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곳 중 1곳 거래대금 ‘0’…‘K자 증시의 그늘’ [이슈&뷰]

코스피 더 벌어진 양극화
코스피 ‘워시쇼크’ 딛고 반등했지만
반도체 등 일부 섹터·종목에 몰려
韓반도체, 메모리 수급 사이클 과도한 노출
반도체 사이클 끝날 때도 대비할 필요 있어
성장성 있는 산업, 다양하게 시장에 넣어야


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에서 직원들이 증시와 환율을 모니터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개장 후 등락을 반복하다 장중 5338.08포인트를 기록하며 최고점을 경신했다. [연합]




‘제로(0)’. 코스피 상장사 3개 중 1개의 일평균 거래대금이다. 거래가 없어 잊힌 종목이 30%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K-증시’ 이면엔 상당수 종목은 거래 자체도 무의미한, 지독한 ‘K자형 증시’가 자리잡고 있다. ▶관련기사 3면

특정 산업 의존도가 지나치게 커진 현실을 극복해야 국내 증시가 질적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새로운 성장 기업의 진입을 촉진하는 등 체질 개선에 힘써야 국내 증시가 중장기적으로도 안정적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다.

4일 한국거래소 코스피 일평균 거래대금(십억원 단위) 통계에 따르면 우선주를 포함한 전체 코스피 928개 종목 중 327개는 지난 1월 일평균 거래대금이 ‘0’으로 표시됐다.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5억원에도 채 미치지 못해 절삭된 결과다. 이런 종목이 전체 코스피 종목 중 35.2%에 달했다. 국내 대표 시장인 코스피에서 종목 3개 중 1개 종목이 거래 대상으로서의 가치를 잃었다는 의미다 .

일평균 거래대금이 0인 327개 종목의 1월 한 달 거래대금을 모두 총합한 거래규모는 1조4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1월 한 달 거래대금만 약 94조9000억원으로 100조원에 육박했다. SK하이닉스(74조6000억원), 현대차(38조6000억원)도 막대한 규모의 거래대금을 기록했다.

거래대금이 적은 327개 종목의 한 달 거래대금은 삼성전자 단 한 종목 거래대금의 1.5% 수준에 불과하다. 327개 종목의 거래대금을 67개월 끌어모아야 삼성전자의 한 달 거래대금이 나오는 식이다.

K증시가 이처럼 극단적인 K자형 성장을 나타나게 된 배경으론 반도체 호황과 실물경제의 괴리가 꼽힌다. 실물경제가 1%대의 처참한 성장을 보이는 가운데 인공지능(AI) 투자 수요는 전례 없는 수준까지 커지다 보니 자금이 관련 섹터에만 몰리고 있는 모양새다.

우리나라 경제의 지난해 실질 성장률(속보치)은 1%에 불과하고, 이중 반도체를 포함한 정보통신(IT) 제조업의 기여도는 0.6%포인트에 달했다. 더 세부적으로 통계를 뜯어보면 반도체 수출로만 성장률을 0.9%포인트 올렸다.

한편, 이날 코스피는 미국 기술주 약세 여파로 하락 출발한 뒤 반등에 성공, 장중 5300포인트를 돌파했다. 이날 오전 9시 45분 기준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10.04포인트 오른 5298.12에 거래되고 있다. 반도체 대형주는 미국 기술주 조정 여파로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 대비 3400원 하락한 16만4100원, SK하이닉스는 1만9000원 내린 88만8000원을 기록했다. 같은 시각 코스닥 지수는 전장 대비 6.99포인트 상승한 1151.32를 기록했다.

코스피에서 개인과 기관은 동시에 매수에 나섰다. 기관은 1257억원을 순매수했고 개인도 2575억원을 사들이며 지수 방어에 나섰다. 반면 외국인은 4214억원을 순매도하며 차익 실현을 하는 흐름이다. 코스닥에서는 기관이 824억원, 외국인이 185억원 순매수했고 개인이 순매도를 기록했다.

