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로이터] |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트럼프 취임 전후 100일 동안이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골든 타임’입니다. 정부에서 장관과 기업 총수로 구성된 일종의 ‘트럼프 2.0 사절단’을 만들어 비공식적으로라도 미국 정부와 논의를 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입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통상)이자 전 국제통상학회 회장은 지난 3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한국을 비롯해서 고율관세를 부과할지 여부는 선제적 대응과 협상력에 달려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허 교수는 또한 탄핵정국 ‘정상 리더십 공백’ 속에 협상 시기를 놓치고 있는 점이 뼈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트럼프 2기 미국과 중국이 강대강 대치를 이어갈 수 있다”며 “트럼프 1기 당시 철강이 중국산 제품의 우회수출 경로로 여겨져 관세 25%를 맞은 상황이 재연되지 않기 위해서는 선제적인 협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허윤 교수와의 일문일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AFP] |
-트럼프 2기 통상 부문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첫 번째는 ‘한국에 대한 보편관세’다. 한국과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맺었는데 이를 계속 준수하지 않고 한국에 대해서도 보편관세를 일률적으로 부과할지에 대한 우려다. 미국의 최대 우방국인 캐나다와 멕시코에도 보편 관세 25%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상황에서 한국에는 어떤 관세 카드를 들고 올지가 가장 큰 우려 사항이다.
두번째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통상정책의 일관성’ 문제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나 반도체법 등으로 한국 기업들이 현재 많이 미국에 진출해 있는 상태다. 바이든 행정부가 우리 기업들을 상대로 한 반도체 보조금 지원 확약을 받아냈지만, 이것이 얼마만큼 지켜질 것인지 우려된다.
세번째는 미중간 강대강 구조가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우리 기업이 ‘중국산 제품들의 우회 수출 경로’로 인식돼 중국과 함께 엮이는 상황이 빚어질까에 대한 우려다. 일례로 트럼프 1기때는 한국 철강에 25% 관세를 부과했고, 당시 한국은 협상을 통해 25% 관세를 면제받는 대신 철강 수출 쿼터제(물량할당제)를 도입해 합의했다. 당시 한국이 중국 철강의 우회 수출국으로 인식되면서 관세를 부과했다가 우리 정부가 협상을 통해 쿼터제로 바꿔서 현재는 1년에 263만t까지 수출할 수 있게 됐다.
다른 하나는 특히 수출 및 기술 통제 관련해서 미국의 대(對)중국 제재가 강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 기업들이 미국 정부의 입장을 파악하지 못하고 중국과 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제재를 위반하게 될 경우 미국에 ‘세컨더리 보이콧’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도 우려점으로 짚을 수 있겠다.
2019년 12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쥐스탱 트뢰도(오른쪽) 캐나다 총리가 영국 왓퍼드의 그로브 호텔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해 11월 취임하면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해 양국간 긴장감을 높였다. [게티이미지] |
-트럼프, 취임 초기부터 한국에 관세 부과할까?
▶현재 상태로는 예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트럼프는 ‘관세 카드’를 들고 얼마든지 협박할 수 있다. 캐나다나 멕시코에 부과하겠다고 하는 25%도 실제로 이행될지는 아직 모르는 것이다.
협상의 모든 것들을 ‘거래론적 관점’에서 보는 트럼프가 협상을 위한 사전 포석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협상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관세를 실제로는 부과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
▶그렇다. 다만 우리가 그에 상응하는 카드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 2기는 1기와 비교해 어떤 점이 다른가.
▶첫째, 우리 기업들의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이다. 과거 2017년 당시 미국이 한국 기업들에 대한 인식과 지금은 많이 다르다.
우리 기업들은 2023년 기준 215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정하며 사상 처음으로 미국의 최대투자국이 됐다. 미국에서 일자리도 수십만 개 만들어내는 상황이기 때문에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와는 한국 기업들의 위상이 상당히 달라져 있다.
둘째는 트럼프 1기 4년을 통해서 우리 정부와의 상당한 교감이 이뤄졌다는 것과 한국이 그래도 1차 타깃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라는 점이다. 지난 4년 동안 축적했던 경험으로 우리 정부나 기업들이 전략을 준비했을 수 있다.
우려되는 점은 2017년 당시에는 트럼프 행정부도 여러가지로 서툴렀지만 이제는 트럼프 지지자들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주류화되고 있기 떄문에 속도를 높여서 훨씬 더 목표 지향적으로 정책을 쏟아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나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관들을 태운 차량이 지난 3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입구에 도착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 |
-비상계엄·탄핵정국 여파로 한국 통상부문에서 당면한 문제는 무엇인가.
