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프라임과 신용경색으로 불어닥친 불경기에 한인은행들이 고전하고 있다. 여러 은행들이 이런저런 타개책을 들고 나오고 있지만 지난해 시작된 부실대출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부실대출과 실적관리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비좁은 한인커뮤니티를 두고 14개 은행이 경쟁을 벌이고 있는 한인은행가에 남아있는 최대 이슈는 단연 인수합병(M&A)이다. 한인은행들간의 합종연횡식 M&A도 있지만 최대 관심사는 글로벌 금융사로의 도약을 천명하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한국계 은행들의 움직임이다.
‘한국에서온 직원들 눈치를 봐야하고 현지채용은 승진에 한계가 있다’, ‘한국이라고 뭐 대단한게 있나. 우리끼리도 잘 할 수 있다’는 불만도 있지만 지금의 어려운 시장상황과 커뮤니티에의 제대로 된 금융서비스 제공이라는 명제는 시장논리에 따른 M&A의 당위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왜 M&A인가 여러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불경기를 맞은 지금의 시장상황에서 14개나 되는 은행수는 지나치다는 말조차 부족한 상황이다. 수익구조를 위해선 일정수준 이상의 마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지독하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인 경쟁구도는 서로간의 제살 깎아먹기일 뿐이라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한때 나스닥 상장 4개 한인은행들간의 깜짝 M&A에 대한 기대감이 일기도 했지만 대주주 이사들간의 얽히고 설킨 이해관계는 철저하게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 봐야 할 M&A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시장이 포화됐다면 해결책은 시장확대 또는 비용절감이다. 시장이 좋았을때야 별 문제도 아니었지만 지난 2년여간 은행들간의 스카우트 경쟁으로 인건비 부담도 늘었고 이제는 불경기로 우량자산 확보도 쉽지 않아 수익마진을 지키기가 여의치 않다. 니즈(Needs)가 맞는 은행들간의 M&A는 효율적인 조직체계를 갖추고 규모의 경제 실현을 통해 불경기도 꿋꿋하게 버터낼 수 있는 은행을 만드는 최선책인 셈이다.
한 은행관계자는 “경제규모가 이쯤되면 적어도 이스트웨스트은행 정도 규모의 은행 하나는 있어야 한다. 본질은 바뀌지 않은채 겉저리만 맴돌게 되는 지금의 모습은 커뮤니티에도 좋을게 없다”고 말했다.
▶왜 한국계 은행인가 지금 한국의 금융가 최대 화두는 ‘글로벌 기업’이다. 신상훈 신한은행장, 박해춘 우리은행장 등 미국에 현지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은행 수장들이 연달아 해외영업망 확대를 천명하고 나섰다. 브랜드 파워에 큰 영향을 끼치는 PI(President Identity)를 이용한 마케팅일수도 있지만 해외시장 확대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지난해부터 떠돌던 한국계 은행의 미주한인은행 인수설은 어느새 이들의 입에서 공공연히 언급되고 있다.
은행들의 가격이 크게 내려가 있는 점도 한국계 은행이 M&A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큰 요인이다. 나스닥 상장 4대 은행들의 경우 1년전에 비해 절반도 안되는 가격에 주식이 거래되고 있다. 지난해 하나은행이 커먼웰스은행의 신주인수를 통해 미국시장에 발을 들인 것도 미국시장 진출을 위한 장기적인 포석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신한금융지주가 지난 10일 미국에 지주사 설립 승인을 받아낸 것에는 한인은행과의 M&A에 대한 생각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국 신한은행 홍보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그런 소문이 돌고 있는건 알고 있지만 그 단계까지는 아닌것 같다. M&A에 대해선 더이상 해줄 말이 없다”고 말했다.
▶장애물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건 가격과 M&A 이후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높은 가격에 팔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하겠지만 시장상황과 수익성 등이 고려되지 않은 논리적이지 못한 가격은 M&A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한국계 은행의 한 관계자는 “시가총액이 10~30조 사이를 오가는 기업들이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M&A를 한다면 주가하락에 대한 위험이 너무 크다. 그런 위험부담을 안고?捉?딜을 성공시켜야 할 당위성은 없는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가격문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또하나가 바로 은행 이사들이다. 한국계 은행들이 한인은행과 일을 할때 가장 많이 언급하는 점이 비합리적인 가격과 통일성없는 지휘체계이다. 보통 은행 이사라면 은행 사정에 밝고 자신들이 고용한 행장 이하 경영진에 신뢰를 보내며 주주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적극 나서야 하지만 그런 이사진을 갖춘 한인은행은 손에 꼽을 정도다.
커먼웰스는 이런 부분에서 다소 열린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하나은행과의 딜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는 평이다. 가장 전문성 있는 이사진을 갖추고 있다는 나라은행이 M&A 얘기가 나올때마다 언급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또다른 은행의 고위급 관계자는 “은행을 자식처럼 생각하는 것도 좋고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열성을 보이는 것도 좋지만 열정이 과욕이 돼서는 안된다. 이사들과 대화할때 도통 말이 안통해 힘들었던 적이 적지 않다”고 털어놨다.
▶어느 은행을, 어떻게, 언제 한국계 은행이 한인은행을 사들인다고 가정한다면 바이어로는 미주지역에서는 가장 큰 우리은행, 지주사 설립을 앞둔 신한은행, 커먼웰스를 통해 입성한 하나은행 등 3개 은행이라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화 돼있다. 유력한 셀러 후보는 한미, 나라, 윌셔, 중앙 등 4대 은행들이다. 우리아메리카은행과 신한뱅크아메리카 모두가 동부에 본거지를 두고 있고, 영업망도 서부보다는 동부에 집중된 상황에서 M&A 이후 네트워크를 통한 시너지 효과가 가장 크기 때문이다.
한인은행간의 M&A 논의가 벽에 부딪혀 있는 것에는 이같은 시너지 효과에 대한 생각도 적잖은 것으로 분석된다. 지점이 몇 안되는 소규모 은행은 인수해봤자 얻을 수 있는 실익이 크지 않아 바이어에게 큰 매력이 되기 어렵다. 인수 방식에는 M&A 당사자간의 극적인 합의점 도출도 있겠지만 하나-커먼웰스에서처럼 신주발행을 통한 지분인수가 가장 무난하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시기를 유추해 보자면 ‘무릎에서 사 어깨에서 판다’는 투자 격언을 되새겨볼 만 하다. 지금 은행들의 주가가 많이 내려 가격으로 볼때 가장 좋은 시기라는 관측이 많기도 하지만 수익성이 낮아지고 있는 회사는 큰 메리트가 없다. 한국계 은행의 한 관계자는 “적어도 2~3분기 정도 수익이 나아지는 모습이 보이면 ‘무릎’으로 볼 수 있겠다”면서도 ” M&A는 한국 본사에서 다루고 있어 언제 돌발변수가 나올지 알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염승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