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 회사 ‘삼표’가 직접 짓는다…성수 레미콘 터에 초고층 승부수[중기+]

삼표가 서울 성수동에 구축할 예정인 ‘SGL(삼표 글로벌 랜드마크)’ 조감도. 성수 부지는 삼표의 ‘과거이자 미래’다. 70년대 고도성장기 서울의 아파트, 산업단지, 주요 건설의 토재가 된 레미콘 생산 부지였던 이곳은, 삼표가 미래를 구상하는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삼표]


최고 79층 ‘SGL’ 추진…호텔 등 독자 브랜드 구축
DMC 수색 개발 건자재 회사서 디벨로퍼로 확장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시멘트와 레미콘 회사로 알려진 삼표그룹이 서울 성수동에서 초고층 ‘디벨로퍼’로의 변신을 시도한다. 45년 동안 서울 도심에 레미콘을 공급하던 성수동 공장 터에 최고 79층, 360m 규모의 복합단지를 세우겠다는 구상이다. 최근에는 성수 프로젝트의 독자 브랜드 구축에도 착수했다. 건설기초소재 기업 삼표가 원자재 공급자를 넘어 공간 기획과 브랜드 제작, 운영까지 하는 개발사로 사업의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는 셈이다.

9일 업계 등에 따르면 삼표그룹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옛 삼표레미콘 공장 부지에 ‘SGL(삼표 글로벌 랜드마크)’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골자는 서울숲 인근 부지를 초고층 업무·상업·주거 복합단지로 바꾸는 것이다. SGL은 최고 79층, 높이 360m 규모로 계획돼 있다. 계획대로 완공될 경우 롯데월드타워에 이어 서울에서 두 번째로 높은 초고층 빌딩이 될 것으로 삼표 측은 보고 있다.

성수동 부지는 삼표의 과거와 미래가 겹치는 상징적 공간이다. 성수동 삼표레미콘 공장은 1977년 가동을 시작했다. 반세기 가까이 서울 도심 개발에 필요한 레미콘을 공급해온 거점이었다. 압구정 현대 아파트 등 서울의 주요 아파트와 금융·산업 업무시설, 도로와 교량 등 서울을 키우는 데 필요한 기초 소재가 삼표의 성수 공장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도심 한복판 레미콘 공장은 시간이 흘러 공해와 교통, 소음 민원의 대상이 됐고 공장은 지난 2022년 철거됐다. 레미콘을 싣고 나가던 자리에는 이제 서울숲과 맞닿은 초고층 랜드마크 구상이 올라와 있다.

삼표는 호텔과 브랜드 레지던스, 프라임 오피스, 상업시설을 아우르는 하나의 복합단지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방향을 잡고 있다. 이를 위해 그룹 내 브랜드 조직을 보강하고, 대형 개발 프로젝트 경험을 갖춘 15년 이상 경력의 브랜드 총괄 전문가 영입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삼표가 성수 프로젝트의 브랜딩에 일찌감치 착수한 점에 주목한다. 과거 복합개발 사업의 성패가 입지와 시공사 브랜드에 크게 좌우됐다면, 최근 초고가 개발 시장에서는 공간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정체성과 공간 운영 경험이 자산 가치를 가르는 변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주거, 호텔, 리테일, 업무시설이 한 단지 안에 섞이는 개발일수록 이름과 서비스, 동선, 입점 콘텐츠까지 하나의 브랜드 전략으로 묶어야 한다는 얘기다.

삼표 내부 조직도 바뀌었다. 삼표그룹은 지난해 성수프로젝트총괄본부를 신설하고 관련 인력을 확충해왔다. 개발 부문에는 글로벌 부동산 개발 경험을 가진 로드리고 빌바오 사장이, 건설 부문에는 잠실 롯데월드타워 건설 경험을 보유한 석희철 사장이 참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본부에는 사장급을 비롯해 상무와 이사 등 임원진 12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체 인력은 약 50명 규모로 알려졌다.

