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민은 지난해 8월 팟캐스트 방송 ‘옹달샘과 꿈꾸는 라디오’를 진행하며 인신공격, 여성 비하, 패륜적 발언에 삼풍백화점 사고 피해자를 웃음의 소재로 사용하며 막말을 퍼부었던 것이 뒤늦게 알려지며 대중의 비난을 받았다. 지난 4월동안 빚어진 일이다.
막말 파문은 16일동안 일파만파 번지며 온, 오프라인을 떠들썩하게 했고, 고소까지 당했던 장동민은 뒤늦게 공식 기자회견(4월 23일)을 통해 고개를 숙이며 대중 앞에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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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공식석상에는 모습을 비치지 않던 장동민은 지난 23일 케이블 채널 tvN 예능 프로그램 ‘더 지니어스:그랜드 파이널’의 제작발표회에 등장했다.
이날 역시 장동민은 “공식 석상에 오랜만에 나왔는데 말씀 하나 전하겠다”면서 “(상처받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 앞으로 방송을 열심히 해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장동민의 새 프로그램 출연에 지난 논란은 다시 수면 위에 올랐다. 이미 걷잡을 수 없는 파장을 불러왔던 막말 파문 이후 자숙의 시간을 갖지도 않은 채 새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많은 연예인들은 크고 작은 사건 사고에 휘말리면 일정 시간 ‘자숙의 시간’을 갖는다. 국민MC 강호동은 2011년 세금 과소 납부로 탈세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잠정은퇴를 선언, 1년간 방송 활동을 중단했다. 개그맨 이수근도 불법 도박 파문 이후 1년 6개월간 활동을 쉬었다. 말실수로 방송을 중단한 사례는 김구라가 대표적이다. 김구라는 무명시절 인터넷 라디오 방송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비하한 사실이 10년 만인 2012년 뒤늦게 논란이 되자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모두 하차했다
장동민의 사례는 달랐다. 장동민은 앞서 기자회견 당시에도 수차례 ‘사죄’, ‘사과’, ‘죄송’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으나, 자신들이 벌인 불쾌한 파문에 대한 책임을 지진 않았다.
장동민은 당시 향후 방송활동 여부에 대해서는 “촬영한 분량이 상당해서 하차여부를 우리가 결정하는 것은 결례일 거라 생각했다. 제작진의 뜻에 맡기고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고만 말했다.
칼자루를 넘겨받은 모든 채널 제작진은 장동민을 품었다.
종영이 임박한 프로그램이나 매일 생방송을 해야하는 KBS 라디오 프로그램에서의 하차가 전부였다. 심지어 이날 진행된 기자회견 이후 장동민 유상무는 SNS를 통해 자신을 적극적으로 옹호해준 CJ E&M 김석현 PD가 연출 중인 ‘코미디 빅리그’의 녹화에 참석했다.
그 시기 출연 중이던 KBS2 ‘나를 돌아봐’에선 배우 김수미에게 쉴새없이 욕만 먹는 캐릭터를 부각시켰고, JTBC ‘크라임씬’ 시즌2, ‘엄마가 보고 있다’에도 여전히 출연 중이다. 종영이 임박한 프로그램이나 매일 생방송을 해야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의 하차 이외엔
장동민의 지난 발언들이 넘치도록 쌓인 상황에서 즐거움을 줘야하는 개그맨의 얼굴이 불편해질 수 있다는 것을 제작진과 연예인 자신만 간과하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케이블과 종편 채널을 중심으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방송인이기에 제작진은 자신들의 필요에만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제작발표회에서 ‘더 지니어스:그랜드 파이널’의 연출을 맡은 정종연 PD는 “장동민 씨가 방송을 쉬려는 계획이 있었다면 기획을 다시 들어가야 했겠지만 그렇지 않아서 기획 그대로 진행이 됐다”면서 “(논란이) 장동민 씨의 플레이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해 10월 이미 각 시즌 우승자 세 명과 새로운 시즌을 하기로 계획돼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장동민에게 ‘잔인한 4월’이 찾아왔던 상황이다.
당시 논란의 핵심은 무수히 내뱉은 막말 속에서 사회적 약자, 여성을 바라보는 장동민의 왜곡된 시선과 가치관이었다. 한 사람의 인격이 고스란히 투영돼 수많은 흔적을 남긴 말들을 접한 시청자가 과연 장동민의 얼굴을 불편함 없이 바라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장동민은 “웃음만을 생각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뱉는 발언들이 세졌고 좀 더 자극적인 소재, 격한 말들을 찾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그맨과 코미디프로그램을 연출하는 PD들은 “10명이 웃더라도 1명이 불쾌한 감정을 느낀다면 아무리 웃겨도 그런 개그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비틀어 웃기는 개그의 본질은 기본적으로 타자가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해있어야 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고 모욕하며 나오는 웃음이 호응을 받을 리 없다”고 말한다. 방송인 김구라는 10년 전 과거 발언이 도마에 올랐을 당시 당시 “대중이 TV에 나오는 내 얼굴을 볼 때마다 더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방송인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면죄부는 너무 쉽게 주어지고, 연예인은 사안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과 없이 일단 벌어진 사태가 잠잠해지기만을 바라는 모습이다. 제작진의 입장에선 프로그램을 무사히 이어가는 상황이 천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눈 앞의 이익만 낚아채면 그만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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