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터뷰]양우석 “‘변호인’ 대통령 아닌 인권변호사 故 노무현 이야기”

스크린은 현재 ‘변호인’의 열기로 뜨겁다. 지난달 18일 개봉한 ‘변호인’은 개봉 3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쭉쭉 뻗어나가더니 개봉 19일 만에 800만 관객을 돌파, 25일 만에 800만을 달성한 ’7번방의 선물’, ‘광해 왕이 된 남자’, ‘아바타’보다 6일이나 빠른 수치를 기록하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호인’은 관객들의 가슴 한 구석을 뜨겁게 만들며 다시 한 번 자신에 대해 더 나아가서는 우리 현대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변호인’은 1980년대 초 부산을 배경으로 돈 없고, 빽 없고, 가방끈도 짧은 세무 변호사 송우석(송강호 분)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다섯 번의 공판과 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송강호, 김영애, 오달수, 곽도원, 임시완, 이성민 등이 의기투합했다.

본지는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양우석 감독을 만나 ‘변호인’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의미와 더불어 그 안에 녹아있는 여러가지 이야기, 영화를 둘러싼 오해와 편견에 대한 생각 등을 들어봤다.

“‘변호인’ 흥행 예감 못했어요. 개인적으로 ‘변호인’이 잘되서 다행이라는 느낌이 우선적으로 드네요. 긴장을 많이 하면서 만든 작품이라 많은 분들이 이해와 공감을 해주셨다는 부분에 안도감이 들고 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 않아도 영화가 개봉도 하기 전에 너무 많은 오해와 편견이 기다리고 있었잖아요. 자칫하면 영화가 독이 돼 세상에 독을 더 퍼뜨려 오해와 편견만 더 불어일으키는게 아닐까, 그렇게 되면 모티브가 되신 분에게도 엄청난 실례고, 사실 긴장이 아직도 안풀렸어요.”

현재 변호인은 국내를 넘어 내달 7일 북미 주요도시인 로스앤젤레스, 뉴욕,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보스톤, 아틀란타, 달라스, 휴스턴, 시애틀, 토론토, 밴쿠버 등에서 개봉한다. 첫 데뷔작인 영화 ‘변호인’이 천만 돌파를 앞두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북미까지 개봉을 확정지은만큼 소회도 남다르리라.

“미국에 있는 친구들도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는데 그 친구들이 극장에서 볼 수 있게 돼 기뻐할 것 같아요. 미국이 한인교포 200만 시대잖아요. 한국영화를 보는 미국 관객도 예전보다 많이 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분들이 봐주신다면 반갑고 기쁠 것 같습니다.”

한국의 80년대 역사적 배경을 잘 모르는 미국이니만큼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 지 궁금했다.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토마스 모어의 이야기를 다룬 ‘사계의 사나이’, ‘인사이더’ 등 제가 좋아하는 영화예요. 신념을 가지고 주어진 조건과 싸우는 스토리죠. 저는 몇백년 전 영국의 이야기를 보면서 공감을 느꼈거든요. 시대와 나라가 다르지만 공감도 충분히 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변호인’의 관객층은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많은 관객들이 ‘변호인’을 보고 온라인에 리뷰와 감상평을 쏟아내고 있다. 양우석감독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반응들을 물었다.

“댓글이나 SNS에 과찬의 말씀을많이 해주시더라거요. 무대 인사를 갔을 때 가족 단위로 많이 오시는데 그 때 많이 뭉클하고 감사했어요. 3대가 같이 오신 가족들도 있으시더라고요. 젊은 층들은 영화를 보고 부모들에게 그 시대의 질문을 할 수 밖에 없고 어머니나 할아버지 등은 그 시절을 이야기해주겠고요. 가족들 간 소통의 부재를 좁혀주는 것 같아 뭉클했어요.”

