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명 “문해력 붕괴는 나라 붕괴…한글 소중함 알아야”[헤경이 만난 사람]

신간 ‘세종의 나라’…한글 창제 과정 담아
작가적 상상력에 장영실 주요 인물 등장
“문화강국 위해 ‘K-컬처 뿌리’ 한글 중요”


김진명 작가가 23일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디지털화되다 보니 리터러시(literacy·글을 읽고 쓰는 능력)에서 픽처(picture·사진)로 다 넘어가고 있습니다. 재미는 있지만 굉장히 빠르게 젊은 세대가 문해력을 잃고 있어요.”

데뷔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시작으로 ‘고구려’, ‘하늘이여 땅이여’ 등 역사, 사회를 다룬 소설을 줄줄이 베스트셀러에 올린 김진명 작가가 이번에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야기로 돌아왔다. 최근 신간 ‘세종의 나라’를 내놓은 그를 23일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문해력 붕괴 위기감에서 시작한 ‘세종의 나라’


우리나라의 수많은 역사 가운데 지금 세종과 한글을 소재로 책을 낸 것은 문해력 붕괴에 대한 위기감에서 출발했다.

김진명 작가는 “우리가 휴대폰 문화 등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데, 그에 비례해서 젊은 층이 문해력을 상실하고 있다.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온전한 문장을 작성하지 못한다”며 “의식이 있어야 자아가 생기고, 문해력은 자아 형성에 가장 중요하다. 문해력 상실은 곧 자아 상실의 문제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차정인 국가교육위원장과 만나 나눴던 대담을 얘기하면서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의 문해력 붕괴가 너무나 심각하다는 사실에 공감했다”며 “이대로 가면 나라가 붕괴하고 만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문해력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계약 사회는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인식하고 지켜나갈 힘이 있어야 한다”면서 “독재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구성원들이 문해력 없이 독재자의 지시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민주 사회라도 구성원들이 문해력이 없어지면 자발적으로 독재 사회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어 “세종의 한글 창제 과정을 소상히 그려 문해력 상실의 시대에 던지고 싶었다”며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려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책은 세종특별자치시 및 세종대왕기념사업회와 뜻을 모아 출간했다. 세종의 한글 창제 원리와 역사적 의미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 없다는 판단에 용기를 냈다. 그는 “한류 문화가 확산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한글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아졌다. 언어학자들도 세상의 모든 언어 중 한글이 단연 제일이라고 평가한다”며 “한글이 과학적인 이유는 모든 글자가 획 하나로 이뤄져 있다는 점이다. 무한한 결합을 이뤄낼 수 있다. 글자와 소리가 같아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담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명 작가가 23일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작가적 상상력으로 한글 창제에 장영실 등판


‘세종의 나라’는 조선왕조실록, 야사집 등 역사적 자료를 참고하되, 장영실의 기여와 한석리, 권숙현이라는 인물 창조에는 작가의 상상력을 더했다.

김 작가는 “세종이 글자를 만들 때 신하들은 다 중국 경서를 읽고 세계관이 거기에 몰입된 사람들이었다”며 “중국이 중심이고 조선을 변두리로 보던 시대에 세종이 글자를 만드는 것은 중국을 거스르는 반역적 행위로 보고 반대하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세종이 키운 집현전 학자들까지도 반대해서 숨어서 글자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세종이)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장영실이었을 것”이라며 “세종이 한글의 과학적 부분을 누군가와 의논했다면 장영실과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그는 또 세“종이 음운학을 연구한 사람인데 신하들은 몰랐다”고 덧붙였다.

세종을 몰래 도운 한석리와 중국에 공녀로 끌려간 권숙현의 로맨스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권숙현은 남자들도 중국에 꼼짝 못 하는 상황에서 여자로서 황제에게도 당당히 맞서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조선 시대에 중국이 과도한 공물을 요구하고, 여자들도 공녀로 데려갔는데 그 부분을 견딜 수 없었다. 현대는 부당하게 국민 한 사람을 내줘야 한다 하면 필사적으로 싸우는데, 그때는 공녀를 달라는 대로 다 내줬다”며 “나라가 멸망하더라도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나라’라는 건 한 명의 백성을 위하지 못하면 천만 명의 백성도 위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문학적으로도 좀 더 드라마를 살리고, 한글 창제를 보다 재미있게 쓰기 위해 로맨스를 결합했다”며 “전작들과 달리 이번 소설은 독자 중 여성이 50%가 넘는다고 해서 작가로서 기뻤다”고 했다.

