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오픈 마인드와 역지사지(易地思之)… 그리고 소통

얼마전 타운에서 크게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분을 만났다. 이 분의 요즘 최대 걱정은 종업원들이 걸어온 집단 소송이었다. 오버타임에서부터 휴일근무, 현금으로 지급해 누락된 페이롤 부분까지 법대로 따진다면 이분의 비즈니스는 문 닫아야 할 형편일 만큼 소송금액이 엄청났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또 한 분은 운영하던 커피숍을 급히 처분하고 한국으로 귀국하게 됐다며 식사나 하자고 초대했다.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유를 묻자 ‘사실은 사정이 있어서 다 정리하고 도망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요는 이랬다. 커피숍을 운영하기 전 캄튼에서 E2비자로 운영하던 뷰티 서플라이에 강도가 들었다. 당시 종업원이었던 여자 분과 안주인은 몸싸움 끝에 가벼운 상처를 입고 현금을 강탈 당했다. 종업원과 함께 안주인도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도 받고 서로 걱정해주던 차에 갑자기 며칠 있다가 이 종업원이 연락도 없이 나오지 않더니만 변호사를 통해 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머리가 아파서 아마도 뇌에 문제가 생긴 것같으니 앞으로 중대한 신체 장애가 예상된다는 의사의 진단서와 함께 첨부된 소장에는 30만불이 넘는 피해 보상액이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전 재산을 다 털어도 30만불도 안되는 이들 부부는 하늘이 노랗게 돼 종업원을 찾아 눈물로 호소하고 애원해도 계속 강경해지기만 하는 이분의 태도에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결국 법정싸움을 계속 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부부가 제시한 최종 1만불의 협상에도 타결을 못하고 판결을 앞에 두게 되자 미국이란 나라에 환멸을 느껴 다 정리하고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명예퇴직 다 하고 집까지 팔고 온 부부였는데 사실 돌아가면 막막하기란 미국에 처음 올 때 못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한국행은 미국 이민 초기로 돌아가는 것이나 똑같은 상황이었다. 

종업원들이 집단 소송을 걸어온 그 회사 역시 금액으로 보면 회사에서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는 엄청난 숫자임에 틀림없었다. 이 회사 오너 역시 ‘어차피 이렇게 된 바에야 문 닫고 확 도망가버려…’라는 생각을 잠깐이라도 했을 것이다.

 

타운에 이러한 유사 소송 때문에 자리에 눕는 스몰 비즈니스 오너들이 많다고 한다. 특히 요식업소와 같은 경우 속성상 오버타임이 발생할 수 밖에 없고 각종 종업원 상해보험 적용 케이스도 많다. 개중에는 이야기만 들어도 별의별 희한한 소송도 많이 진행 중이다. 소송을 당한 오너들은 며칠은 눕거나 두문불출, 간혹 장기간의 한국행을 감행하는 이들도 있다. 현실에서 일단 도피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소송을 이끌고 있는 타운의 소송전문 변호사에 대한 적개심을 나타내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물론 이들 변호사들이 커뮤니티의 경제력이나 정서를 무시한 채 잠자고 있는 활화산을 연일 들쏘시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만을 탓하기에는 그간 한인 경제인들이 종업원들의 근대적인 노동환경을 너무 도외시한 것은 아닌지 반성부터 해봐야 한다. 최근 계속된 소송과 이를 보도하는 언론 등으로 인해 직장내 성희롱이나 인종 차별, 오버타임 등에 대해 오너들이 각별히 신경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각별히 신경 쓴다고 이런 문제가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단지 귀찮고 비용이 소요되는 불편과 피해를 피하기 위해 조심하면 된다’라는 생각보다 삶에 대한 태도를 한번 점검해보는 계기를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늘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두 가지가 있다. 만약 내가 저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이다.

또 하나. 내 마음을 진솔하게 털어놓으면 무언가 해결책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오픈 마인드(Open Mind)’다. 멘토로 삼았던 한 선배의 가치관을 배우고 싶어 대학 시절부터 가져온 마음이니 벌써 20여년이 넘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이 두 단어를 실천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아집’이란 거대한 벽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집’은 사람과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 깨질 수 있다. 단, 너무 견고해진 아집은 깨지기 쉽지 않다.

그러므로 아집으로 똘똘 뭉쳐 타인이 접근하기 힘든 견고한 성곽이 되기 전에 좋은 사람들, 뜻맞는 사람들과 소통을 게을리 할 수 없다. 나와 같이 일하고, 나와 같이 한 집에서 사는 이와 끊임없이 오픈 마인드하고 역지사지하는 것.

이런 소통의 과정만이 불신과 오해로 점철돼 극한 대립으로 가는 길을 막는 원초적인 방법이다. 

이명애/미주 헤럴드경제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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