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국가사업 된 ‘항노화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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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1년 1월 얼음물에 몸을 씻는 정교회의 입욕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AP] |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지난해 9월 베이징 군사 퍼레이드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인간은 장기를 교체함으로써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당시에는 고령 지도자들의 엉뚱한 대화 정도로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러시아가 국가 차원에서 추진 중인 대형 과학 프로젝트를 설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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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을 걷고 있다. [UPI] |
지난 2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260억달러(약 39조원)를 투입해 항노화·장수 기술 개발 사업인 ‘신 건강 보존 기술(New Health Preservation Technologies)’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2024년 국가 장수 프로젝트를 공개하며 2030년까지 17만5000명의 생명을 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 수치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발생한 러시아군 사망자 추정치와 비슷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프로젝트의 핵심은 두 가지 기술이다. 하나는 살아 있는 조직을 3D 프린터로 만드는 바이오프린팅 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과 유전적으로 호환성이 높은 미니돼지 체내에서 인간 장기를 배양하는 이종 장기이식 기술이다.
러시아 정부와 협력 중인 과학자들은 이미 인간 연골 조직과 생쥐 갑상선을 바이오프린팅하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2030년까지 인간 장기 대체 기술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크렘린궁은 성명을 통해 “러시아에서는 이 분야와 관련한 다양한 과학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라며 “국가 지원 아래 다수의 연구기관이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는 푸틴 대통령과 가까운 인물들이 주도하고 있다. 국가 유전학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내분비학자이자 푸틴의 딸인 마리야 보론초바, 그리고 옛 소련 핵 연구기관인 쿠르차토프 연구소의 소장인 물리학자 미하일 코발추크가 대표적이다.
특히 미하일 코발추크는 푸틴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유리 코발추크의 형으로, 크렘린궁 장수 전략의 설계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과학 발전을 통해 인간의 신체 부위를 무한히 수리하고 교체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코발추크는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불멸에 대해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인간을 수리하는 능력은 분명히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언론이 ‘푸틴의 노인학자’라고 부르는 블라디미르 하빈손도 이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 꼽힌다. 그는 송아지 조직에서 추출한 펩타이드 기반 항노화 치료법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펩타이드는 회복 촉진, 근육 성장, 항노화 효과 등을 내세워 활용되는 짧은 아미노산 사슬이다. 미국에서는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와 팟캐스터 조 로건 등 유명 인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상당수 효능은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빈손은 성경 구절을 근거로 인간이 원래 120세까지 살도록 설계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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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 |
푸틴 대통령은 비주류 항노화 요법에도 관심을 보여왔다. 2018년 크렘린궁에서 당시 오스트리아 총리였던 제바스티안 쿠르츠와 회담하면서 극저온 치료실 이용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설은 일종의 ‘역(逆) 사우나’로, 신체를 영하 112℃ 수준의 초저온 환경에 노출시키는 장치다. 쿠르츠는 훗날 “푸틴이 알몸으로 극저온 치료실에 들어가는 효능을 매우 열정적으로 설명해 놀랐다”고 회고했다.
러시아 지도자들의 장수에 대한 집착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1920년대 소련의 과학자 알렉산드르 보고다노프는 젊음을 되찾기 위한 혈액 실험으로 크렘린궁의 관심을 받았지만, 자신에게 시행한 치료의 부작용으로 55세에 사망했다.
10년 뒤 의사 올렉산드르 보고몰레츠는 세계 최초의 장수 학술회의를 개최하고 인간이 150세까지 살 수 있다는 연구로 스탈린의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 역시 65세를 넘기지 못했다.
오늘날 러시아는 여전히 선진국 가운데 기대수명이 낮은 국가에 속한다. 러시아 공식 통계에 따르면 남성 평균 기대수명은 약 68세로, 미국(약 76세)이나 서유럽 주요 국가(80세 이상)에 크게 못 미친다. 다만 러시아는 이제 장기 프린팅과 유전자 치료, 이종 장기이식 기술을 앞세워 노화와 죽음에 도전하는 실험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