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전쟁을 끝까지 못 하는 결정적 이유

이란, 호르무즈는 협상 아닌 생존 위한 ‘황금카드’…미국과 군사충돌도 감수
선거앞 초조한 트럼프…유가부담에 “전면전 재개 아냐, 장기전 추구 안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미국과 이란이 다시 무력 충돌을 주고받으면서 지난달 체결된 종전 양해각서(MOU)가 흔들리고 있다. 이번 충돌의 핵심은 미-이란 후속협상에서 ‘핵무기급’ 위력으로 부상한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에 있다. 이란은 해협 통제권을 ‘황금무기’로 여기며 미국과의 군사적 긴장 고조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가 급등이 불러올 정치적 역풍을 의식해 장기전을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양측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이해관계가 맞부딪치면서 중동 정세는 다시 한번 일촉즉발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만난 자리에서 종전 양해각서가 “끝난 것 같다”고 말하며 “그들과 거래하고 싶지 않다. 그들은 지긋지긋한 사람들(Sick people), 쓰레기”이라며 이란을 강하게 비난했다.

미국이 이틀 연속 공습을 단행하자 이란도 미국 관련 군사시설을 겨냥해 보복공격을 천명하며 양측의 군사적 긴장은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로이터통신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충돌의 본질이 핵 문제가 아니라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주도권 경쟁이라고 분석했다.

이란 배후 추정 호르무즈 선박 피격

실제 양측의 충돌은 항로를 둘러싼 갈등에서 반복되고 있다. 이란은 선박들에게 자국 해안에 가까운 항로를 이용하도록 요구하며 해협 관리권을 기정사실화하려 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오만 해안 쪽 항로를 이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란은 자국이 지정한 항로를 따르지 않는 선박을 공격했고, 미국은 이에 대응해 군사시설을 타격하는 방식의 보복이 반복되고 있다.

오랫동안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자제해왔던 이란은 이제 해협 통제권을 서방과의 협상에서 가장 강력한 지렛대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이 전쟁을 중단하고 협상에 나선 것도 호르무즈 봉쇄가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미친 충격 때문이라는 것이 이란 내부의 판단이다.

이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란 최고위층에서는 어떤 국가도 이처럼 중요한 협상 카드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 우세했다”며 “호르무즈는 이란의 ‘황금무기’이며, 서방은 지금 그것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란 의회 국가안보·외교위원회 소속 에브라힘 아지지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미국을 향해 “호르무즈 해협에서 새로운 이란의 질서를 인정하라. 그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적었다.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들 [로이터]

이란이 호르무즈 문제를 최우선으로 삼는 배경에는 미국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기존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고, 지난해 여름 휴전에 합의한 뒤에도 올해 다시 전쟁을 시작했다. 외교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기습 공격까지 감행하면서 미국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란 고위 관계자는 “호르무즈에서 물러서면 트럼프는 핵 문제는 물론 재래식 미사일 전력까지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할 것”이라며 “그것은 곧 항복을 의미하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이란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경고했지만 국제적 고립과 자국 경제에 미칠 타격을 우려해 이를 최후의 수단으로만 여겨왔다. 그러나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최고지도자와 군 수뇌부가 사망한 이후에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판단 아래 전략을 바꿨다. 이후 자국 선박을 제외한 모든 선박의 통항을 차단했고, 결국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냈다는 것이 이란의 인식이다.

결국 호르무즈 봉쇄에 따른 경제적 피해가 미국과 이란 모두에게 커지면서 휴전이 성사됐지만, 이란은 한 차례 해협 봉쇄만으로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해협 통제권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도 실제로 전쟁을 장기화하기는 쉽지 않다. 지난 2월 말 이란 공격 이후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물가 상승 우려가 커지면서 정치적 부담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특히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에너지 가격 급등은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선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로 꼽힌다.

당초 양국은 MOU 체결 이후 60일간 핵 문제와 제재 해제를 협상할 예정이었지만, 호르무즈 통제권 갈등으로 후속 협상은 사실상 시작도 못 하고 있다. FT는 이란이 최종 합의가 이뤄지기도 전에 가장 중요한 협상 카드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유럽외교협의회(ECFR)의 엘리 게란마예는 “이란은 미국의 경제 제재 완화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합의가 나오기 전까지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대규모 교란 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해협 재개방이 MOU의 핵심인 만큼 이것이 실현되지 않으면 공화당 강경파로부터 다시 전쟁을 재개하라는 엄청난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양측은 양해각서에 서명하기 전에 해협 운영 방식에 대한 상호 수용 가능한 절차를 먼저 마련했어야 한다”며 “이 같은 합의가 늦어질수록 호르무즈 해협은 교착상태에 빠지고, 미국과 이란이 전면전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FT에 따르면 MOU 이후에도 호르무즈를 통과한 선박은 570척 이상이며 원유운반선만 150척이 넘는다. 다만 일부 선박은 미국이 권고한 항로 대신 이란이 요구한 항로로 변경하는 등 해상 운송은 여전히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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