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애의 스크린에서 삶을 묻다]중앙역

저는 편지 쓰기는 조금 귀찮아 하지만 받는 건 무지하게 좋아합니다.결혼하기 전 애 아빠가 부친 편지며 친구들이 부친 엽서나 편지 등을 지금도 보관하고 있죠. 물론 이런 분들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지금이야 전화에 핸드폰, 그리고 이 메일로 안부를 묻고 수다를 떨고 있지만 예전에는 말하기 쑥스러운 애정 고백에 필수적인 게 바로 편지였죠. 편지지 위를 달리는 그 꼬불꼬불한 글씨들이 한없이 친근하게만 느껴지던 때가 저에게도 있었는데 말이죠… 요즘은 연인들끼리 러브레터를 주고받는 일도 이미 구시대의 낡은 유물이 되었겠죠?

아줌마와 편지가 결합된 영화들은 꽤 많이 있습니다. ‘병 속에 담긴 편지’도 같은 범주라 할 수 있고 ‘첨밀밀’을 만들었던 진가신 감독의 헐리우드 데뷔작이라 할 ‘러브레터’ 역시 그러합니다. 한 작은 도시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아줌마가 책갈피에 끼워진 러브레터를 발견하고는 누가 이 러브레터를 보냈나 온 동네의 남자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찬찬히 훑어보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영화죠.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영화 ‘러브 레터’가 ‘처녀들의 러브레터’라면 진가신 감독의 러브레터는 ‘아줌마들의 러브레터’라고 부를 만합니다.

편지는 아니었지만 이 메일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 나가던 맥 라이언과 톰 행크스의 ‘You’ve got mail’ 역시 아줌마와 편지에 관한 이야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맥 라이언이 아줌마가 아니었다고요? 글쎄요? 그 영화에서 맥 라이언은 결혼을 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아마도… 뉴욕 타임즈의 컬럼니스트와 동거하고 있었죠? 그리고 자신이 채팅에 열중한다는 사실을 그 동거인이 알까봐 전전긍긍하던 모습이 생각나는군요.

글을 쓰면서 깨달은 건데 러브레터와 관련된 여자들의 직업은 모두 서점 주인이거나 도서관의 사서군요. 진가신 감독의 ‘러브레터’ 주인공도 작은 소도시의 서점 주인이었고 ‘You’ve got mail’ 의 맥 라이언은 엄마의 뒤를 이어 어린이 책 전문 서점을 운영하던 주인이었습니다. 대형 서점인 FOX의 오픈으로 어이없이 문을 닫아야 했지만 말이죠. 그리고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러브레터’에서 그 나카야마 미호가 열연했던 히로키의 직업은 도서관 사서였습니다. 그리고 보면 ‘러브레터’라는 이미지는 책을 사랑하고 책과 더불어 살아가는 여자를 형상화시키는 키워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가 좀 두서없이 횡설수설하니 정신없는 것 같지만 하여간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건 아줌마라는 성격과 편지의 기능이 가장 극단적으로 조화되었던 영화가 바로 브라질 영화인 ‘중앙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99년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죠. 이때 수상작은 ‘인생은 아름다워’였구요, 함께 노미네이트되었던 영화가 제가 지난 컬럼에 소개해드렸던 아르헨티나 영화인 ‘탱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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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영화 ‘중앙역’은 98년도 베를린영화 황금곰상 수상, 99년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 및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되는 등 그해 영화제의 단골 수상작이었다. Photo IMDb

‘중앙역’은 뻔뻔스러우면서 무지하게 외로운 브라질 아줌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괴팍하기 그지없고 자기밖에 모르는 도라… 푸석푸석한 얼굴에 제대로 손질 한 번 안 한 듯한 머리, 화장이라고는 립스틱 한번 안 바른 듯이 까칠까칠한 입술… 세상이 자신에게 베풀어준 건 외로움과 메마름, 그리고 증오 밖에 없음을 시위하듯 누렇게 뜬 얼굴에 볼멘 모습으로 세상을 향해 가라앉지 않는 불만을 툭툭 내던지는 그녀… 브라질 영화 ‘중앙역’은 98년도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수상, 99년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 및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되는 등 그해 영화제 단골 수상작이었다. Photo by IMDB

한때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는 것도 지금 그녀의 모습을 위로할 수 없으며 그 많은 문맹자 중에 글을 알고 쓸 수 있다는 것도 그녀에게는 자랑이 아니죠. 오로지 그 알량한 지식은 가난하고 글 모르는 사람들의 편지를 대신 써주며 자신의 입을 봉양할 돈을 버는 한갓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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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단절된 현대인들은 사막과 같은 황량함을 껴안고 살아가고 있다. 사진은 조수아 내셔널 파크의 황량한 사막지역에서 조슈아 트리가 홀로 서있다. Photo by Myoung Ae Lee

도라는 오늘도 온갖 종류의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잠시 머무르다 자신들의 사연을 풀어내고는 다른 곳으로 떠나버리는 리오의 중앙역 광장 한구석에 삐그덕거리는 책상을 놓고 손님을 기다립니다.