세종의 한글 창제는 ‘백성을 위한 것’


소설에서 한글은 ‘민족 정체성’의 뼈대이자 문자를 ‘권력의 도구’에서 ‘인간의 권리’로 이동시킨 ‘문명의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김 작가는 “조선시대에는 문자가 힘이었다. 과거에 합격하면 벼슬을 얻고 백성을 수탈하는 구조였다”며 “글은 백성에게 전해지지 않고 양반들 사이에서만 학문과 권력이 세습됐다. 중국을 숭배하고 중국의 글을 썼는데, 백성들은 접근이 어렵고 글을 몰라서 기본권을 주장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글 창제의 의미는 백성들이 권력의 압제에서 비로소 벗어나 자기를 지킬 무기를 갖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국가의 측면에서도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그는 “일본, 거란, 티베트, 몽고 등 주변국들은 다 자기 문자가 있었는데 조선만 없었다”며 “한자를 계속 썼다면 중국에 지배당해 합쳐지거나, 중국 중심 사회의 변두리 국가로 계속 존재했을 것”이라며 “한글이 생겨서 우리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바탕으로 문해력이 올라가 지금의 경제와 문명 발전을 이뤄냈다”고 평했다.

작품에서 세종은 약소국 조선에서 명나라의 억압과 신하들의 반대를 피해 한글을 만드는 전략가이자 혁명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지금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세종은 ‘백성을 위해야 된다’는 생각이 큰 지도자였다. 그렇다 보니 모든 것이 백성에게 초점이 맞혀져 있었다”며 “지도자뿐 아니라 모든 공무원이 마음에 담아야 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또 하나 본받아야 할 덕목은 관용”이라며 “세종은 당시 명나라에 자신의 폐위를 주장하러 갔던 사람들의 목을 다 치지 않는다. 오히려 끌어안고 한글을 가르친다”고 말했다. 권력은 관용이 있을 때 비로소 신뢰가 생기는데, 지금 한국의 리더들은 관용이 너무 없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끊임없이 복수가 순환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소설의 제목인 ‘세종의 나라’는 ‘백성을 위하지 않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라는 원칙이 있는 국가를 뜻한다. 김 작가는 “현대에 와서는 백성을 위한다는 허울을 내걸고 부자와 권력자, 사회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정책에 반영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며 “권력자든 공무원이든 전부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이 뽑은 것이다. 그들의 유일한 목표는 오로지 국민 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진명 작가가 23일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문화강국 되려면 세계에 한글 퍼트려야”


김 작가는 현재 우리 사회에 신조어, 줄임말 등이 범람하며 언어가 오염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뿌리를 정확하게 알고 나서 온갖 종류의 열매를 맺는 게 좋지, 뿌리를 모르고 열매만 맺으면 문해력이 붕괴된다”며 “그런 말은 아는데 정식 문장은 해석을 못 하고 인공지능(AI)이 생성한 문장을 붙여 넣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봤다.

그는 문해력 회복을 위해선 “책을 읽는 길밖에 없다”고 일갈했다. 그는 “사회가 계속 이렇게 흘러가면 문해력 붕괴는 결국 인간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며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최고의 언어로 꼽는 한글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문해력 붕괴의 1위를 달리고 있다는 것은 굉장한 아이러니”라고 우려했다.

김 작가는 K-컬처, 한류의 근원에도 한글이 있기 때문에 ‘문화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외국에 한글을 더 많이 알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강국이 되려면 인구가 많아야 하는데, 한국의 경우 (저출생 등의 문제로) 외국인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외국에서 한글을 어느 정도 익혀서 들어오게 하면 적응이 쉽고 경제적으로 더 많은 이익을 향유할 수 있다. 우리로서도 동질감을 더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제 정치, 외교 안보 문제에서도 한류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보다는 더 우리를 지지한다”며 “문화의 가장 씨앗이 되는 건 언어다. 세계적으로 한글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은데, 정부에서 나서 한글을 전파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작가가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연혜 한국가스공사 사장, 김형석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RM, 가수 임영웅, 방송인 유재석 등 영향력이 큰 국내 15인의 인사에게 ‘세종의 나라’를 헌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의도는 한글을 편하게 마음껏 써달라는 것이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분들에게 문해력 회복에 최선을 다해 달라는 뜻으로 책을 보냈다”면서 “RM은 원래 한글에 대한 애정이 매우 많은 것으로 안다. 유엔 연설에서 ‘Speak Yourself(자신의 목소리를 내라)’고 말한 것도 세종이 백성을 위해 글을 지어준 의도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연혜 한국철도공사 사장은 여성으로 공직 사회의 높은 벽을 넘어 공사의 만성 적자를 흑자로 돌렸다. 한국가스공사에 가서도 낭비하지 않고 정직한 공직자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김 작가는 헤럴드미디어그룹과도 한글 관련 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그는 “헤럴드는 영어 신문과 경제 신문을 발행하면서도 한글의 소중함을 깨닫고 ‘한글런’ 등 한글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한글의 동행 필요성과 소중함을 느끼는 많은 해외 동포들이 있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깨달음이라고 생각한다”며 “헤럴드와 우리 국민의 문해력 회복을 위해 진지하게 걸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 김진명 작가가 걸어온 길 >

▷1957년 부산 출생
▷1982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 학사
▷1993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출간
▷1998년 ‘하늘이여 땅이여’ 출간
▷2011년~ ‘고구려’ 출간(미완결)
▷2019년 ‘직지’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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