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매가 아니라 인상이다.
주 고객층이 나이 많고 돈 많은
꼰대들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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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김효민·ChatGPT |
“저기요, 혹시 건도하세요?”
돌아보니 언더아머 로고가 들어간 검은 민소매 차림의 근육질 청년이 수줍게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대꾸하려 했지만 입에선 말 대신 가쁜 숨만 연달아 터져나왔다. 대답 대신 트레드밀 계기판을 가리켜 보였다. 지금 당신의 말에 대답하기 위해선 이것의 속도를 줄여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는 처지라는 걸 피차 알지 않느냐는 뜻이었다. 그는 내 말을 바로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나머지 오 분 가량을 채우고 나서야 나는 트레드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숨을 헉헉거리며 정수기로 걸어가 물병에 물을 채워 들이켰다. 그러는 동안 헬스장 구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언더아머 청년이 쭈뼛거리며 다시 다가왔다.
“그쪽도 건도세요?”
내가 묻자 그는 망설이다 대답했다.
“…아직은 아닌데, 그러고 싶어서요.”
나는 물을 마시며 언더아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좀 과하다 싶게 펌핑된 이두박근, 탄탄한 가슴 근육에 구릿빛 피부. 지금 당장 보디 프로필을 찍으러 가도 될 것 같은 괜찮은 몸매였지만 얼굴은 그에 비해 순진하고 건실해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청년은 꽤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사실 이 장사에 가장 중요한 건 몸매가 아니라 인상이다. 주 고객층이 나이 많고 돈 많은 꼰대들이기 때문에.
“운동 좋아하세요?”
“네, 저 헬스장도 몇 년 했었어요. 체교과 나왔고. 아, 태권도 사범 자격증도 있어요.”
언더아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런 거 다 소용없어요. 어차피 이건 칼로리로 따지는 장사라서.”
팔뚝에 찬 바이오밴드에서 삑삑 소리가 났다. 오늘의 목표 칼로리를 채웠다는 뜻이었다. 나는 밴드가 출력하는 화면을 신중하게 살펴봤다. 오늘은 어깨와 등의 근력운동을 위주로, 유산소 무산소를 적절하게 섞어 1500kcal를 소모하면 됐다. 소모 칼로리 란에 1506이라는 빨간 숫자가 찍힌 걸 보고서야 나는 남은 물을 마저 마셨다. 그러는 동안 언더아머는 내 팔뚝의 바이오밴드를 부러운 듯 쳐다보고 있었다.
“저기, 저도 해보고 싶은데 혹시…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뭐 어렵지 않죠.”
선선한 대꾸에 언더아머의 얼굴이 밝아졌다. 나는 목에 두른 수건으로 땀을 대충 닦고 벗어뒀던 겉옷을 걸쳤다. 나가자는 뜻으로 바깥을 턱짓하자 언더아머가 졸졸 따라왔다. 헬스장을 나선 우리는 건물 바깥의 흡연 구역으로 갔다. 전자담배를 꺼내며 물었다.
“담배 해요?”
“아뇨, 전 옛날에 끊었어요.”
“잘됐네. 담배 피우면 안 좋아하더라고요. 전 못 끊어서 아직도 이러고 있지만.”
담배를 깊이 빨고 길게 내뱉었다. 방금까지 트레드밀 위에서 괴로워하며 날뛰던 심장이 착 가라앉는 것 같았다. 나는 말없이 담배를 몇 모금 피웠다. 언더아머가 초조한 기색으로 손톱을 잡아뜯었지만, 나 역시 어렵게 얻은 정보를 쉽게 말해줄 생각은 없었다.
“이거 불법인 건 알죠?”
“…알아요.”
“근데 왜 하려고 해요? 보아하니 젊은데 아무거나 해도 잘하겠구만.”
“아까 헬스장 했었다고 말씀드렸었잖아요. 거하게 말아먹었거든요. 트레이너들 월급도 못 줬어요. 아직 대출도 엄청 남았고.”
“흐음.”
내게도 비슷한 사정이 있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았다. 나는 담배를 마저 피운 뒤 꽁초를 끄집어내 괜히 재떨이에 구겼다.
“진짜 열심히 할 자신있으면 제 클라이언트 소개해 줄 수 있어요. 운이 좋으시네, 안 그래도 며칠 전에 한 명 그만둬서 노인네가 울상이었거든요.”
아들에게 사업체를 물려주고 은퇴한 70대 남성인 내 클라이언트는 최근까지 나를 포함해 세 명의 ‘건도’를 고용하고 있었다. 건도란 건강 도우미의 줄임말, 그러나 단어가 주는 건실하고 긍정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건도는 클라이언트의 운동 노예나 다름없었다. 건도가 클라이언트의 신체정보가 이식된 바이오밴드를 팔뚝에 차고 운동을 하면 그 운동의 효과는 고스란히 클라이언트에게로 전송됐다. 원래는 거동을 할 수 없는 환자를 위해 개발된 최신 의료 장비인 바이오밴드는 병원 밖으로 반출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지만, 돈과 연줄만 있다면 몇 대든 구할 수 있는 물건이기도 했다. 세 대를 갖고 있는 내 클라이언트가 그 증거였다.
