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승 엑스크립톤 대표
 |
| 김종승 엑스크립톤 대표 |
헤럴드경제가 디지털자산 정책, 기술, 시장을 둘러싼 전문 식견을 다믄 ‘크립토 인사이트’를 선보입니다. 디지털자산 시황, 글로벌 최신 이슈 및 제도권 편입 흐름 등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현안에 대한 심층적 분석을 제공합니다. ‘크립토 인사이트’는 복잡한 시장 구조를 명쾌하게 이해하고 디지털자산의 미래 가치를 가늠하는 나침반이 될 것입니다.
세계 경제의 문법이 바뀌고 있다. 자유무역 시기를 지나 관세, 제재, 공급망 재편, 기술통제가 국가전략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이 국면에서 국가의 힘은 생산능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누가 무역의 규칙을 정하고, 누가 결제의 통로를 통제하며, 누가 유동성의 기준 단위를 제공하느냐가 더욱 중요해졌다. 미국이 최근 디지털자산을 국가전략의 언어로 끌어올린 배경도 여기에 있다. 백악관은 디지털금융 기술에서의 미국 리더십을 공식 정책으로 제시했고, 이어 디지털자산 정책 권고를 통해 달러 기반 디지털 금융질서 구축 의지를 분명히 했다.
미국이 주목하는 핵심은 디지털 환경에서 달러 질서와 금융 인프라를 어떤 방식으로 연장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통화의 힘은 화폐 발행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결제망, 자본시장, 국채시장, 청산질서, 감독체계가 함께 작동할 때 통화의 위상도 유지된다. 미국이 스테이블코인 법제화와 감독 규정 정비를 서두르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 있다. 백악관은 지니어스법(GENIUS Act)이 소비자 보호와 함께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강화하고 국가안보를 뒷받침한다고 밝혔고, 미국 통화감독청(OCC)은 규정 제안서를 통해 지급형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자본, 유동성, 운영 리스크, 상환, 수탁 규율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이 점에서 미국이 디지털자산의 규범 질서와 감독 질서를 선점하려는 움직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 질서를 확보하지 못하면 미국의 규칙과 감독 바깥에서 새로운 결제·유동성·자산거래 인프라가 자랄 수 있고, 달러의 역할과 금융기관의 중개 지위, 경제안보 수단도 압박받을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지정학 경쟁의 새로운 양상이며, 주요국이 각기 다른 정책을 택하는 배경에도 미래 통화 표준을 둘러싼 경쟁이 놓여 있다.
달러의 글로벌 역할이 약화될 수 있다는 인식 역시 이를 촉진한다. 자산토큰화는 자본시장의 운영 구조를 다시 쓰는 문제로 이어지고, 비트코인은 전략비축 논의 속에서 정책자산의 성격까지 획득하고 있다. 결제, 거래, 담보, 준비자산 등 금융질서의 여러 층위가 디지털자산의 언어로 재구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접근은 통화질서와 금융 인프라를 함께 재편하는 전략이다. 이 경쟁은 곧 글로벌 유동성의 주도권 경쟁이기도 하다. 자금의 이동과 정산이 어떤 네트워크와 규칙 위에서 이뤄지느냐에 따라 통화의 영향력도 달라진다.
이 같은 흐름은 경제전쟁 국면에서 더 선명해진다. 미국은 외국의 무역 관행과 공급망 취약성이 국가안보와 경제안보를 위협한다며 관세 조치를 정당화했다. 실물 흐름을 재조정하는 관세정책과 차세대 결제 질서를 설계하는 디지털자산 정책은 같은 전략 환경 안에 있다. 상품과 자금의 이동 경로가 함께 재편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제재 전략의 실효성 역시 결제와 유동성 통제력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디지털자산 정책은 경제안보 질서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이 구축하려는 것은 경제전쟁 시대에 작동할 차세대 금융질서이자 그 위에서 달러 질서와 금융패권을 이어갈 새로운 인프라다. 앞으로의 쟁점도 분명하다. 미국이 어떤 규칙으로 디지털자산 질서를 제도권 안에 묶어내고, 그 구조가 세계 금융의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느냐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