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돌아온 ‘칼로 막베스’
소리꾼 김준수의 첫 연극, 또 여장
“성별 넘어 욕망의 화신 보여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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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창극단 퇴단 이후 첫 연극에 도전하는 김준수 [마방진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희대의 이야기꾼’ 고선웅 연출가의 마방진 복귀작 ‘칼로 막베스’와 소리꾼 김준수가 만났다. 이미 국립창극단의 작품을 통해 꾸준히 호흡을 맞춰온 두 사람이 야생에서 호흡하는 흔치 않은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디스토피아적 미래와 무협 액션으로 비튼 ‘칼로 막베스’가 15년 만에 돌아온다. 오는 27일 마포아트센터에서 개막을 앞둔 ‘칼로 막베스’는 고선웅이 창단한 극공작소 마방진의 창단 20주년의 닻을 올리는 신호탁 격 작품이다.
고선웅 연출가는 최근 마포아트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창단 20주년을 맞아 마방진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그 출발점으로 ‘칼로 막베스’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제목부터 고선웅표 ‘말맛’에 B급 정서가 묻어난다. ‘칼로 막베스’는 제목 그대로 ‘칼’이 지배하는 세계다. 액션 활극으로 재탄생한 무협극이라는 점을 살린 제목이기도 하나, 원작 속 맥베스가 권력욕의 화신이 돼 던컨왕을 시작으로 ‘왕좌’를 위협할 만한 사람들을 싸그리 죽여버리는 설정을 내포했다. 원작 ‘맥베스’의 배경을 가상의 수용소 옮겨온다. 인물들은 권력과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칼을 휘두른다.
고 연출가는 “초연 당시 6개월 넘게 합숙하듯 연습하며 액션을 만들었지만, 서울 공연 기간이 너무 짧아 아쉬움이 컸다”며 “이번 재연에서는 그때의 에너지를 되살리되, 관객들이 따라오기 벅찼던 지나치게 빠른 대사 속도나 어색했던 유머 코드를 다듬어 더욱 완성도 높은 무대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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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방진 20주년 기념작 ‘칼로 막베스’에서 ‘막베스 처’ 역할을 맡은 원경식 김준수, 막베스 역의 김호산, 마방진 예술감독 고선웅 [마방진 제공] |
15년 전과 가장 달라지는 점은 배우다. 마방진에서 고 연출가와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고 연출가는 “15년 전 30~40대였던 배우들이 이제 40~50대가 됐고, 나 또한 달라지며 다른 결의 작품이 되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막베스’를 맡은 배우 김호산이 보는 ‘맥베스’와 ‘칼로 막베스‘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 그는 “‘맥베스’는 읽다 보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고전이지만, 마방진의 화법은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며 “다이내믹한 액션과 언어유희가 버무려진, 원작의 본질은 지키되 가장 이질적이고 매력적인 맥베스를 원작의 본질은 지키되 가장 이질적이고 매력적인 맥베스를 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품을 압도하는 또 다른 중심인물은 ‘막베스 처’다. 원작 속 실질적 주인공과 다름없는 레이디 맥베스를 ‘막베스 처’로 설정했다.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에서 홀로서기를 선언한 후 첫 연극 무대에 도전하는 소리꾼 김준수가 함께한다. 이미 국립창극단에서
‘트로이의 여인들’, ‘패왕별희’는 물론 민간 창극 ‘살로메’를 통해 세 번의 여성 역을 소화한 만큼 김준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전매특허’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번엔 소리를 하지 않고 오롯이 연기로 승부를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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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칼로 막베스’ [마방진 제공] |
김준수는 “창극단 활동 시절부터 늘 연극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노래가 아닌 오로지 대사와 호흡만으로 관객을 만나는 ‘배우 김준수’를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도전의 이유를 밝혔다.
물론 ‘막베스 처’라는 배역이 주는 무게감은 물론 여성 캐릭터를 맡는다는 것에 대한 부담도 없진 않았다.
그는 “팬들 사이에서 ‘왜 자꾸 김준수에게 여성 역할을 맡기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나 역시 ‘또 여장인가?’라는 고민을 했다”면서도 “하지만 여성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은 배우로서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스펙트럼이자 나만의 장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준수가 만들어갈 막베스 처는 단순한 ‘여성’이 아니다. 그는 “여성처럼 보이기 위해 목소리를 꾸미거나 겉모습에 치중하기보다는, 막베스를 파멸로 이끄는 그 내면의 ‘욕망’과 ‘광기’에 집중하는” 인물이다.
고선웅 연출가는 김준수의 ‘막베스 처’에 신뢰감을 드러냈다. 그는 “김준수를 캐스팅한 것은 단순히 성별을 바꾸는 이벤트가 아니”라며 “막베스 처는 막베스보다 더 강한 에너지를 뿜어내야 하는 존재다. ‘성별’이 아닌 하나의 ‘강렬한 인간’을 설득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칼로 막베스’는 고선웅 연출이 추구해 온 ‘마술적 사실주의’와 ‘놀이성’이 집약된 작품이다. 15년 전, 셰익스피어의 엄숙주의를 깨뜨리며 파란을 일으켰던 작품은 2026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고 연출가는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의 욕망과 파멸이라는 주제는 유효하다. 오히려 지금 이 시대에 권력의 무상함과 덧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큰 공명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