약세를 보인 대형 반도체주와 달리 비반도체 시총 상위 종목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다.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 SK스퀘어, 두산에너빌리티,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주요 업종별로 고르게 상승세를 보였다.

반도체 업종에 집중되는 흐름은 새해에도 이어지고 있다. 관세청의 이달 1∼20일 수출입 현황 통계에 따르면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70% 이상 뛰었다. 성장률은 1%까지 낮아져 있는데, 그마저도 동력 대부분이 반도체인 상황이다. 투자자 입장에서 반도체에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시 말해 국내 시장에서 반도체 말고는 투자할 곳이 딱히 없다는 의미다.

시가총액 흐름으로 봐도 이러한 상황은 여실히 드러난다. AI 흐름에 타지 못한 소형 종목들은 철저히 외면받고 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시가총액은 중국 거대 기술 기업인 텐센트와 알리바바를 뛰어넘을 수준까지 커졌다.

지난 3일 오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각각 10%, 8% 반등해 양사의 시총은 삼성전자 984조원, SK하이닉스 656조원으로 불어났다. 비슷한 시간 텐센트와 알리바바 주가는 각각 4%, 2% 내려 텐센트 시총은 5조2900억홍콩달러(약 982조원), 알리바바 시총은 3조640억홍콩달러(약 565조원)로 줄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합산 시총이 1640조원을 기록해, 텐센트와 알리바바 시총을 합한 1547조원을 넘어선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에 국내 증시의 비약적인 성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동시에 우려도 내놓고 있다. 특히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메모리 칩의 수급 사이클에 과도하게 노출됐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프랭클린 템플턴 글로벌 인베스트먼트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이핑 리아오는 “한국은 기술 공급망의 특정 부분에 매우 집중됐지만 중국은 ‘엔드 투 엔드’(end-to-end) AI 스택을 구축하려는 스토리”라고 설명했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2027년까지 반도체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가 주가를 지지하고 있지만, 반도체 가격 급등은 이를 원재료로 사용하는 제조 기업들의 비용 부담을 키운다”며 “실제로 미국 증시에서도 반도체 가격 상승을 배경으로 완제품 제조업체들이 52주 신저가를 기록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준서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특정 섹터가 지수를 끌어올리는 구조에서 해당 산업이 실적 발표에서 부진할 경우, 개별 종목을 넘어 지수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며 “일부 섹터에 대한 쏠림 현상은 단기적으로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지금부터라도 성장성을 가진 새로운 산업이 코스피 시장 내에 다양하게 태동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반도체 사이클이 꺾이는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종목 의존도가 큰 만큼 관련 산업 업황으로 코스피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3일(현지시간) 약세로 마감한 뉴욕증시에선 AI 모델이 기존 소프트웨어 시장의 판도를 뒤집을 것이란 우려가 확산하면서 주요 소프트웨어 업체와 데이터 서비스, 리서치 서비스 기업들이 일제히 동반 하락세를 기록했다. 이들 산업에 자금을 투자한 대형 사모펀드들도 위험 노출도가 크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동반 급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프트웨어, 금융 데이터, 거래소 종목을 반영하는 S&P 2개 지수에서 이날 모두 합쳐 약 3000억달러(약 435조원) 시가총액이 증발했다고 전했다.

이재혁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전무는 “반도체주, 대형주가 주도하는 랠리 자체는 부정할 일은 아니지만, 특정 산업 의존도가 37%에 달하는 시장 구조는 오히려 취약성을 키우고 있다”며 “진정한 리레이팅은 반도체 사이클이 꺾여도 우리 증시 전반을 버텨줄 산업 저변확대와 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적극적 경영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여건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용진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거래대금이 사실상 없는 종목이 많다는 것은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상품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라며 “팔리지 않는 상품을 왜 계속 상장해 두느냐는 시장 건전성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상영 연구원도 “반도체 업종에만 투자와 정책이 집중되기보다는, AI 확산으로 생산성이 높아지거나 전력망·인프라 등 주변 산업으로 파급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기업 전반을 육성하는 방향이 필요하다”며 “성장을 뒷받침할 산업 정책과 함께 내수 진작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홍태화·문이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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