최근에 한 명이 그만두기 전까지 우리 세 건도는 그를 위해 격일로 일해 왔다. 클라이언트의 비서가 짜 왔다는 헬스 프로그램에 따라 상체, 하체, 유산소, 무산소에 스트레칭까지 섞어서 하루에 정해진 칼로리만큼을 소모하고 근육량을 착실히 늘려 왔던 것이다. 덕분에 칠십 대 노인인 나의 클라이언트는 집에 편안히 앉아서 삼십 대 청년 못지않은 탄탄한 몸매와 건강을 얻을 수 있었다.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으니 그럴 거라고 짐작만 하는 거지만. 물론 나도 돈을 벌어서 좋다. 뭐 번듯한 직장인 월급까진 아니지만, 일주일에 이틀을 빡세게 운동하는 걸로 버는 금액치곤 꽤나 쏠쏠하다고 할 수 있는 수입이었다.
“저 진짜 열심히 할 자신 있어요. 소개해 주세요. 부탁드려요.”
언더아머가 애걸했다. 소개해 주면 좋아할 것 같기는 했다. 세 명이 하다 한 명이 빠지니 벌써 몸이 달라지는 게 느껴진다 하셨다며, 클라이언트의 비서가 믿을 만한 청년 없냐고 물어본 게 마침 어제였으니까. 그만둔 건도는 내 사촌동생으로 역시 내 소개로 시작한 녀석이었다. 이런 꿀직장을 왜 그만두느냐 하니 녀석은 세상 다 산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었다. “형, 그 노인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그 노인네를 생각해 봐요. 얼마나 팽팽하고 탱탱하겠어요. 그 생각하면 왠지 징그러워서, 징그러워서 소름이 돋아요….”
“오래 할 수 있어요? 이거 바이오밴드 이식하고 장착하는 것도 다 돈 드는 거라, 조금 하다가 관두면 클라이언트 입장에선 큰 손해예요.”
“그럼요. 시켜만 주시면 계속 하죠. 어차피 운동 매일 하는 건데.”
언더아머가 조바심쳤다. 나는 담뱃갑에서 새 담배를 꺼내 전자담배에 밀어넣었다.
“저도 소개해 드리면 좋긴 한데, 이게 아시다시피 법적으로 떳떳한 일은 아니라서 좀 걱정도 되고 그러네요. 이해하시죠?”
언더아머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아아, 맨입으로 소개해 줄 순 없다는 말이죠? 하고 묻는 듯한 표정으로.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무심한 척 담배만 피웠다. 그때 언더아머가 내 곁으로 성큼 다가오더니 속삭였다.
“소개해 주시면 저도 좋은 거 하나 소개해 드릴게요.”
그게 뭐냐고 묻기도 전에, 언더아머가 자기 민소매 티셔츠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더니 뭔가를 끄집어냈다. 나는 담배 연기를 내뿜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언더아머의 손아귀에 쥐어진 것은 긴 줄에 달린 기둥 모양의 목걸이 펜던트였다.
“이게 뭔지 아세요?”
“뭔데요, 이게?”
자세히 보라는 듯 언더아머가 내 손에 펜던트를 쥐어주었다. 가져가서 살펴봤지만 도저히 뭔지 알 수가 없었다. 한쪽 면에 액정이 있었는데 거기엔 배터리 충전량을 표시하는 것 같은 칸만 떠 있었고 다른 정보는 없었다. 언더아머가 속삭였다.
“혹시 명도라고 들어 보셨어요?”
“명도?”
“명상 도우미요. 메커니즘은 건도랑 똑같아요. 이거 끼고 일정 시간 명상하면서 마음 가라앉히고 좋은 생각 자꾸 하면, 그 안정된 심박수랑 긍정적인 기분이 클라이언트한테 가는 거죠. 제 클라이언트가 우울증 되게 심한데 효과가 꽤 있는가 보더라고요. 명도 한 명 더 구하고 싶다고 하는 참이라 관심 있으시면 소개해 드릴게요. 뭐, 상부상조하자는 거예요.”
언더아머가 내 손에서 펜던트를 거둬갔다. 나는 반짝거리는 펜던트가 언더아머 로고 밑으로 다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어떠세요, 생각 있으세요? 이거 꽤 짭짤해요.”
언더아머가 눈썹을 찡긋하며 씩 웃었다. 나는 피우던 담배를 껐다. 눈꺼풀 안에 펜던트가 그린 반짝이는 잔상이 남아 있었고, 동시에 뭔가 기묘한 기분이 잠깐 들었다가 사라졌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아닐 것이다, 정말 중요한 건 그래서 내가 얼마를 더 벌 수 있느냐겠지.
나는 언더아머에게 마주 웃어 보였다. 괜찮은 거래가 곧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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