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제 개편, ‘조세 정의’와‘경제 활력’의 균형점을 찾아야 [이용섭의 정책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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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조세는 단순한 국가 재정의 수단이 아니다. 한 사회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공동체의 부담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보여주는 문명국가의 척도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제기되는 상속세 개편 논의 역시 단순한 감세·증세의 문제가 아니라 ‘조세 정의’와 ‘경제 활력’이라는 두 핵심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시대적 과제를 담고 있다.

국제적으로 높은 상속세 부담

올해 초 ‘지난 해 고액자산가 2,400명이 상속세 부담 때문에 한국을 떠났다’는 취지의 보도가 나와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이후 해당 통계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되어 일단락되었지만, 이는 우리 상속세 부담이 국제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는 점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OECD 국가 중 일본(55%) 다음으로 높다. 프랑스는 45%이고 미국과 영국은 40%이며 OECD 평균은 약 25%이다. 2024년 기준 GDP대비 상속세 증여세 부담률 역시 우리는 0.6%로서 OECD 평균 0.1%보다 크게 높다. 총 조세 대비 상속세 증여세 비중도 한국은 2.4%에 달해 OECD평균 0.4%보다 6배 높다. 높은 상속세 부담이 ‘징벌적 과세’로 인식되고, 기업가 정신과 투자 의욕을 위축시키며, 자본의 해외유출을 자극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폐지가 아닌 ‘합리적 최적화’가 답이다.

상속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며 기업 승계를 어렵게 만든다는 이유로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는 자산 양극화와 세대 간 불평등 심화라는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부모의 자산 규모가 자녀 세대의 출발선을 결정짓는 대물림 구조가 점차 고착화되는 현실에서 상속세를 전면 폐지할 경우 사회 통합의 기반은 더욱 약화될 수밖에 없다. 상속세는 세수 확보를 넘어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을 완화하고 사회이동성을 높이며 기회의 공정성을 보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폐지’가 아니라 시대 변화와 글로벌 기준에 맞게 세율, 과세방식, 공제한도를 정교하게 조정하는 ‘합리적 최적화’에 두어야 한다. 실제로 과거 상속세를 폐지했거나 대폭 축소했던 일부 선진국조차도 최근 불평등 심화에 대한 우려로 상속세 강화 논의가 다시 등장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최고세율을 45% 수준으로 적정화

가장 먼저 손질해야 할 것은 세율체계이다. 현행 최고세율 50%는 국제적으로 높은 수준이고 기업 승계 과정에서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최고세율을 소득세 최고세율 수준인 45%로 내려 조세의 국제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일각의 ‘부자 감세’ 우려는 각종 비과세·감면 제도를 함께 정비해 고액 재산가의 실효세율을 적정수준으로 유지함으로써 해소할 수 있다.

대주주 할증평가 제도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 일각에서 상속세 최고세율이 대주주 할증을 포함하면 60%라고 주장하는데, 이때도 최고세율은 50%다. 다만, 과세표준 계산 시 대주주 지분이 포함된 주식의 일괄 매각 시에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반영해 과세표준을 20% 가산한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반영하는 것은 미국, 독일, 일본 등 주요국에서도 일반적이지만, 획일적으로 20% 할증하는 현행제도는 현실과 괴리가 있다.


과세체계를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전환

현재 한국은 피상속인이 남긴 전체 재산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반면 OECD 국가 중 상속세를 과세하고 있는 24개국 중 유산세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나라는 4개국(미국 영국 덴마크 한국)뿐이고 독일·프랑스·일본을 포함한 나머지 20개국은 상속인이 실제로 취득한 재산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취득세’ 방식을 택하고 있다. 유산세 방식은 행정 편의성은 높지만 상속인들이 실제 상속받지 않은 제3자 증여 재산까지도 합산 과세되는 문제가 있다. 반면 유산취득세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응능부담 원칙에 보다 부합하며, 부의 분산을 유도하는 정책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중산층의 족쇄가 된 공제제도의 현실화

30년째 멈춰있는 공제 제도의 현실화도 시급하다. 1996년 확정된 현행 상속세 일괄공제(5억 원)와 배우자 공제(최소 5억 원)는 서울 아파트 가격이 4배 이상 폭등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는 초고액 자산가 중심의 세금이었던 상속세가 이제는 서울에 집 한 채를 가진 중산층에게도 현실적 부담이 되고 있다.

