차에 사용됐던 배터리를 재가공해 사용키 위해선 사실상 배터리를 셀 단위 재인 증을 거쳐야 한다. 차량용 배터리는 가장 작은 단위인 셀, 셀을 모아 만든 모듈, 모듈을 연결한 팩 등으로 구성되는데 KC 인증은 이 가운데 가장 작은 단위인 셀에 대한 전수조사 재인증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측의 주장이다.

신품 인증보다 재사용 인증이 과도하다는 비판도 그래서 나온다. 배터리 신제품은 ‘샘플링’ 조사를 하지만, 재사용의 경우엔 ‘전수조사’가 기본이 된다. 이처럼 재사용 KC인증이 엄격한 이유는 신제품 배터리는 원료 단위에서의 통제가 가능하지만, 재사용의 경우엔 배터리의 상황과 규격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모든 배터리를 꼼꼼하게 재조사하게 되고, 그래서 배터리 재가공 사업의 경제성이 낮아지게 되는 구조다.

특히 KC 시험 항목은 과충전·과방전·단락·절연·열충격 등 다수의 세부 시험으로 구성돼 있는데, 셀 하나라도 불량이 발견되면 모듈 전체가 불합격 처리된다. ESS 업계 한 관계자는 “셀 단위 시험을 위해 충전과 방전에만 8시간이 걸리고, 여기에 안전·환경 시험까지 더하면 1개 모듈 검사에만 최소 일주일이 소요된다. 인증기관 수도 적어 병목현상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EU 소프트웨어 진단=해외 주요국의 제도와 비교하면 차이는 더 두드러진다. 유럽연합(EU)은 재사용 배터리를 모듈·팩 단위로 평가하며 BMS(배터리관리시스템) 데이터를 기반으로 잔존수명을 판단한다. 미국 역시 기준(UL 1974)에 따라 비(非)파괴 검사 중심으로 ‘그레이딩(등급 분류)’ 방식의 검증을 시행하고 있다. 중국은 국가 단일 BMS 이력관리 시스템을 통해 모듈 단위 검증을 수행한다.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핵심광물에 대한 재자원화율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정부는 올해 3월 ‘핵심광물 재자원화 활성화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지난해 기준 재자원화율은 평균 7%에 불과하다. 재자원화율 목표치 달성을 위해서라도 배터리 재사용은 필수적이다. 한국환경연구원(KEI), 환경부 등은 전기차 증가로 차량용 배터리 배출량이 올해 8321개에서 2030년 10만7500개로 급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회와 정부도 배터리 재사용 문제 해결에 힘을 모으고 있다. 배터리산업협회, 배터리 3사, 완성차, 사용후 배터리 전문기업, 보험개발원, 환경공단, 교통안전공단 등으로 구성된 배터리얼라이언스가 지난달 14일 ‘사용후배터리 통합 관리 체계안’을 정부에 제출한 바 있다. 업계는 민간 중심의 사용후 배터리 통합 관리체계를 위해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 안전화 및 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제정을 정부에 제안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업계 의견을 받아들여 조만간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한편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 1일 중소기업 업계를 만나 현장 목소리를 청취했다. 중기중앙회는 중기 현장 과제 100건을 전달했고 ‘배터리 인증’ 문제 역시 과제에 포함됐다.

홍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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