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비평 - 서병기> ‘세 번 결혼하는 여자’ 가 말하는 이 시대의 사랑법

결혼 · 이혼 · 재혼이라는 선택의 기로
옛 사고로 재단할 수 없는 시대변화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 가족의 본질

배배 꼬여있는 등장 인물들 통해
불행하지 않으려면 잘 몰아야하는
결혼이란 제도의 불완전성 묘사


요즘 ‘나홀로족’들에 대한 뉴스가 부쩍 많이 나온다. 혼자 살면 궁상맞아지는 건 옛말이다. 경제력을 갖춘 프리미엄 싱글족들도 있고, 모르는 사람끼리 요리를 하고 함께 식사하는 ‘소셜 다이닝’ 문화도 있다. 심지어 잃어버린 공동체를 찾으려는 심리는 밥상을 통한 식구(食口) 개념으로 발전돼 ‘셰어하우스’라는 트렌드를 낳기도 한다. 이제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다.

하지만 결혼은 혼자 살 때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외로움을 더 잘 막아준다. 가족은 항상 내편이라는 위로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홀로족이 모두 결혼을 반대하는 독신족도 아니어서 독신과 결혼의 장단점을 단순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결혼과 독신의 장단점은 서로 대비되는 경우가 많다. 결혼이 외로움을 덜어주고 안정감을 주지만, 결혼으로 인한 확장된 가족들의 가치관과 문화는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김수현 작가가 SBS 주말극 ‘세 번 결혼하는 여자’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적어도 “결혼은 불완전한 제도이니, 잘 몰고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행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효과는 있다. ‘세결여’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비판하는 건 아니다. 등장인물 각자가 결혼과 이혼, 재혼이라는 명제를 어떻게 수용하고 풀어가는지를 통해 이 시대 사랑법을 이야기하려 한다.

초반에는 이지아(오은수 역)가 재혼하면서 데려가지 못한 딸 슬기(김지영)와의 관계가 중요했다. 이지아가 엄마의 삶을 살아야 할지, 아니면 여자, 인간으로서의 삶과 행복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짓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변수가 딸이다. 이지아는 자신과 생이별한 딸이 “내가 없어도 엄마는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힘들어하면서도, 재혼한 준구(하석진) 집의 시댁에서는 발랄한 표정 연기를 했다.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관심의 초점은 은수-준구 커플과 채린(손여은)-태원(송창의) 커플의 파경에 이르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강하고 자극적인 캐릭터가 부각이 됐다. 유부남인 준구를 스토킹에 가까울 정도로 집착해 은수-준구 커플을 갈라놓는 톱스타 다미(장희진)와, 다소곳한 스타일로 태원과 재혼했지만 의붓딸을 학대하는 등 거의 무개념 같은 모습을 보이는 채린 캐릭터가 워낙 강하게 부각된다. 이런 강한 캐릭터를 상대해야 하는 준구와 태원 등도 신경질적으로 된다. 특히 준구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까일 것만 두려워하고, 다른 부분은 매우 이기적이고 유아적인 캐릭터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등장인물 각자가 결혼과 이혼, 재혼이라는 명제를 어떻게 수용하고 풀어가는지를 통해 결혼이라는 제도의 불완전성과 함께 이 시대 사랑과 가족의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는 주인공을 제외한 주변인물들이 잘 살아나는데, ‘세결녀’에서는 별로 그렇지는 않다. 여주인공인 이지아의 상황을 시청자에게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하지 못했고, 독립적이지만 사회성이 별로 없고, 15년 짝사랑한 남자 광모와 결혼이 아니라 동거를 하는 이지아의 언니 엄지원(오현수 역)이 호감캐릭터로 자리잡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숨통을 트여주는 캐릭터는 통쾌한 맛이 있는 대사를 구사하는 가사도우미 임실댁(허진)이다. 임실댁은 구시렁구시렁하고 중얼거리다가 촌철살인급 대사가 나온다. 만약 임실댁이 없었다면, 밉상며느리와 기센 슬기 고모, 시어머니의 강한 연기가 반감됐을 것이다.

‘세결녀’에 나오는 인물들은 배배 꼬여 있는 경우가 많다. 임실댁의 안주인 최여사(김용림)는 돈을 밝히는 속물에 억센 성격이고, 최여사의 딸이자 채린의 시누인 정태희(김정난)의 성깔도 보통은 아니다. 채린은 의붓딸 슬기를 보기 싫어할 정도로 이기적이며 거의 호러물 수준의 성격을 드러낼 때도 있다. 그 속에서 태원이 그나마 정상 같지만, 자신의 의지로 재혼한 것이 아니라는 점, 재혼하고도 너그럽게 아내를 감싸 안지 못하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임실댁은 모난 인물들이 많은 그런 가정 속에서 선전하고 있다. 할 말 다하면서도 자신의 위치를 잘 지켜나간다. 모나고 억센 인물들을 약간 조롱하는 듯한 임실댁의 대사와 때로는 푸념 등의 형태로 나오는 셀프 디스는 시청자의 관점을 대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라도 사투리를 차지게 구사해서 코믹하게 느껴지는 듯하지만, 대사 내용을 보면 의미심장할 때가 많다. 사돈집이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다는 소식을 듣고 며느리에게 상속분이 없음을 알게 된 최여사가 체해 몸져눕자 “밥이 체한 게 아니라 욕심이 체했지. 그란디 김칫국물이 욕심도 삭힐랑가는 모르겄네”라고 말한 것은 압권이다.

드라마는 이제 이지아와 송창의의 이혼이 진행되며, 원래 부부였던 이 두 사람이 재회해 서로의 이혼결심을 알게 되는 모습이 예고편에서 그려졌다. 제목에 이미 스포일러가 내장돼 김이 약간 새기는 하지만, 이들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나가며 결혼과 가족의 의미를 제시할 것인지 주목된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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