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는 제조업 아닌 서비스업”…600여개 반도체 기업들이 한 곳에서 협력·속도로 승부 [세계 반도체 제조 심장을 가다①]

‘대만의 실리콘밸리’ 신주과학단지
TSMC 중심 반도체 소부장 집결
“대만 반도체 생태계, 중소기업이 이끌고 있어”
수평적 협력으로 지난해 韓 1인당 GDP도 추월
TSMC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 가치 앞세워
‘자체 제품’ 없는 대만, 美 빅테크 필수 공급망으로


대만 신주 과학단지 초입에는 지난 2022년 건설을 시작하고 지난해 하반기 가동을 시작한 2나노 공정 중심 팹20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박지영 기자.


대만 신주 과학단지 초입에는 지난 2022년 건설을 시작하고 지난해 하반기 가동을 시작한 2나노 공정 중심 팹20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박지영 기자.


[헤럴드경제(신주)=박지영 기자] “문제가 생기면 30분 안에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와 장비사, 소재사를 모두 불러 모을 수 있습니다.”

대만의 경제지인 ‘금주간(今週刊)’에서 30년 넘게 TSMC를 취재해온 린홍원 고문은 TSMC 성공의 비결로 ‘협력’을 꼽았다.

TSMC·협력사들, 동등한 ‘창업가 마인드’ 공유


지난 4일 타이베이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신주 과학단지를 방문하자 첨단 2나노 공정 및 6·8·12인치 팹 등 10개 이상의 TSMC 공장이 밀집해 있었다.

서울의 동대문구 정도 크기인 약 15㎢(약 454만평) 부지에는 TSMC를 중심으로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 미디어텍, 파운드리 기업 UMC, 반도체 장비기업 도쿄일렉트론(TEL) 등 약 600여개 이상의 반도체 전·후방 기업이 모여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근무 인원만 17만명에 달한다. 이에 신주 과학단지는 대만의 실리콘밸리라 불린다.

신주 과학단지 곳곳에서는 색색깔의 목걸이를 매고 스쿠터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엔지니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각 회사마다 스쿠터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문제가 생기면 30분 안에 모여서 해결할 수 있는 반도체 생태계가 구성돼 있다. 박지영 기자.


신주 과학단지 곳곳에서는 색색깔의 목걸이를 매고 스쿠터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엔지니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린홍원 고문은 “지리적 접근성이 뛰어나 TSMC 라인에서 문제가 생기면 설계 오류인지, 소재의 결함이거나 특정 장비의 문제인지를 파악한 뒤 신속하게 한 자리로 불러 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의 동대문구 정도 크기인 약 15㎢(약 454만 평) 신주 과학단지부지에는 TSMC를 중심으로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 미디어텍, 파운드리 기업 UMC, 반도체 장비기업 도쿄일렉트론(TEL) 등 약 600여개 이상의 반도체 전·후방 기업이 모여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박지영 기자.


그러면서 “대만의 반도체 생태계는 TSMC라는 하나의 대기업이 끌어가는 게 아닌 중견·중소기업들이 뭉쳐서 이끌어가고 있다”며 “중소기업에는 특유의 ‘기업가 정신’이 있다. 회사가 성장하지 못하면 본인의 모든 것이 날아가기 때문에 목숨걸고 한다. TSMC와 협력사들은 모두 동등한 ‘창업가 마인드’를 공유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공급처가 되어주며 수평적인 공급망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상다 대만 국립칭화대 전기공학과 학과장 또한 “대만의 반도체 업계는 수년 동안 중소·중견 기업을 기반으로 발전해왔고, 여러 중견 기업이 경쟁하면서 한편으로는 협력하는 ‘현대 유럽 스타일’을 띄고 있다”며 “결국 이런 생태계는 효율성, 협업, 경쟁을 촉진한다”고 분석했다.

또 “대만의 엔지니어들은 대부분 칭화대, 교통대, 또는 대만국립대 출신으로 이미 반도체 업계에 진입하기 전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며 “덕분에 서로 다른 회사에서 일하더라도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으며, 반도체 생태계 안에서 지식이나 기술도 쉽게 공유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대만 신주 과학단지 내에는 곳곳에 TSMC 팹을 위한 송전탑이 들어서 있었다. 박지영 기자.


국가의 전폭적 지원, TSMC의 버팀목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인프라 지원도 TSMC의 강력한 버팀목이다. 신주 과학단지 초입에는 지난 2022년 건설을 시작하고 지난해 하반기 가동을 시작한 2나노 공정 중심 팹20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곳곳에는 TSMC를 위한 송전탑도 들어서 있었다.

