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아야 본다” 유명 감독·아이돌도 가세…진격의 ‘숏드’

이준익·이병헌 등 유명 감독 숏드 제작
메이저 배급사도 합류…“콘텐츠 다각화”
국민 절반 이상 “숏폼 본다”…주류 부상

 

숏드라마 ‘와인드업’ 포스터 [테이크원컴퍼니 제공]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나는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없는 투수다.”

과거 트라우마 탓에 입스(Yips, 특정 동작을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하지 못하는 상태)가 온 고교 투수 유망주 ‘우진’. 어느 날 그의 앞에 우진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는 전학생 ‘태희’가 나타난다. 우진의 매니저가 돼주겠다며 껌딱지처럼 그의 곁에 불쑥불쑥 나타나는 태희. 그런 태희의 등장과 함께 우진의 어두운 터널에 빛이 들기 시작한다.

지난 16일 숏드라마 ‘와인드업’은 숏폼 플랫폼 킷츠(KITZ)의 오리지널 작품이다. 야구를 소재로 한 고교 청춘의 성장물로, 보이그룹 NCT의 제노와 재민이 각각 주인공 우진과 태희를 연기했다.

편당 1~2분짜리 짧은 호흡의 ‘숏드라마‘들이 콘텐츠 시장을 무섭게 집어삼키고 있다. 특히나 올해 들어 영화나 드라마 경험이 있는 연출·제작자와 배우, 그리고 유명 아이돌 등 이른바 ‘주류’ 플레이어들의 숏폼 시장 진출이 이어져 주목된다.

숏폼 플랫폼 론칭 릴레이…감독도, 아이돌도 ‘숏드 行’

28일 콘텐츠 업계에 따르면, ‘왕의 남자’(2005)로 1232만 관객을 동원한 이준익 감독은 올 초 숏드라마 ‘아버지의 집밥’ 촬영에 들어간다. ‘황산벌’(2003), ‘왕의 남자’ 등에서 이 감독과 여러 번 호흡을 맞춰온 배우 정진영과 ‘자산어보’(2025)에 출연했던 이정은과 변요한 등이 대본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모두 숏드라마는 처음이다.

‘아버지의 집밥’은 아내가 사고 후 ‘요리 백지증’에 걸리면서 남편이 집밥을 담당하게 되는 이야기로, 가족이란 관계의 변화와 인물의 성장기를 함께 다룬다.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다. 이 감독의 숏드라마 도전은 웹툰·웹소설 플랫폼 레진코믹스, 봄툰 등을 운영하는 콘텐츠기업 키다리스튜디오의 제안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내달 4일 론칭 예정인 숏폼 플랫폼 ‘레진스낵’

앞서 키다리스튜디오의 자회사인 레진엔터테인먼트가 내달 4일 숏드라마 전문 플랫폼 ‘레진스낵’을 론칭한다고 밝혔다. 제작에는 영화 투자·배급 및 콘텐츠 제작 경험을 축적해 온 키다리스튜디오가 직접 참여한다. 레진엔터테인먼트는 ‘레진스낵’을 통해 숏드라마에 진출, 기존 웹툰·웹소설 플랫폼을 통해 검증된 웹툰 지식재산권(IP)을 영상화한 작품과 그 밖의 오리지널 작품 등 폭넓은 콘텐츠 라인업을 선보이겠다는 계획이다.

야심찬 출사표에 걸맞게 제작진 라인업도 화려하다. 이준익 감독과 더불어 영화 ‘극한직업’(2019),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이병헌 감독이 숏드라마 ‘애 아빠는 남사친’으로 레진스낵의 출발을 함께 한다. 4일 플랫폼 론칭과 함께 공개되는 ‘애 아빠는 남사친’은 연애도 결혼도 안했지만 육아는 함께하는 남사친과 여사친의 이야기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 신예 최효주가 주인공 ‘제아’를, 남사친 ‘구인’에는 김신비가 캐스팅됐다.

