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일본식 ‘잃어버린 세대’ 등장…20대 비정규직 많고 임금도 10년간 제자리

[헤럴드경제=이해준 기자]일본 경제가 1990년대 초반~2000년대 중반 장기침체에 빠진 동안 고실업ㆍ저임금ㆍ고용불안의 3중고를 겪었던 ‘빙하기 청년층’처럼 한국에서도 2000년대말부터 유사한 고통을 겪는 ‘잃어버린 세대’가 등장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에서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0년대 말부터 청년실업률이 10%를 웃돌고 대졸 초임이 10년동안 정체한 가운데 근로의지를 상실한 니트(NEET)족도 대졸자를 중심으로 급증하는 등 20여년전 일본 빙하기 세대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우리나라 잃어버린 세대 등장의 의미’라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잃어버린 세대들이 10년 이상 지속돼 일본보다 장기화할 수 있다며, 한번 실업을 겪으면 이후에도 취약한 상태가 지속돼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를 보면 ‘빙하기 세대’, ‘빈궁세대’, ‘비참세대’ 등으로 불리는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는 버불 붕괴 이후 199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중반에 걸쳐 학교를 졸업하고 신규 노동시장에 뛰어든 청년들로, 1970년에서 1980년 초반 출생자들이 해당한다.

당시 일본 경제는 엔고와 내수악화 등 장기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기업들의 고용여력이 떨어진 반면, 1990년대 들어 2차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주니어 세대가 20대에 접어들고, 이어 포스트베이비붐 주니어세대가 뒤따르면서 청년노동력은 계속 증가했다.

기업들은 이전까지 유지해왔던 평생고용을 보장하는 형태의 채용을 줄이고 비정규직 고용을 빠르게 늘렸으며, 정부도 기업 구조조정에 부응하기 위해 파견노동법을 개정해 비정규직 고용을 용이하게 하는 등 정부 정책도 청년층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기업 고용방식 변화와 파견노동자 확대정책으로 청년고용을 양적으로 확대하는 데에는 기여했으나, 신규 청년근로자의 비정규직화를 가속화시켜 고용의 질을 떨어뜨리고 워킹푸어 문제를 심화시키며 고실업ㆍ저임금ㆍ고용불안의 3중고를 가져온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1992년 고졸업자 인력에 대한 구인수는 167만명이었던 반면 구직자 수는 50만명에 그쳤지만 2003년에는 고졸취업자 구인수가 22만명으로 줄면서 구인배율이 크게 낮아졌다. 대졸자 취업률도 1991년 81.3%에서 2003년엔 55%로 떨어졌다.

남성 고졸자의 초임은 1993년 월 15만1000엔에서 10년후인 2005년에도 15만8000엔에 그쳐 10년간 4.6% 늘어나는 데 그쳤다. 15~24세 비정규직 비중은 1990년 20.5%에서 2005년 47.7%로 급증하며, 2005년 전체 평균 비정규직 비율(33%)을 크게 웃돌았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성장세가 4%대에서 2%대 후반으로 낮아진 가운데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출생한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손들인 ‘에코베이비부머 세대(1979~1992년 출생자)’들이 대거 노동시장에 진출했다.

반면에 한국의 노동시장은 진출입이 용이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경직돼 있어 신규 노동시장 진입자인 청년층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대학진학률 증가로 인한 학력별 미스매치, 비정규직 확산 등으로 인한 고실업과 저임금, 고용불안이 가중됐다.

실제로 한국 청년층의 졸업 1년 후 취업률은 2003년 71%에서 지난해에는 62%까지 떨어졌다. 실업도 심각하다. 일본의 1993년과 우리나라의 2009년을 잃어버린 세대의 시작 시점으로 보고 청년실업률을 비교해보면, 일본은 청년실업률이 10년 후인 2003년 10.1%로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한국의 20대 청년실업률은 올해 10월 10.1%를 기록해 일본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의 잃어버린 세대들이 받는 월급 수준도 10년째 거의 제자리걸음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이 물가 수준을 고려해 대졸초임을 실질화한 결과 2006년 이후 2014년까지 꾸준히 하락하다 최근 3~4년 동안 소폭 상승했지만 2006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일본에서 실질기준 대졸 초임이 빙하기 동안 소폭이나마 상승한 점을 감안할 때 한국 청년들이 겪었던 임금충격이 더 컸던 셈이다.

이는 실업상태인 청년층이 늘면서 채용과정에서 청년들의 임금협상력이 약화된 것이 주된 원인이지만, 아르바이트나 인턴 등 비정규직 일자리가 확산된 점도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2006년 이후 최근 10년 동안 30대와 40대, 50대 등 다른 연령층의 비정규직 비중이 10%포인트 안팎씩 하락하고 있는데 비해 20대 일자리에서만 비정규직 비중이 30%대 초반에서 계속 오름세를 보였다.

LG경제연구원은 청년실업난이 장기화하면서 과거 일본처럼 한국에서도 그 고용충격이 30대 초반으로 확산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30대 초반 연령층의 취업예비군이 늘어나고 임금 상승세도 꺾이고 있고, 소비성향 하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은 “일본은 청년실업 문제를 뒤늦게 인식해 대책마련이 늦었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소하지 못한 점이 빙하기세대를 만든 요인”이라며 “우리나라도 고용충격이 청년층에 집중되는 만큼 보다 과감한 청년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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