대만 정부는 TSMC의 생산차질을 피하기 위해 대규모 정전이나 순환 단전이 발생하더라도 신주과학단지는 단전 대상 지역에서 제외한다. 대만 전체 전력의 8~9% 이상을 소비하는 TSMC의 특성을 고려해, 국가 전력 인프라 확충 계획 수립 시에도 TSMC를 최우선 순위에 반영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대만은 설계, 생산, 후공정 등 반도체 3대 공정에서 모두 전 세계 시장 점유율 1~2위를 기록하고 있다. 파운드리(위탁생산) 점유율 역시 71.2%로 한국(9.8%)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중소·중견기업을 바탕으로 짜여진 튼튼한 반도체 생태계로 올해 대만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4만2103달러를 기록하며 한국보다 먼저 4만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한국의 1인당 GDP 전망치는 3만7412달러로, 2003년 이후 22년간 대만을 앞섰지만 지난해 처음으로 역전당한 후 1인당 GDP 격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성장률도 대만은 9.6%로 한국의 전망치(2.6%)를 크게 앞설 것으로 보인다.

‘고객과 경쟁 안한다’…TSMC, 신뢰 바탕 턴키 설루션 제공


신주과학단지 내 TSMC 박물관에서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TSMC의 협력 정신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박지영 기자.


지난 4일 방문한 신주과학단지 내 TSMC 박물관에도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협력의 정신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TSMC 박물관 관계자는 “TSMC가 존재하기 전에 IC 혁신은 종합반도체 기업(IDM)으로부터 나왔다. IDM은 IC 설계, 기술 개발, 글로벌 생산부터 제품 판매까지 모든 것을 직접 관리했다”면서 “하지만 TSMC는 기술 개발, 설계 생태계 구축, 웨이퍼 생산에 집중했으며 고객과 경쟁하지 않았다. TSMC가 생산을 도맡자 설계 전문인 팹리스 회사들이 등장할 수 있었고 거대한 혁신의 물결을 촉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TSMC의 미션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글로벌 로직 IC 산업에서 신뢰받는 기술 및 생산 능력 제공자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TSMC가 발표한 기술 로드맵. 박지영 기자.


TSMC R&D 투자, 30년 간 227배 확대


R&D 투자도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다. 1995년 140명으로 시작한 R&D 인력은 2024년 9994명으로 7배 이상 성장했다. 투자 규모도 크게 늘리고 있다. 1995년 2800만달러(약 436억원)에 그쳤지만 2024년 63억6100만달러(약 9조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약 30년 만에 227배 늘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TSMC는 내년에는 꿈의 기술로 불리는 1나노급 ‘옹스트롬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겠다고 선언했다. 내년에는 2나노와 1.4나노의 중간 단계인 1.6나노(A16) 공정을, 2028년에는 1.4나노(A14), 1.3나노(A13), 1.2나노(A12)로 이어지는 로드맵을 확정했다.

TSMC는 ▷디자인 지원 ▷노광 공정에 필요한 마스크 제작 서비스 ▷웨이퍼 제조 ▷3D 패키징 및 테스트 등 전·후공정을 한 번에 제공하는 턴키(Turnkey) 서비스로 원스톱 설루션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자는 인터뷰 영상을 통해 ▷성실과 정직(Integrity) ▷고객에 대한 약속(Commitment) 혁신(Innovation) ▷고객의 신뢰 등을 기업의 4대 핵심 가치로 강조했다. 특히 그는 “기업이 성장하고 성공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끊임없이 혁신해야 한다”고 전했다.

대만 경제일보, 금주간(今週刊)에서 30년간 TSMC를 취재해온 린홍원 금주간 고문은 TSMC 성공의 비결로 ‘협력’을 꼽았다. [공동취재단]


린홍원 고문은 “모리스 창 TSMC 회장은 파운드리가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업’이라고 강조했다. 기술만 앞선다고 되는 것이 아닌, 고객이 감동할 때까지 완벽하게 밀착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대만 반도체 생태계에는 ‘자체 브랜드 제품’이 없다. 미국 빅테크 기업과 이해충돌 없이 온전히 고객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이유이며 신뢰가 쌓일수록 고객들은 더 많은 주문과 첨단 기술을 대만에 믿고 맡긴다”라며 TSMC의 성공 비결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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