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LA한인회장들끼리 맞대결하는 양상이 돼버린 미주 한인상공인 총연합회(이하 총연) 회장 문제가 정주현 총연 이사장의 치밀한 연출에 따라 빚어진 일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총연은 지난 7일 라스베가스 정기총회에서 제20대 양재일 회장이 임기를 1년여 남겨놓고 자진 사퇴함에 따라 잔여임기를 채울 후임 회장으로 하기환 전LA한인회장을 선임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17일 오렌지카운티에서 가진 총연 임시총회에서는 양재일 회장 불신임을 결의한 뒤 제21대 회장으로 남문기 현 LA한인회장을 추대했다.
결과적으로 상공인 총연은 20대 회장 하기환씨와 21대 회장 남문기씨가 공존하는 웃지 못할 상황을 맞은 셈이다.
상공인 총연이 임시총회와 정기총회를 통해 두 명의 회장을 뽑게 된 것은 남문기 회장을 추대한 임시총회의 절차상 문제를 지적,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정주현 상공인총연 이사장측의 반발에 따라 이뤄진 결과이다.
정 이사장은 2006~2007년 LA한인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LA한인상의 회장직을 물러난 직후 그전까지만해도 남가주 한인사회에서는 존재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상공인총연에 개입, 양재일 회장과 손을 잡고 이사장이 돼 오늘에 이르렀다.
라스베가스 총연 정기총회와 정기이사회는 개최 직전까지만해도 오렌지카운티 임시총회에서 제21대 회장으로 선출한 남문기 회장과 대타협을 이루는 분위기였다.
임시총회의 절차상 문제를 지적하면서 남문기 회장 추대를 인정하지 않던 정주현 이사장측이 타주 출장 중이던 남문기 회장을 설득, 라스베가스 총회에 참석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회 직전 남문기 회장은 난데없이 하기환 전 LA한인회장이 상공인 총연 총회에 나타났다는 소식에 발길을 돌려버렸다. 남 회장은 “사전 협의 끝에 통합을 이루기 위해 라스베가스에 왔지만 갑작스럽게 하기환 회장이 양해를 구하는 전화를 받고 크게 당황했다”라며 “결과적으로 특정인에 대해 놀아나게 돼 황당하다”라고 말했다.
하기환 회장도 황당해 했다. 하 회장은 “한국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상황 파악도 잘 못한 채 라스베가스 총연 총회에 참석해달라고 해서 급하게 갔을 뿐”이라며 “남 회장에게 (총연 회장문제를) 다 맡도록 정리했다고 해서 그런 줄 알고 왔는 데 나를 회장으로 뽑아 솔직히 당황스러웠다”라고 밝혔다.
한인 단체사회의 대표적 인물들인 하기환 남문기 전·현직 LA한인회장들을 이렇듯 마치 장기판을 놓듯 마음대로 움직인 그 탁월한 조종력의 주인공과 관련, 정주현 이사장에게 눈길이 쏠리고 있다.
정 이사장은 지난 달 LA한인상의 회장 경선 당시 스테판 하 후보를 지원하면서 라나 최 후보를 지지한 하기환 회장과 대립한 바 있다.
단체사회에서 맏형격인 하 회장과 경쟁했다는 부담을 갖고 있던 정 이사장은 상공인 총연의 회장직을 ‘선물’하는 것으로 마음의 빚을 갚기로 했다는 게 한 관계자의 말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통합을 위해 애써 라스베가스총회 참석을 유도했던 남문기 회장의 반발이 예상됐을 것이다. 그러나 남 회장은 어디까지나 제21대 회장으로 추대된 터였다. 하 회장은 제20대 양재일 회장의 잔여임기를 수행할 뿐이다.
따라서 20대냐, 21대냐라는 회장의 ‘대수 ‘문제만 절충하면 상공인 총연의 분열상은 마무리된다는 계산이 작용한 셈이다. 무엇보다 하회장과 남회장이 평소 말이 통하는 우호관계였던 점도 고려됐을 법하다.
회장으로 인정한다, 안한다라는 문제보다 누가 20대냐, 21대냐 라는 문제는 하-남 두 회장 간에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총연 총회를 열었지만 임시총회에서 추대된 남 회장을 일거에 무시하긴 어렵고, 순순히 인정하자니 백기를 드는 듯한 자존심 문제가 있었던 참이었을 게다.
여기에 어차피 불신임 당한 양재일 회장을 자진사퇴 형식으로 끌어내리고 그 잔여임기를 맡을 ‘조커’역할의 카드로 하기환 회장을 선택, 부담스럽기만 하던 ‘분열의 탁구공’을 남-하 두 회장간의 테이블로 넘길 수 있어 정 이사장으로서는 일거다득의 효과가 있는 각본이었다.
정 이사장은 “총연을 이사장 혼자 좌지우지한다는 건 말도 안된다”라고 ‘각본 연출설’을 단호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통합 문제는 (하기환, 남문기) 두 회장들이 풀어갈 문제”라고 말했다.
이경준/미주 본사 취재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