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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돈룩업’ 중에
거대 혜성의 파편들이
지구로 떨어지고 있는 모습.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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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말,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의 대혼란 속에서 글로벌 OTT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어 전 세계 시청 시간 1위를 기록하며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킨 블랙코미디 영화가 있다. 바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돈 룩 업(Don‘t Look Up)》이다. 거대 혜성이 지구를 향해 시속 수만 킬로미터로 돌진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도 오직 중간선거 지지율과 당장의 정치적 스캔들 무마에만 급급하던 영화 속 백악관 풍경은, 공개된 지 수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에게 단순한 오락 영화 이상의 서늘한 시사점을 던진다.
영화 속 천문학자들이 지구를 완전히 파괴할 크기의 거대 혜성이 6개월 뒤 충돌한다는 명백한 과학적 데이터를 들고 백악관으로 달려가지만, 대통령과 예스맨 참모들은 이를 “선거 표심에 도움이 안 되는 흔한 종말론자의 호들갑”으로 치부하며 외면한다. 거시경제의 거대한 경고등이 켜졌음에도 눈앞의 치적과 정치적 셈법에만 몰두하는 각국 정책 당국의 안일함과 소름 끼치도록 닮은 꼴이다.
영화의 비극은 정권의 최대 후원자인 빅테크 기업의 억만장자가 개입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는 인류를 구할 유일한 방법이었던 핵미사일 궤도 수정 프로젝트를 전격 취소시킨다. 대신 혜성에 묻힌 수십조 달러의 희귀 광물을 채굴하겠다며 검증되지 않은 인공지능 드론을 동원해 ‘혜성 쪼개기’라는 탐욕스러운 자본의 도박을 감행한다. 재앙이 코앞에 닥쳐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누구나 충돌 직전의 혜성을 육안으로 시퍼렇게 볼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진실을 감추고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권력자들은 대중을 반으로 갈라 선동하며 강력한 포퓰리즘 구호인 “하늘을 보지 말라(Don‘t Look Up)!”를 외쳐댄다. 눈앞의 객관적 위험을 이념과 프로파간다로 덮어버린 것이다.
이에 맞서 진실을 알리려 절규하던 주인공 민디 교수가 방송에서 “지구 전체가 곧 파괴될 처지인데, 어떻게 서로 눈치만 보며 듣기 좋은 말만 받아적고 있는 겁니까?”라고 일갈하는 장면은 관객의 가슴을 찌른다. 결국 자본의 오만과 정치의 타락 속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마주한 최후의 파국 직전, 민디 교수가 사랑하는 이들과 마지막 저녁 식사를 나누며 나직하게 내뱉은 “생각해 보면 우리는 정말 모든 걸 가졌었어, 안 그래? 우리가 정신만 똑바로 차렸더라면 말이야”라는 명대사는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 영화가 지닌 진정한 가치는 과학을 정치가 집어삼키고, 거시적 위기를 미시적 이해관계로 치환해 버리는 ‘포퓰리즘의 해악’을 가장 신랄하게 고발한다는 점에 있다. 최근 대한민국 금융 시장과 거시경제 정책은 딜레마에 놓여 있다. 높은 환율과 높은 주가 속에서 과연 대한민국 참모들은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까. 반도체가 쏘아 올린 높은 성장률 속에서 한쪽에서는 위기의 파열음이 들려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시장의 자생적 원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인위적인 자원 배분과 규제 정책이 지속된다고 난리다. 이러한 난관을 슬기롭게 헤쳐가지 못하면 우리 역시 영화처럼 파국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제 권력이 가리고 있는 장막 뒤의 거시경제적 역설들을 냉정하게 분석해 보아야 한다.
화려한 지수 이면의 그림자, 환율과 주가의 모순적 동거
전통적인 거시경제 교과서의 문법에서 환율 급등(원화 가치 하락)과 주가 상승은 쉽게 양립하기 어려운 변수다. 환율이 오르면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환차손 리스크가 커지기 때문에 자본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다. 하지만 최근 우리 시장은 묘한 착시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반도체 등 특정 우량주가 이끄는 지수의 견고함이 환율의 경고음을 교묘하게 덮고 있는 형국이다. 영화 《돈 룩 업》에서 혜성의 충돌이라는 파멸적 위험은 외면한 채, 그 혜성에 묻힌 희귀 광물의 경제적 가치만을 두드리던 배시(BASH) 기업의 오만한 계산기가 겹쳐 보이는 대목이다. 당장 눈앞에 찍히는 화려한 수치와 가시적인 이익에 눈이 멀어, 경제 시스템 전체가 흔들리는 거시적 위험 신호를 무시하는 통제관들의 맹목적 태도가 닮아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에서 거둬들인 매도 규모가 상반기에만 무려 150조 원에 달한다는 통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반기에도 매도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천문학적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음에도,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의 주식 보유 비중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를 두고 시장 일각에서는 우리 자본시장이 글로벌 거대 자금의 손쉬운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씁쓸한 농담을 주고받는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정부가 가격이나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려 할 때 반드시 예기치 못한 부작용과 자본의 왜곡이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원화 가치가 하락해도 지수 반등이 상상을 초월하니 막대한 차익을 실현하며 유유히 빠져나가는 외국인 자본의 노련한 파도타기 속에서 과연 우리의 국익은 온전히 지켜지고 있는지 의아스럽다.
