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첫날 16만 관객 선택…설 연휴 극장가 화제성 선점
권혁재 감독 “의상 및 소품 변주 발견하는 재미 있었으면”
전여빈(좌측)이 연기한 미카엘라 수녀와 송혜교가 연기한 유니아 수녀는 한 눈에 보기에도 디자인이 다른 수녀복을 입고 있다. ‘검은 수녀들’ 스틸컷 |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24일 개봉 첫날 관객 16만3730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로 시작한 영화 ‘검은 수녀들’은 ‘검은 사제들’(2015)을 제작한 영화사 ‘집’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기획한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연출을 맡은 권혁재 감독은 “이야기의 줄거리, 대사 모두 최대한 대본을 따르려고 했다”며 “다만 장면을 구성함에 있어서 시나리오 소품 하나하나와 동선 등에 대한 연출에 힘썼다”고 밝혔다.
영화 개봉을 며칠 앞두고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권 감독은 영화에서 의상, 소품 등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눈여겨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검은 수녀들’은 강력한 악령에 사로잡힌 소년을 구하기 위해 금지된 의식에 나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눈 밝은 관객들은 이미 송혜교의 유니아 수녀와 전여빈의 미카엘라 수녀가 쓴 머리 두건과 수녀복의 디자인이 사뭇 다름을 눈치챘을 것이다.
권 감독은 “유니아는 좀 더 고전적이면서 중세적인 엄숙한 수도회 소속의 수녀인 것이 드러나는 머리 수건을 쓴다. 흰 부분이 미카엘라의 것보다 더 넓게 드러난다. 옷에도 수도사들을 연상시키는 허리띠를 달았다”며 “또 마지막 구마의식 때 유니아가 입는 수녀복은 그 전까지 입던 옷과도 또 다르다. 이런 의상 디테일을 켜켜이 변주했는데 관객들이 이를 하나씩 발견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성 사제가 아닌 두 여성 수녀가 구마의식을 치르는 데 있어서도 클로즈업으로 유난히 강조한 부분이 있다. 케이블타이를 사용해 침대의 네 귀퉁이에 악령 들린 소년 희준(문우진 분)을 결박할 때 다치지 말라고 ‘거즈’를 손목 발목에 덧대어 준다.
권 감독은 “시나리오에 이런 디테일은 없었다. 거즈를 덧데어 소년을 보호하는 설정은 제가 덧붙인 것”이라며 “두 수녀는 악령과 싸워 이겨 없애는 것보다 희준을 살려내는 것을 더 우선하는 인물들이다. 작은 차이지만 저는 이런 행동이 인물의 진심을 잘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설명했다.
영화에서 반복되는 대사 “서품도 못받은 수녀가 무슨”은 가톨릭의 남성중심주의 비판의도가 포함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코멘트했다.
권 감독은 “제가 단정적으로 해석을 내놓아서 관객 개개인의 감상을 제한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비판적 코드를 읽어내는 것은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 대사는 핵심적인 부분을 건드린다. 구마의식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닌데, 교단에서 공인된 자격이 없는 수녀가 맨 몸으로 달려드니 더욱 숭고하다. 소외되고 힘이 없는 유니아가 아이의 목숨을 구하는 것보다 규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고위 남성 성직자들에게 계속해서 도전하지 않나. 다만 제가 ‘오컬트-드라마’인 이 검은수녀들을 통해서 어떤 사회적 고발을 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주인공 캐릭터를 위한 빌드업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검은 수녀들’ 스틸컷 |
영화에서 유독 검은 동물들의 목이 잘린 형상이 많이 나타난다. 넋건지기 굿 장면에서도, 마지막 구마를 위한 봉쇄수도원에서도 목 잘린 동물의 이미지로 화면을 가득 메운다. 이 연출에 대해서 권 감독은 “자문과 창작을 통해 완성한 장면들인데, 강력한 악령의 기운으로 동물들의 목이 잘렸다는 설정”이라면서도 “제가 자세한 해석을 밝힘으로서 상상력을 제한짓고 싶지 않다”고 더 상세한 설명에 대해서는 주저했다.
권 감독은 개성있는 오컬트 영화를 찍기 위해 색다른 시도도 더했다. ‘검은 수녀들’의 화면비는 1.66대 1으로, 가로가 좁은 편이다.
권 감독은 “요즘은 와이드가 추세아닌가. 우리는 일부러 가로를 좁혔다. 누군가가 어디서 보는 거 같은 시선의 느낌도 나고, 묘한 느낌도 난다”고 말했다.
권혁재 감독[NEW 제공] |
시나리오는 오래전부터 구상됐지만 권 감독이 영화에 더한 디테일과 숨은 연출 의도들은 ‘본능적인 터치’에 가깝다. 오래 묵힌 창고영화들이 많은 요즈음, ‘검은 수녀들’은 2023년 말에야 권 감독에게 시나리오가 전해졌고 2024년 6월 촬영을 시작해 반년 만에 극장에서 관객을 만났기 때문이다.
“제가 들어가기 전에 이미 송혜교 배우가 유니아를 맡기로 긍정적인 이야기가 오간 상태였다. 송혜교와 일하는 것, 검은 사제들의 스핀오프라는 점에서 부담감이 없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게다가 이미 2024년 초에 ‘파묘’가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오컬트 장르가 또 한번 확장된 상황이어서 비교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더라. 처음엔 이렇게 부담을 안고 시작했지만 꿈에 그리던 좋은 배우, 베테랑 스탭들과 손을 맞춰가면서 저 역시 ‘연대’의 힘을 느꼈다.”
부담감이 무색하게 촬영을 시작하고 나서는 수월하게 흘러갔다는 것이다. 권 감독은 “한 장면을 찍을 때 마스터샷을 먼저 시작하고 그 다음에 타이트샷으로 들어가는데 마스터샷이 거의 전부 첫 테이크만에 끝났다. 배우들의 에너지가 너무 좋았다”고 떠올렸다.
‘검은 수녀들’을 통해 오컬트 장르를 개척한 권 감독은 “저도 이 영화를 통해 많이 배웠다. 제 다음 행보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