방탕한 아들을 용서했으니 집으로 돌아오라며 한숨을 내쉬고 가래 섞인 음성을 그렁거리는 아버지, 지난밤을 함께 보냈던 여인의 살내음을 그리워하며 목소리가 젖어드는 청년, 아들이 아빠를 보고 싶어한다는 말로 자신의 그리움을 내비치며 말꼬리를 감추는 아내…

중앙역 한 구석 도라의 책상 근처에는 인간의 희노애락이 소용돌이칩니다. 하지만 주절주절 읊어대는 사람들의 청승에 신물이 난 도라는 애써 삶의 모습들을 외면한 채 손끝만 내달리지요. 아무 감정을 섞지 않은 채 무뚝뚝한 말 한마디를 내뱉으며 재빠르게 글씨만을 적어 내려가는 도라는 그저 돈벌이에 하루하루 급급하고 살아가는 재미도 느끼지 못하는 메마른 아줌마의 전형입니다.

도라의 손을 거친 이 구구절절한 사연들은 도라의 집, 서랍장 위에… 식탁 위에… 장식장 위에서… 일상의 먼지들 속으로 파묻혀, 편지를 보낸 사람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남게 됩니다. 부쳐지지 않을 편지들… 꿈과 희망, 그리움과 애절함의 사연들은 애초 인간들의 몫이 아닌 듯 농담 몇 마디와 함께 쓰레기통으로 직행하죠.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한국의 아줌마들만 뻔뻔스러운 건 아니군’ 이런 생각이 절로 들더라구요. 하지만 아줌마란 존재가 또 누구입니까? 조금 뻔뻔스러운 것같다가도 누구 인생이 꼬인다더라, 혹은 아파서 고생한다더라 뭐 이런 이야기만 들어도 눈물에 콧물 흘리는 이들이 바로 원래 정에 약한 종족, 아줌마들인 거 아시죠? 물론 시대가 변하면서 이런 아줌마들도 예전보다 많이 줄었지만 말입니다.

어느 날, 아들과 함께 와서 아들이 아버지를 보고 싶어한다는 사연(사실은 남편을 그리워한다는 고백을 이렇게 돌려서 말하는 거겠죠?)을 들려준 한 여인이 편지를 쓰고 돌아가는 도중 철로에서 노는 장난꾸러기 아들, 조슈아를 구하려다 사고로 죽게 되었습니다. 고아가 된 조슈아를 보살펴 줄 유일한 혈육인 아버지의 주소를 아는 이는 이 세상에서 단 한 명 도라 뿐…

엄마가 죽은 역 근처를 떠돌며 도라 곁을 서성이는 고아, 조슈아… 도라는 얼떨결에 조슈아를 집에 데리고 오긴 했지만 조슈아는 도라의 집안에 널린 편지들을 보고는 엄마가 보낸 편지가 아버지에게 갈 가망성이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조슈아는 도라에게 엄마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를 돌려줄 것을 요구하고 당황한 도라는 갑자기 자신의 삶 속에 끼어 든 조슈아를 어린이 양육센터에 보낸 후, 사례금을 받아 그렇게 갖고 싶었던 컬러 텔레비전을 구입합니다.

하지만 이 어린이 양육 센터는 라틴 아메리카 어린이들의 장기를 미국이나 선진국으로 팔아버리는 장기 매매단의 공식적인 공급처였죠. 조슈아를 장기 매매단에 판 대가로 컬러 텔레비전을 샀다고 인정하기 싫었던 도라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다음날 아침 일찍 어린이 양육 센터로 가서 조슈아를 데리고 탈출을 시도합니다. 뒤를 쫓는 폭력배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하여 무작정 길을 떠나는 도라와 조슈아. 마침내 이 둘은 조슈아의 아버지를 찾아 먼 여행을 떠나죠. 편지의 주소는 브라질의 맨 끝, 이른바 ‘세상의 끝’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는 신개척지였죠.

