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엔 지고, 가디언 소송은 철회…법원 문턱 못넘은 트럼프의 언론 옥죄기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해 보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프리 엡스타인에게 보냈다는 편지. 여성의 나신을 표현한 듯한 스케치와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으로, 논란이 됐다. [WSJ]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패소하고, 영국 일간 가디언을 상대로 한 소송은 취하했다. 자신에 대한 불리한 보도는 무조건 가짜 뉴스로 몰아 거액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인 언론 대응 방식이 법원에서 제동이 걸리는 모양새다.

로이터 통신과 WSJ 등에 따르면 플로리다주 연방지방법원의 대런 게일스 판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WSJ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실질적 악의(actual malice)’를 입증하지 못했다며 사건을 기각했다.

실질적 악의는 공인이 명예훼손을 주장할 경우 해당 보도가 허위이며, 언론이 그 허위성을 알면서도 보도했음을 입증해야 하는 요건이다. 게일스 판사는 원고인 트럼프 대통령 측이 이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하면서도 오는 27일까지 소장을 수정해 제출할 기회를 줬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즉각 재소송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 소송은 지난해 7월 WSJ이 트럼프 대통령과 억만장자 성범죄자인 고(故) 제프리 엡스타인의 연관성을 보도한 기사가 발단이 됐다. 당시 WSJ은 트럼프와 엡스타인의 친분을 설명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엡스타인의 생일에 여성의 나체를 묘사하는 듯한 형태의 편지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03년 엡스타인의 50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보낸 편지에는 여성의 나체를 연상시키는 그림이 있었고, 트럼프의 서명도 체모를 연상시키는 듯한 위치에 있었다.

해당 보도가 나오자 트럼프와 엡스타인의 친분이 다시 주목받으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에 불이 붙었다. 트럼프가 엡스타인의 성범죄를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일명 ‘엡스타인 파일’을 공개하라는 요구도 들끓었다. 이 편지는 이후 미 의회가 엡스타인의 유족으로부터 생일 축하 책자 사본을 입수하면서 공개됐다.

보도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편지와 그림은 존재하지 않으며, WSJ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WSJ 발행사인 다우존스와 모회사 뉴스코프, 뉴스코프의 명예회장인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 최고경영자(CEO)인 로버트 톰슨,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 두 명 등을 상대로 연방법원에 약 100억달러(약 15조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미 역사상 최대 명예훼손 배상액을 크게 넘기는 금액이다.

다우존스 측은 해당 기사가 사실이라고 반박하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전에 논평도 요청했고, 친분을 부인하는 취지의 트럼프 입장도 기사에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다우존스 측은 기사가 사실이므로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법원은 보도의 진실 여부는 다루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가디언을 상대로 한 소송을 취하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루스소셜 플랫폼 모회사인 트럼프 미디어 앤드 테크놀로지 그룹(TMTG)은 지난 10일 플로리다주 새러소타 카운티 법원에 ‘편견없는 취하(without prejudice)’ 방식으로 소를 취하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23년 3월 가디언지가 보도한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제기했던 명예훼손 청구에 대한 것이다. 당시 가디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이 운영하는 단체가 TMTG에 800만달러의 자금을 댔고, 이에 대해 뉴욕 검찰이 자금 세탁 가능성을 의심하고 조사하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 이는 TMTG 설립자였던 윌 위커슨의 내부 고발로 촉발된 기사였다.

이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 무근을 주장하며 해당 기사를 보도한 가디언과 버라이어티, 위커슨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사건을 담당한 헌터 W.캐롤 판사는 지난해 11월 원고가 실질적인 악의를 입증하지 못했다며 이를 기각했으나, 트럼프 측이 수정된 소장을 제출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에 트럼프 측은 지난 1월 수정된 소장을 제기하며 소송을 이어가려다 이번에 철회했다.

트럼프 측의 소송 취하는 ‘편견없는 취하’ 방식이어서, 향후 같은 소송을 또 제기할 수 있다. 그럼에도 패소와 소송 철회 등은 ‘트럼프식 언론 길들이기’가 법원에서 연이어 제동받은 결과여서 눈길을 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2기 들어 언론을 상대로 더 공격적인 법적 대응을 해왔다. 오랜 기간 소송에 전력을 소모하고 싶지 않은 언론들은 거액의 합의금으로 사례를 마무리 짓기도 했다. 미 방송사 ABC를 상대로는 1500만달러(약 222억원)를, CBS에는 1600만달러(약 238억원)를 받아냈다.

현재도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NYT)가 성공한 사업가로서의 자신의 명성을 훼손했다며 150억달러 규모의 소송을 낸 상태다. 영국 공영방송 BBC에 대해서는 2021년 집회 연설의 일부를 편집해 자신이 집회 난동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며 100억달러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다.

NYT는 이 소송에 대해 근거 없는 위협 전술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현재 이 소송은 플로리다 법원에서 진행 중이다. BBC 역시 해당 소송이 “근거 없다”고 일축하며, 이 같은 대응은 전 세계의 고위직 및 유력 인사에 대한 언론의 보도 능력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BBC가 이 소송에 대해 관할권 없음으로 기각해달라고 요청하는 가운데, 본안 소송은 다음 해 2월 15일로 잡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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