▶가장 큰 문제는 ‘전체적인 컨트롤 타워의 부재’일 것이다. 미국의 새 행정부가 들어오기 전 지금은 톱다운 방식으로 위에서 가르마를 타고 각 부처를 총망라하는 카드를 준비해서 한국의 이익과 균형을 맞춰야 하는 시기다. 현재 논의할 수 있는 장관급에서는 안 되고, 훨씬 더 높은, 국가 정상 차원에서 논의가 돼야 하는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가령 방위비 분담, 한미 FTA를 어떤 식으로 견제할지, 또 IRA나 칩스법의 혜택을 어떻게 일관성 있게 받을 것인지 범부처 차원에서의 협상 카드들이 정리가 돼야 한다. 이것은 보통 국가 정상 차원에서 논의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현재는 정상과 권한대행마저 탄핵하는 국면에서 대외 외교나 통상 쪽으로 여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 때문에 정부가 중요한 협상 시기를 놓치고 있는 것이 굉장히 안타깝다.
[헤럴드DB] |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트럼프가 미국에 무역 흑자를 내는 나라에 대해서는 동맹, 비동맹 가리지 않고 칼을 빼들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칼을 빼들고 나서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우리로서는 비용도 많이 들고 힘든 과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정책들이 나오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화 채널을 통해 서로 내줄 것과 받을 것에 대해 충분히 논의가 되면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우려되는 터무니없는 통상·경제·안보 정책들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대통령이 탄핵된 상태에서 국내 정치 상황이 녹록치 않은 것이 상당히 안타깝다. 안타까운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다.
다만 한국경제인협회가 워싱턴DC에서 미국상공회의소와 양국 정·재계 교류의 장을 갖고 미국 상하원 의원과 주지사 등과도 소통하는 것은 고무적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에서 장관과 기업 총수로 구성된 대미 일종의 ‘트럼프 2.0 사절단’을 만들어서 비공식적으로라도 미국 정부와 논의를 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국내 산업 중 가장 우려되는 업종은.
▶신재생에너지나 전기차 관련 배터리, 태양광, 풍력 등 친환경 산업들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민주당의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환경과 ‘DEI(다양성·공정성·포용성)’가 정책적 우선순위였다면 트럼프는 화석연료 생산을 대폭 늘려 미국을 최대 에너지 생산국으로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반도체 부문은 어떤가?
▶반도체 부문은 지금 바이든 행정부가 끝나기 전 지원금을 확정받은 상황에서 비관적인지는 예단하기는 어렵다. 반도체는 여러가지 ‘적용 확장성’이 상당히 열려 있는 산업이고,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가 구축하고자 하는 미국의 첨단 미래 산업 생태계에 우리가 얼마만큼 중요한 협력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가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때문에 열린 자세로 세계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들과 공동 연구개발(R&D)과 기술동맹 등을 통해 미국에서 펼쳐지는 빅테크 중심의 미래 첨단 산업 생태계에 우리 기업들이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2월 31일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있는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새해 전야 연설을 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트럼프는 오는 20일 취임을 앞두고 차기 행정부 외교라인에 ‘대(對)중국 강경파’ 인사를 지명하고 있다. [AFP] |
-중국에 대한 60% 관세는 실현될 것으로 보나.
▶트럼프는 중국에 10% 추가관세 부과를 취임 즉시 하겠다고 했다. 지금 있는 기존 관세에서 추가로 10%를 부과하겠다는 것이고, 멕시코와 캐나다에는 이민 및 약물 문제를 명분으로 일괄적으로 25%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맥시멈 레버리지(지렛대)를 걸어서 협박을 하고 그 다음 양자적으로 만나서 미국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협상 방식을 갖고 있다. 미국으로 최종적으로 유입되는 펜타닐(합성 마약성 진통제)의 약 90% 이상이 중국에서 유입되는 상황에서 이 문제가 고쳐지지 않자 트럼프가 관세를 무기로 협상 카드를 갖고 나온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적재산권 침해나 미국 기업들에 대한 기술 이전 압박 등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면 트럼프의 대응 방식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양자협상을 통해서도 트럼프가 원하는 만큼의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현재에서 15% 정도 추가적으로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은 있다.
허윤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본인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