우려스러운 대목은 이러한 자본의 유출입 과정에서 국익의 득실을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당국과 참모들의 시선이다. 겉으로 보이는 주가지수가 사상 최고치 언저리에서 방어되고 있다는 가시적인 성과에 취해, 그 이면에서 소리 없이 빠져나가는 국부의 유출을 그저 포트폴리오 조정(리밸런싱)이라며 의미를 축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 속에서 지구 파멸의 경고등이 켜졌음에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진정하시고, 좋은 소식만 받아 적으라”며 서로의 눈치만 보던 백악관의 비서실장과 예스맨 참모들의 모습이 중첩된다. 화려한 지수의 축제 속에서 뒷문으로 조용히 빠져나가는 부의 흐름을 직시하는 냉철한 균형 감각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국가 균형 발전의 역설, 인위적 자원 배분의 파장
지역 균형 발전은 매 정권마다 추진하는 단골 메뉴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지역 균형 발전정책이 과연 실효성이 있었는지 내다볼 필요가 있다. 정치적 정당성의 미명으로 진행된 인위적인 자원 배분과 공기업이나 기업 이전 압박이 혹시나 국가나 산업 경쟁력을 저하시킨 것은 아닐까. 낙후된 지역을 살리고 국토를 고르게 발전시키겠다는 명분은 언제나 매혹적이며 반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시장의 생리체계와 자생적인 동력을 무시하는 처사는 반드시 더 큰 구조적 역설을 낳기 마련이다. 밀턴 프리드먼이 설파했듯, 정부가 선한 의도를 가지고 시장에 무리하게 개입할 때 그 비용은 언제나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이들이 짊어지게 된다.
인위적인 균형 발전론이 가져온 참담한 실패는 이웃 일본의 역사적 사례가 극명하게 증명한다. 1970년대 일본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은 전국에 고속철도와 도로망을 깔아 인구를 분산시키겠다는 거대한 신화, 이른바 ‘열도개조론’을 밀어붙였다. 결과는 정부 부채의 천문학적인 폭증과 거대한 재정 낭비뿐이었다. 인구가 분산되기는커녕, 정교하게 뚫린 교통망을 타고 지방의 자본과 인재가 도쿄라는 거대 블랙홀로 더 빠르게 빨려 들어가는 ‘빨대 효과(Straw Effect)’만 심화되었을 뿐이다. 우리 역시 이 좁은 국토 안에서 억지로 혁신도시를 건설하고 공공기관과 기업을 분산 배치하는 도식적 접근에 매달려 왔다. 그 결과 지방의 기존 구도심은 인구를 빼앗겨 텅텅 비어버리는 상호 잠식 현상이 고착화되었고, 새로운 콘크리트 인프라는 돈만 삼키는 하마로 전락하는 중이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이 인위적인 공간 배치가 만들어낸 민생의 구체적인 비극이다. 정주 여건과 교육 환경에 대한 유기적인 고려 없이 직장과 기업만 강제로 지방으로 밀려나다 보니, 수많은 직장인들이 현대판 ‘주거 이산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장은 주중에는 지방의 적막한 오피스텔을 전전하고, 주말이면 고달픈 귀경길에 오르는 기러기 생활을 강요받는다. 영화 《돈 룩 업》에서 참모들이 눈앞의 표심과 정치적 명분에만 취해 시스템 전체의 붕괴를 보지 못했듯, 지금의 지역 정책 역시 눈에 보이는 외형적 균형에만 집착하여 서민들의 실질적인 행복과 국토의 자생적 메커니즘을 훼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뼈아프게 돌아보아야 한다. 지역 균형 발전은 꼭 이루어야 하나 인간의 욕망을 거스르지 않을 방안을 찾을 때 과도한 비용 낭비가 발생하지 않는다. 나아가 기업의 활동은 기업의 의사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대한민국주주운동본부는 지난 2일 삼성과 SK의 향후 10년간 4755조 원 규모의 호남지역 투자 계획에 대해 정작 그 회사의 주인인 주주는 어디에 있느냐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주주총회 안건으로 올릴 것을 요구했다. 그토록 중요하다면 왜 이사회를 거지지도 않았을까. 경상북도 구미는 대한민국 반도체를 일군 본산이다. 이번 반도체 르네상스에서는 소외되는 이유는 뭘까. 전력·용수·공항·인력 등 모든 인프라가 이미 갖춰져 있는 구미 5공단을 생각하면 이런 제안도 가능하다. 호남이 반도체 전공정을, 영남이 후공정을 맡는 역할을 분담하는 제안 말이다. 이게 영호남 상생의 길이 아닐가. 국가 균형발전의 진정한 모습은 이토록 어렵고 많은 토의를 거쳐 결정대어야 할 중요한 사안이다.