그곳을 찾아가는 여정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조슈아는 도라를 미워하면서도 차츰 그녀가 그리 나쁘지 않은 사람이란 걸 알게 되고 도라 역시 따뜻했던 자신의 본성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음을 조슈아를 통해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돈도 없이 쫓기 듯 여행을 떠난 두 사람은 늘 돈 문제로 사사건건 충돌합니다. 도라의 시계를 풀어 차비를 해결하고 먹을 걸 살 돈이 없어 몰래 물건을 훔치다가 들키기도 하죠. 이때 도라를 위기로부터 구해주는 한 남자가 나타납니다.

‘이 숙녀분이 과자나 훔칠 사람으로 보이냐’며 위기에서 도라를 구해준 트럭 운전사는 기꺼이 한끼 식사를 대접합니다. 글쎄요. 아마도 제가 읽어내기엔 도라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그녀에게 최초의 호감을 보인 남성일 것 같은 그 트럭운전사의 자상함에 도라는 쉽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죠.

외로움에 찌들대로 찌든 도라… 트럭운전사의 단순한 호의에도 쉽게 자신의 마음을 열고 외로움을 호소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남자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정말 오랜만에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고, 부석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쓸어 올립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장을 하듯 꺼칠한 입술에 립스틱을 조심스럽게 발라 보죠.

저는 이 영화에서 이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되돌려가며 다시 한번 보고…또 한번 돌려보았죠. 도라의 그 섬세한 얼굴 근육의 떨림을 눈여겨보며 외로움에 지친 여자의 모습을 두 눈에 각인시키려는 듯, 한 동안 뚫어져라 화면을 응시했습니다.

하지만 테이블로 돌아온 도라를 기다린 건 트럭을 몰고 떠나버린 트럭 운전사의 텅 빈 의자였습니다. 그 트럭 운전사는 무엇이 그리 부담스러워 인사말도 건네지 못하고 황망히 자리를 뜬 걸까요?

도라와 조슈아는 다시 둘 만 남겨지고 조슈아의 재치로 도라가 편지를 적어주는 일을 하면서 적지 않은 돈을 벌게 됩니다. 오랜만의 만찬과 기분이 좋아진 도라와 조슈아는 기념사진을 찍으며 이제 적대적 관계에서 따뜻한 본성들을 지닌 친구로 서로를 보게 됩니다. 물론 도라는 이제 편지들을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지 않고 편지를 불러준 이들이 원했던 수취인에게 부쳐주죠.

조슈아가 한번도 만나 보지 못했던 아버지가 산다는 그곳에 버스를 내린 두 사람… 하지만 그곳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아버지 대신 아버지가 남겨 놓은 배다른 형제 두 명을 만나게 되죠. 그렇게 죠수아의 어머니가 만나길 원했던 죠수아의 아버지는 그 여인을 찾아 떠난 지 근 일 년이 지났습니다.

인생의 엇갈림과 그 엇갈림의 혼미함 속에서도 자신의 흔적이라 할 자손을 남겨 놓을 수 있는 인간이란 존재가 평범하지만 동시에 대단하다고 생각되었죠.

조슈아를 통해 새롭게 자신의 삶을 바라보게 된 도라는 ‘나’를 찾게 해준 조슈아에게 마지막 인사의 편지를 남기며 세상 끝에 총총히 걸린 새벽 별빛을 받으며 버스에 오릅니다.

저는 한 장의 편지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그만큼 편지는 진솔한 것이라고 믿었고 또한 진실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고 세상을 알아갈수록 저 역시 편지를 쓰는 것에서 멀어져버렸습니다. 늘 업무적인 이메일만을 손쉽게 쓰고 send 버튼을 눌러버립니다.

편지를 쓰는 일이 없어지자 자연스럽게 진솔과 진실함에서도 멀어진 듯합니다. 이런 이유일까요? 저는 예전의 저라면 상상하지 못할만큼 여러 가지 맞닥트리기 거북한 진실들을 제 곁에서 밀어내려고 합니다.

피곤한 직장 생활과 가정생활을 하며, 대면하면 편치 않을 진실들을 애써 외면하며 살았습니다. 그 저잣거리에 널린 거짓의 수많은 유혹들로부터 제대로 저를 지키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말이죠.

이렇듯 세상과 쉽게 타협하고 현상을 그대로 인정해 버리는 손쉬움으로 몸과 마음의 피곤함을 달래려 하지요.

무엇이 진실이고 어디부터 거짓일까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진실과 거짓의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거 하나는 있습니다.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방법이 되었든지 간에… 그리고 그 내용이 진실이든 아니면 가벼운 제스추어이든… 세상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꿈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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