상품기획, 설계, 구매, 기술 분야 인력도 보강 중이다. 삼표는 향후 조직 규모를 더 키워 개발부터 운영까지 아우르는 전문 디벨로퍼 체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시멘트와 레미콘, 골재를 만들던 회사가 초고층 복합개발 전담 조직을 꾸리고 브랜드 총괄까지 찾는 장면은 삼표의 사업 전환이 단순한 부지 활용 차원을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삼표가 SGL에서 내세우는 방향은 ‘숲을 품은 미래 도시’다. 서울숲과 한강, 성수동 일대의 도시 흐름을 연결하는 업무·상업·문화 복합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입체 보행데크를 통해 서울숲과 직접 연결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부지 전체를 공원 생활권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의도다. 성수전략정비구역 개발과 맞물릴 경우 서울 동북권 스카이라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성수동 일대의 변화도 삼표의 결정을 뒷받침하는 배경이다. 과거 준공업지역 이미지가 강했던 성수동은 최근 몇 년 사이 패션, 식음료, 스타트업, 팝업스토어가 몰리는 서울의 대표 상권으로 바뀌었다. 서울숲과 한강 접근성까지 갖추면서 업무와 주거, 상업 수요가 동시에 붙는 지역이 됐다. 삼표 입장에서는 오랜 기간 공장을 운영해온 부지가 단순 매각 대상이 아니라, 그룹의 다음 사업 방향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된 셈이다.

‘DMC 수색 개발 프로젝트’ 조감도. 삼표측은 내년 4월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현재 60%의 공정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삼표는 이곳에 그룹 본사를 이전할 계획이다. [삼표]


삼표가 서울 은평구 증산동 일대에서 진행 중인 ‘DMC 수색 개발 프로젝트’는 부동산 개발 역량을 시험하는 사업이다. 이 프로젝트는 현재 공정률 60%를 넘어섰고, 내년 4월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하 5층~지상 36층, 총 3개 동 규모의 주상복합 단지로 조성된다.

DMC 수색 프로젝트에는 삼표그룹 본사 이전 계획도 담겼다. 오피스동은 준공 이후 삼표그룹의 신사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성수동 SGL이 장기 비전이라면, DMC 수색 프로젝트는 삼표가 실제 디벨로퍼로 시장에 내놓는 첫 성적표인 셈이다. 지금까지는 남의 건물에 들어갈 시멘트와 레미콘을 공급하는 회사였다면, 이제는 자신들의 기술과 자본을 투입해 직접 건물을 짓고 운영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는 삼표의 건자재 기술도 적용됐다. 삼표는 자체 개발한 저탄소 친환경 시멘트 ‘블루멘트(Blument)’와 특수 콘크리트 ‘블루콘(Bluecon)’ 시리즈를 현장에 도입했다. 초고층 건축물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품질 저하, 공기 지연, 환경오염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제품군이다. 건자재를 파는 회사가 자신들의 개발 현장에 자사 기술을 적용해 레퍼런스를 쌓는 구조다.

이 대목은 삼표가 왜 디벨로퍼 전환을 꾀하는지를 보여준다. 시멘트·레미콘·골재 산업은 그동안 원가와 운송, 수급, 환경 규제에 민감한 전통 제조업으로 분류돼 왔다. 제품 단가와 물량, 운반 거리의 영향을 크게 받는 산업이기도 하다. 반면 디벨로퍼 사업은 토지 가치, 기획력, 금융 조달, 임대 운영, 브랜드 가치가 함께 맞물린다. 제조업의 수익성 한계를 넘어 공간 개발과 운영에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찾겠다는 시도다.

시장에서는 SGL 프로젝트가 삼표그룹의 기업 이미지를 바꿀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삼표는 레미콘 트럭과 시멘트 공장, 골재 사업으로 기억되는 회사였다. 하지만 성수동 SGL이 현실화하면 삼표는 서울숲 옆 초고층 랜드마크를 보유한 부동산 개발사로도 불리게 된다. 공장 이전과 부지 개발, 친환경 건축자재 적용, 신사옥 이전, 독자 브랜드 구축까지 한 흐름으로 묶이면서 그룹의 서사가 바뀌는 셈이다.

과제도 적지 않다. 360m 초고층 건축물은 인허가, 교통, 환경, 조망, 지역 수용성 등 넘어야 할 관문이 많다. 서울숲과 한강변이라는 입지는 장점이지만, 동시에 공공성과 경관 논란이 커질 수 있는 위치이기도 하다. 건설 경기 부진과 금리 부담, 오피스 시장 수급 변화도 변수다. 삼표가 제조업에서 쌓은 기술 경쟁력을 실제 개발 사업의 수익성과 운영 역량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삼표그룹 관계자는 “기존 브랜드 부서에 인력을 충원해 브랜드 전략을 강화할 계획”이라며 “자체 개발한 저탄소 친환경 고성능 자재를 신사옥 건설에 직접 적용해 기술력에 대한 시장 신뢰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색에서 검증한 품질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부동산 개발의 발판을 마련하고, 앞으로 진행될 SGL 프로젝트에도 그룹 역량을 모아 성수 프로젝트를 완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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