기득권 장벽과 규제의 부메랑, ‘쉬었음’ 청년들의 슬픈 자화상
화려한 거시경제 지표와 기술 혁신의 찬사 속에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가장 아픈 그늘은, 밑바닥에서부터 차갑게 식어가는 청년 일자리 시장이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서 구직 활동조차 하지 않고 그저 ‘쉬었음’이라고 답한 청년층이 수십만 명에 달하며 청년 실업이 고착화되는 현상은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 동력이 꺼지고 있다는 엄중한 경고등이다. 영화 《돈 룩 업》에서 빅테크 기업의 화려한 드론 기술에만 열광하다가 정작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 기반을 무너뜨렸듯, 우리 정책 당국 역시 눈앞의 거시적 수치에 취해 청년들의 절망적인 삶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이러한 고용 한파의 이면에는 기업을 옥죄는 과도한 규제와 기득권 보호 장벽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산업 현장에서는 노동권 강화라는 명분으로 시행된 ‘노란봉투법’ 이후, 하청 노조의 원청 상대 교섭 요구와 법적·행정적 공방이 지방 노동위원회마다 수배씩 급증하며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우려가 깊다. 여기에 획일적인 환경 관련 규제 법안들까지 겹치면서 기업들은 예측 불가능한 사법적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 밀턴 프리드먼이 지적했듯,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인위적인 법적 강제가 오히려 고용의 문턱을 높이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전형적인 사례다. 결국 규제 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기업들은 고용을 늘리는 대신 무인화와 로봇 도입으로 발 빠르게 선회하며 아예 ‘사람 쓸 자리’를 지워버리고 있다.
더욱 서글픈 것은 이 좁아진 문틈 사이에서 이제는 불가피한 정년 연장 논의까지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제도의 필요성은 인정하나 노동 시장의 유연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밀어붙이는 인위적인 정년 연장은,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기존 고용 유지를 위해 청년들의 신규 진입 기회를 원천 차단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기득권 노조를 옹호하는 법적 장치와 규제의 덫, 그리고 세대 간 이기주의 속에서 갈 곳을 잃은 청년들은 시작도 해보기 전에 노동 시장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다. 인간의 욕망과 시장의 자생력을 무시한 채 획일적인 규제와 명분에만 매달린 정치가 양산해 낸, 대한민국 청년들의 가장 슬프고도 잔인한 자화상이다.
영화 《돈 룩 업》의 마지막 장면에서 민디 교수가 남긴 “우리가 정신만 똑바로 차렸더라면 모든 걸 가졌을 것”이라는 나직한 탄식은 오늘날 우리를 향한 준엄한 경종이다. 화려한 지수 이면에서 소리 없이 국부가 유출되는 금융의 모순, 인간의 욕망을 거스른 인위적 자원 배분이 낳은 공간의 역설, 규제의 덫에 걸려 시작도 하기 전에 좌절하는 청년들의 슬픈 자화상까지. 지금 대한민국 거시경제 정책이 마주한 비극들은 결코 개별적인 현상이 아니다. 정부 당국은 이제라도 표심만을 좇는 예스맨들의 장막에서 벗어나야 한다. 눈앞의 수치 포장에 급급하기보다 밤하늘의 혜성을 직시하듯 현실의 냉혹한 결핍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시장의 자생력과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진짜 해법을 제시할 참된 참모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시점이다. 식탁 위의 파멸적 최후를 맞이하기 전에, 우리는 지금 당장 하늘을 올려다보아야 한다.
아담 맥케이 ——————————————————————————————-
아담 맥케이(1968. 4 ~ ) 미국의 영화감독이자 각본가. 글로벌 금융 시장의 왜곡과 자본의 탐욕, 그리고 부조리한 시스템의 민낯을 신랄하게 파헤치는 사회 고발성 블랙코미디의 거장이다. 권력의 위선과 통제관들의 안일함을 날카로운 해학으로 꼬집는 데 탁월하며, 영화 《돈 룩 업》 역시 그의 철학적 통찰과 천재적인 연출력이 집약된 명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