“또 젊은 세대 관객들은 그 시대를 알게해줘서 고맙다.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그 때마다 이해해줘서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해요. 제 나이 또래나 윗분 세대들도 ‘그 땐 그랬지’라고 다시 한 번 잃어버렸던 옛날을 회상할 수 있었다고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양우석 감독은 ‘변호인’을 찍을 떄 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고뇌를 진실성있게 담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시대와 시대를 관통했던 인물에 대한 이해를 같이하면서 역사를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현장에서 이야기가 잘못 전달되지 않게 긴장을 많이 했다던 양우석 감독은 “풀어지지 않게 현장을 지탱해준 즐거운 김장감”이라고 말했다.

양우석 감독은 90년대부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일화를 쓰기위해 스크랩을 하고 자료를 모아왔다. 어떻게 노 전 대통령의 일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88년도 5공 청문회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 분에게 관심을 갖게 된건 세 번의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분의 이력, 당시 서울대 법대생 3분의 1정도가 사법고시에 패스했는데 고졸 출신이 사법고시 통과한 것은 지금까지 10명이 안될꺼예요. 또 그런 분이 부산에서 어마어마하게 돈을 잘 벌었던 이력도 제 호기심을 자극했어요. 부산에서 최고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가 어떤 사실에 한 사건에 의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셨잖아요. 사실 어떤 사건에 의해 분노해서 변호사를 구해준다거나, 변호를 맡아준다거나는 할 수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중요한건 노 전 대통령은 한 번 신념을 갖게 된 이후로 변함없이 인권변호사로 활동 하셨다는거죠. 또 92년에 정치인의 길을 이끌어준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결별 하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관심을 갖게됐죠.”

“정치인으로서 정치가 분란이 돼 발전하지 않으면 어떻게 나라가 발전하겠느냐는 생각을 하신 것 같아요. 그뒤의 삶은 오로지 그것 뿐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대선후보가 되시더라고요. 대통령이 되면 이 이야기를 못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지금까지 써왔던 글과 자료, 신문스크랩이 수포가 됐죠. 그렇게 제 기억속에서도 조금씩 사라져갔고요. 그러다 비극적 사건으로 고인이 되셨고 그러던 차에 2~30대 젊은 친구들과 만나게 됐는데 이 친구들이 육체적 피로가 아닌 정신적으로 짖눌려 있는게 느껴지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 우리사회에는 문맥이 많이 상실됐어요. 인문적 상상력이 많이 죽는다는 느낌을 받았죠. 그 순간부터 사회는 망하고 민주적으로 퇴행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생각보다 빨리 이 이야기를 꺼내서 젊은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전 대통령으로만 기억을 하시더라고요. 이 분 삶에서 가장 중요했던 게 대통령 시절이었을까요? 가장 중요했던건 81년 돈이 최고의 가치라고 여겨오다가 인권과 민주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법이라고 깨닫고 법을 전공한 변호인으로서 그걸 지켜야 하는 것을 신념을 갖게 된 그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양우석 감독은 극중 송우석과 대비되는 캐릭터 차동영을 이해할 수 있는 설명도 덧붙였다. 만들어진 캐릭터니 실제로 찾아내려는 행동은 삼가해달라는 당부도 함께 말이다.

“극중 송우석과 대비되는 캐릭터는 모두 픽션이라고 과언이 아니예요. 송우석을 극대화시키고 대비시키기 위해 만든 캐릭터죠. 차동영 캐릭터는 6.25 전쟁이 끝난 지 27년 후의 인물이예요. 이데올로기를 피로, 몸으로 먼저 배웠죠. 절대적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도 가리지 않는 인물입니다. 송우석은 그 때 새로운 가치를 봅니다. 법이 추구하려 했던 민주주의에 눈을 뜨고, 또 그 붕괴현장을 보고 분노하죠. 그러면서 새로운 신념이 생겨요. 그에 반해 차동영은 성찰과 의심, 회의감을 갖지 않죠. 송우석과 차동영의 캐릭터를 성찰로 나누게 됐어요.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려고 만든거죠.”

아직도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는 양우석 감독은 영화가 모두 내릴 때까지는 이 긴장감을 놓을 수 없을 것 만 같다고 미소지어 보였다.

“‘변호인’을 너무 긴장하고 만들어서 다음에는 긴장 안하면서 만들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네요.”
유지윤 이슈팀기자 /jiyoon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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