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서 보기 힘든 전시회] 클림트 명화 감상하기

화폭 가득히 황금빛 물결이 출렁인다. 화집에서나 만나볼 수 있었던 클림트의 작품을 이곳 LA카운티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흔치 않은 행운이다.

클림트의 대표작인 ‘키스’를 접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대신 클림트 특유의 황금빛으로 온통 물든 여인의 초상화 2점과 풍경화 3점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4월4일부터 전시되며 오는 6월 30일까지 계속된다. 이번 LACMA의 클림트 전에는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부인을 그린 초상화 2점인’아델레 블로흐-바우어 부인(Adele Bloch-Bauer Ⅰ·Ⅱ 1907)’와 ‘아테르제 운테크 집들(House in Unterach on Lake Atter·1916)’ , ‘자작나무 숲(Beechwood·1903)’, ‘사과나무(Apple Tree·1911)’ 총 5점이 전시되고 있다.

800px-Gustav_Klimt_047 By Gustav Klimt – The Yorck Project (2002) / Wikipedia

이번 전시회는 오스트리아 정부와 오랜 기간 법정 투쟁을 벌인 끝에 지난 1월 오스트리아 법정으로부터 나치에 의한 약탈임을 인정받아 클림트의 작품들을 되돌려받게 된 마리아 알트만의 동의로 열리게 됐으며 마리아 알트만은 초상화 속의 주인공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부인’의 조카다.

미술계에서는 클림트의 작품이 한 점당 수천만달러를 호가하고 있어 이들 5작품이 경매에 부쳐졌을 경우 3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LACMA 5905 Wilshire Blvd ▲개관 시간 월·화·목요일 오후 12시~8시까지 금요일 오후 12시~9시, 토요일 오전 11시~오후 8시 ▲문의 (323)857-6000 ▲웹사이트 www.lacma.org

이명애 기자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오스트리아 현대 화단을 대표하는 국보급 화가.

금세공사였던 아버지 에른스트 클림트의 7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크리스마스에도 집에 빵 한조각 없을만큼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정식 화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실업계 학교에 진학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데싱 솜씨가 뛰어난 것을 지켜본 친척의 도움으로 비엔나장식미술학교에서 본격적인 미술 교육을 받았다.

이곳에서 페르디난트 라우프베르거, 한스 마카르트 등 당대 화가들의 주목을 받아 오스트리아 곳곳의 벽화를 작업했다. 클림트가 화가로서 활동을 벌이던 비엔나의 예술계는 은 유럽 제국에서도 가장 낡고 고루한 사상으로 젊은 예술가들을 좌절케하는 곳이었다.

늙고 고루한 예술가들의 횡포와 과도한 상업성 지향으로 인해 새로운 예술계의 자기 혁신에 대한 필요성이 넘쳐날 때 클림트는 보수적인 예술가 집단인 ‘쿤스틀러 하우스’를 탈퇴하고 건축가인 오토 바그너, 디자이너인 콜로만 모저, 요셉 호프만 등과 함께 ‘비엔나 분리파’를 창설, 초대 회장에 선임되면서 건축 및 문학작품 등 예술계에 걸쳐 새로운 기운이 넘쳐나게 된다.

하지만 클림트의 뒤를 따라다니는 말 뒤에는 늘 에로티시즘에 과도하게 집착한다는 비난이었다. 1894년 오스트리아 문교부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비엔나 대학 강당의 천장화 ‘철학’과 ‘의학”법학’은 비평가들과 일반인들로부터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격렬한 반대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비엔나를 제외한 해외에서의 평가는 정반대였다.

로댕은 클림트의 벽화 ‘베토벤 프리체’에 대해 “너무나 비극적이고 너무나 성스러운 작품”이라는 찬사로 그의 예술의 진가를 높이 평가했다. 클림트의 비엔나 분리파에서 모네, 샤반느, 막스 클링거, 맥도널드, 매킨토시 같은 외국의 뛰어난 화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오스트리아에 모더니즘을 선보이고 다시 오스트리아 비엔나 화풍을 유럽 전역으로 전파시켰다.

클림트의 대표작은 뭐니뭐니해도 1908년에 발표된 ‘키스’다. 일명 황금시대로 불리는 클림트의 전성기를 여는 작품 ‘키스’는 남성과의 키스를 통해 여성의 꿈꾸는 관능과 열정의 순간을 그려냈다.

클림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그보다 더 이상 화려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화려함 뒤, 몽롱한 눈빛 속에 감춰진 슬픈 눈을 갖고 있다.

그래서일까? 생전의 클림트는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자식은 14명이나 됐다. 클림트 사후 14명 자식들의 어머니들이 클림트 유산에 대한 상속을 요구하면서 클림트의 그림들은 각각 나뉘어졌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생애와 예술 세계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지난 2002년 출간된, ‘클림트 황금빛 유혹(다빈치 간 신성림 지음)’을 읽어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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