지난 16일 론칭한 숏폼 플랫폼 킷츠는 K-팝 아티스트 주연의 작품을 선보이며, 기존의 숏폼 드라마들과 차별화를 꾀한다. 플랫폼 론칭과 동시에 그룹 NCT의 멤버를 앞세운 프리미엄 드라마 ‘와인드업’을 공개한 데 이어 다음 달에는 그룹 베리베리 강민이 주연하는 ‘점프보이 라이브(LIVE)’를 선보인다. 인플루언서를 꿈꾸는 과학고 꼴찌 아웃사이더가 우연히 얻은 순간이동 능력을 통해 ‘라이브 히어로’로 거듭나는 청춘 성장기다. ‘메스를 든 사냥꾼’으로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에 진출한 이정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올 상반기 쇼박스가 선보일 숏드라마 2편. 좌측부터 ‘브라이덜샤워: 사라진 신부’, ‘망돌이 된 최애가 귀신 붙어 찾아왔다!’ [쇼박스 제공]

메이저 배급사도 팔을 걷어붙였다. 국내 4대 영화 배급사 중 하나인 쇼박스는 최근 첫 숏드라마 제작에 나서며 숏폼 시장 진출을 알렸다. 올 상반기 숏드라마 ‘브라이덜샤워: 사라진 신부’와 ‘망돌이 된 최애가 귀신 붙어 찾아왔다!’를 선보인다. 두 편 모두 지난해 12월부터 제작에 들어간 상태다.

‘브라이덜샤워: 사라진 신부’는 결혼식 이틀 전 브라이덜 샤워를 끝낸 직후 실종된 신부를 찾아나서는 세 친구의 코믹 추적 스릴러다. 신예 김준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고, 사라진 신부 ‘왕주연’ 역은 걸그룹 달샤벳 출신 배우희가 연기한다.

‘망돌이 된 최애가 귀신 붙어 찾아왔다!’는 가수를 꿈꿨던 여고생 귀신에게 빙의 돼 완벽한 재능을 얻게 된 한 무명 아이돌과, 그의 오랜 팬이자 무당인 주인공이 펼치는 좌충우돌 로맨스를 그린다. 그룹 골든차일드 출신 최보민이 아이돌 ‘도하’ 역에 캐스팅됐다.

쇼박스는 영화·드라마 분야에서 쌓아온 기획 및 제작 노하우를 바탕으로, 향후에도 숏폼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최근 글로벌 숏폼 드라마 플랫폼인 ‘드라마박스’, ‘비글루’와 콘텐츠 공급을 위한 업무협약(MOU)도 체결, 유통망까지 확보한 상태다.

쇼박스 측은 “앞으로도 다양한 시도를 통해 영상 콘텐츠 분야에서의 제작 및 투자 유통을 다각화할 예정”이라며 “두 작품을 시작으로 차후 국내는 물론 글로벌 숏폼 드라마 시장도 적극 공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비주류에서 주류로…숏폼의 고속 성장

 

숏폼 플랫폼 ‘비글루’ 2025년 연말 결산 [스푼랩스 제공]

전통 영화·드라마 제작 인력의 숏드라마 진출은 숏폼이 ‘주류 콘텐츠’로 부상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숏폼이 일상화되면서, 대중과 가장 빠르고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미디어로서 숏폼의 정의가 재정립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숏폼이 콘텐츠 소비자들의 일상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여러 조사에서 드러난다.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전국 10세 이상 국민 655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5 콘텐츠 이용 행태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절반 이상(58.6%)이 숏폼 콘텐츠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숏폼 시청의 가장 큰 이유로 ‘짧아서 부담이 없어서’(76%)를 꼽았다.

숏폼 소비 시간도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 5일 스푼랩스의 숏폼 드라마 플랫폼 ‘비글루’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숏드라마 시청 시간은 200만 시간을 돌파했다. 전세계로 넓히면 총 시청 시간은 500만 시간이 넘는다. 최혁재 스푼랩스 대표는 “지난해는 숏드라마가 일상 속 새로운 몰입 콘텐츠로 자리 잡는 과정을 이용자들과 함께한 의미 있는 해였다”고 짚었다.

업계에서는 숏폼의 부상과 제작 인력의 이동을 전통 매체의 몰락이 아닌 콘텐츠 시장의 ‘새 가능성’으로 봐야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숏폼은 영화의 입장에서 위기이기도 하지만 기회이기도 하다”면서 “기존의 제작시장서 노하우를 익힌 제작 인력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새 영역이 커지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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