실제로 국세 전체 수입 중 상속 및 증여세 수입 비중은 2016년 2.2%에서 2025년 4.4%로 10년 새 2배 늘었다. 사망자 대비 상속세 과세자 비율 역시 2020년 2.9%에서 2024년 5.9%로 5년 만에 2배 이상 늘었다. 상속세의 본래 목적은 고액 자산의 무상이전에 따른 부의 집중을 완화하는 데 있지, 거주목적의 중산층 주택까지 압박하는데 있지 않다. 물가와 자산 가치 상승을 반영해 공제 기준을 현실화해야 한다.

‘가업(家業)’승계 지원 대상에서 일반 ‘기업’ 승계는 제외

가업승계제도는 본래 취지에 맞게 재정비돼야 한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주차장이 무슨 가업이냐’며 가업승계 지원제도의 허점을 지적함에 따라 정부가 공제대상 축소와 사후관리요건 강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다행이다.

1997년 도입 당시 이 제도는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의 생업을 가족이 승계하지 않으면 기업(사업) 단절을 가져오는 지역 기반 영세 중소기업이나 장인형 기술기업의 단절을 막기 위한 취지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당초 취지에서 일탈하여 현재 지원대상은 매출액 5,000억 원 미만의 중견기업에까지, 공제한도는 600억 원까지 비대해졌다. 이는 봉급생활자나 다른 상속자들과의 조세 공평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며, ‘세금 없는 부의 세습’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해법은 ‘가업(Family Business)’과 ‘기업(Corporate)’ 승계를 구분하는 이원화된 접근이다. 전통 제조업이나 지역 기반 산업처럼 가족 승계가 불가피한 중소기업은 기술과 일자리 그리고 혼이 단절되지 않도록 지원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반면 일반 기업 승계는 과도한 공제방식보다 ‘납부 유예’ 방식이 바람직하다. 경영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세금 납부를 유예하되, 지분 매각이나 경영 종료 시점에는 정당한 세금을 납부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기업의 연속성과 조세 형평성을 함께 고려한 현실적 대안이다.

나눔의 문화를 여는 ‘한국형 레거시 텐’ 도입

아울러 상속세 개편 논의는 우리 사회의 기부와 나눔 문화를 어떻게 확산시킬 것인가라는 고민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 ‘한국형 레거시 텐(Legacy 10)’ 제도의 도입을 제안한다. 영국은 상속 재산의 10% 이상을 공익 목적에 기부할 경우 상속세율을 40%에서 36%로 낮춰주는 제도를 통해 유산 기부 문화를 획기적으로 확산시켰다. 우리 역시 상속 재산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할 경우 상속세액의 10%를 감면해준다면 ‘가족에게 90%, 사회에 10%’라는 선순환의 상속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세금 감소액 보다 훨씬 더 많은 자금이 공익영역으로 흘러 들어가게 하여 정부의 손이 닿지 않는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고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공정과 성장의 백년대계를 위한 결단

상속세는 부의 집중을 완화하고 사회 통합을 유지하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그렇다고 조세 정의만을 앞세워 기업 활력과 투자 의욕을 꺾어서는 국가의 미래가 없다. 결국 상속세 개편의 핵심은 공정과 성장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경제적 역동성을 높이면서도 부의 대물림에 따른 사회적 박탈감을 줄이고, 다음 세대에게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는 터전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상속세 개혁의 본질이다. 이는 단기적 이해관계를 넘어선 중장기적 국가 전략의 문제다. 정부와 국회가 정파 이해와 이념 대립을 넘어 국가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 상속세 개편을 조속히 추진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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