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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르무즈 해협 케심섬 해안에 18일 이란의 해협 봉쇄로 발이 묶인 컨테이너선이 보이고 있다. [AP] |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충격이 전 세계 경제를 넘어 식량 시스템까지 흔들고 있다. 에너지 공급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생산·물류·농업 전반이 동시에 타격을 받으며 ‘복합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에너지 충격은 이미 경제 전반에 가시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2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공장들은 급등한 생산 비용에 직면해 있으며, 서비스업에서도 활동 둔화가 나타나고 있다.
기업과 소비자 심리지표도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주요 상장사들은 잇따라 신중한 전망을 내놓고 있으며, S&P 글로벌 구매관리자지수(PMI)는 향후 경기 악화를 예고했다.
유로존은 특히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종합 PMI는 3월 50.7에서 4월 48.6으로 하락해 경기 위축 국면에 진입했다. 제조업 투입물가 지수는 68.9에서 76.9로 급등했고, 서비스업 지수 역시 50.2에서 47.4로 떨어지며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다.
S&P 글로벌의 크리스 윌리엄슨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동 전쟁으로 유로존 경제가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했다”며 “공급 부족이 성장 둔화를 심화시키는 동시에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충격은 기업 현장에서도 확인된다. 로이터가 전쟁 이후 발표된 166개 기업의 성명을 분석한 결과, 26개 기업이 실적 전망을 철회하거나 하향 조정했고 38개 기업은 가격 인상을 예고했다. 또 32개 기업은 전쟁으로 인한 재무적 타격을 경고했다. 프랑스 식품기업 다논과 오티스 등도 운송 차질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파티 비롤 사무총장도 이날 싱가포르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우리는 현재 역사상 가장 큰 에너지 안보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하루 1300만배럴의 원유 공급이 사라졌고 주요 원자재 공급에도 심각한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충격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비롤 사무총장은 앞서 이 상황을 “우리가 겪은 최대 규모의 에너지 위기”라고 평가하며, 글로벌 경제 전반에 장기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문제는 이러한 에너지 충격이 식량 공급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동 지역은 전 세계 질소 비료(요소) 수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핵심 공급지다.
해상 운송 차질로 공급이 막히면서 비료 가격은 급등했다. 2월 말 이후 질소 비료 가격은 30% 이상, 요소 가격은 47% 상승하며 사상 최대 수준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여기에 농업용 디젤 가격도 같은 기간 46% 급등했다. 이는 트랙터, 파종기, 비료 살포기 등 농업 전반의 생산 비용을 직접적으로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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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한 농부가 비료 혼합물을 준비하고 있다. [AFP] |
이 영향은 이미 현장에 반영되고 있다. 미국농업연맹(AFBF)에 따르면 농민의 약 70%가 필요한 비료를 충분히 구매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리노이주의 농민 존 옐리는 무수 암모니아 비료 가격이 톤당 800달러에서 1050달러로 급등하면서 약 5만3000달러의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비용 증가”라고 토로했다.
농업계는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AFBF의 지피 듀발 회장은 “농민들이 세대적 역풍에 직면해 있다”며 “농업 전망은 매우 암울하다”고 경고했다.
비료와 연료 가격 상승은 곧 생산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농민들이 투입량을 줄일 경우 수확량 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식량 가격 상승으로 연결될 수 있다.
결국 현재 위기는 단순한 에너지 문제가 아니라 식량 공급까지 위협하는 구조적 충격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향후 글로벌 경제의 방향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해상 운송 차질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느냐에 달려 있다.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물가 상승, 성장 둔화, 식량 불안이 동시에 심화되는 ‘복합 위기’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