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터] 지금이 전력 인프라 M&A의 변곡점



생성형 인공지능(AI)에게 “오늘 저녁 뭐 먹지?”라고 묻는 한 번의 질문. 이는 구글 검색 10회 분량의 전기를 소모한다. AI가 ‘전기 먹는 하마’라 불리는 이유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보는 매 순간, 지구 어딘가의 전력망은 신음하고 있다. 그 신호를 빠르게 포착한 자본시장의 플레이어들은 이미 인수·합병(M&A)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 세계 전력망 자산의 평균 사용 연수는 약 30년이다. 미국은 송전선과 변압기의 70%가 25년 이상 된 노후 설비다. 유럽 역시 배전망 설비의 40% 이상이 40년 이상 경과했다. 한편 AI 데이터센터 건설 러시는 전력 수요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2030년까지 미국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은 현재 대비 1.7배 증가할 전망이고, 글로벌 전력 수요는 2026~2030년 연평균 3.6% 성장이 예상된다. 직전 10년 대비 50% 빠른 속도다. 여기에 전기차, 히트펌프, 신재생에너지 인프라까지 더해지면 지금의 전력망으로는 역부족이다.

JP모건은 향후 10년간 전 세계 전력망 투자 규모를 5.8조달러(약 8000조원)로 전망했다. 미국 1조달러, 유럽 1.1조달러, 아시아태평양 2.6조달러 규모다. 전력망 회복력(Grid Resilience)은 단순한 인프라 유지보수를 넘어 경제 발전과 국가 안보의 핵심 축이 됐다.

이런 구조적 변화는 M&A 시장으로 전이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KKR, 블랙스톤 같은 글로벌 사모펀드(PE)들이 북미 전력 인프라 기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 중이다. 변압기 제조사, 송전망 운영기업이 주요 타깃이다. 전력 인프라 현대화와 신재생에너지 확산이라는 슈퍼사이클에 올라타겠다는 전략이다. 국내도 예외가 아니다. 2023년 이전에는 대형 전선업체 중심의 전략적 투자자(SI) 딜이 주류였다. 그러나 2024년 이후 변압기·배전반 전문 제조사를 타깃으로 한 재무적 투자자(FI) 딜이 급증했다. 서울전선(유진PE·우리PE 컨소시엄), 파워맥스(테넷에쿼티), 국제전기(앵커에쿼티), 근우(산은PE·케이엘앤파트너스) 등 굵직한 딜이 연이어 성사됐다.

투자자들이 주목하는 기업의 공통점은 ‘북미 수출 역량’과 ‘데이터센터 전문성’이다. 미국 UL·캐나다 CSA 인증을 보유하고 미국 유통사와 장기 파트너십을 맺은 중소·중견 기업들이 고평가를 받고 있다. 데이터센터 수배전반 전문기업 근우는 2020년 매출 605억원에서 2025년 2000억원으로 성장하며 성장 자본(Growth Capital)을 유치했다.

기회는 북미에만 있지 않다. 유럽은 사이버 안보를 이유로 중국산 전력기자재 배제에 나섰다. 영국 내셔널그리드는 중국 나리 테크놀로지와의 거래를 중단했다. 체코 송전공사도 중국산 기자재 배제를 선언했다.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까지 맞물려 중국산 제품에 대한 장벽이 높아지고 있다. 품질과 친환경 경쟁력을 갖춘 한국 업체에게는 진출 기회다. 중동도 새로운 격전지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비전 2030’, 아랍에미리트(UAE)의 세계 최대 AI 인프라 클러스터 ‘스타게이트 UAE(Stargate UAE)’ 프로젝트가 차세대 시장을 열고 있다.

또 하나의 변수는 승계다. 국내 전력 인프라 업체 상당수가 30~40년 업력의 1세대 창업가가 이끄는 기업이다. 2세대의 승계 의사가 부족한 경우가 많고, 전문 경영 역량에 대한 수요도 커지고 있다. 소수주주 보호를 강화하는 상법 개정 흐름까지 더해져 기업공개(IPO)보다 M&A를 택하는 오너가 늘고 있다. 다만 슈퍼사이클 정점에서 기업가치가 극대화한 지금은 매도자에겐 최적의 타이밍이지만 매수자에겐 부담이다. 그 간극의 조율이 과제다.

1960년대 미국이 고속도로와 송전탑을 세울 때 사람들은 그것을 ‘사회간접자본’이라 불렀다. 60여년이 지난 지금, AI 시대의 사회간접자본은 변압기이고 전선이며 배전반이다. 클라우드(Cloud)라는 이름의 착각과 달리 AI는 구름 위가 아니라 데이터센터 위에서 작동한다. 데이터센터는 안정적 전력 없이는 1초도 버틸 수 없다. 반도체가 AI의 ‘두뇌’라면 전력 인프라는 ‘혈관’이다.

노후 인프라 교체, AI발 전력 수요 폭증, 에너지 안보, 탈중국 공급망 재편. 성장 동력은 뚜렷하다. 그러나 방향이 보인다고 모두가 같은 결과를 얻지는 않는다. 진정한 승자는 지금 이 국면을 ‘반짝 수혜’가 아닌 ‘산업 지형의 근본적 전환’으로 인식하고, 투자와 제휴, 포트폴리오 재편을 실행하는 플레이어일 것이다.

김홍동 삼일PwC 전력인프라 섹터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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