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빼써야’…체킹·세이빙에 자금몰려

34세의 뉴요커 안드레아 페레즈는 최근 1만5000달러 상당 양도성 예금증서(CD)의 만기가 도래하자 바로 현금화한 뒤 체킹계좌에 입금했다.
 
지난 2년간 5%의 수익을 챙겼지만 이제는 금리가 1% 미만으로 떨어지면서 장기상품에 돈을 묻어둘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막 직장을 옮겼는데, 돈을 쉽게 찾을 수 있길 원한다”고 말했다.
 
페레즈의 사례가 말해주듯 경기침체의 여파 속에 최근 미국인들은 쉽게 돈을 찾아 쓸 수 있는 체킹 계좌나 수시 입출금식 세이빙스 계좌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금융상품의 조기 해약에 따른 위약금 부담이나 세이빙스 계좌의 낮은 이자율을 감수하고라도 쉽게 현찰을 만질 수 있는 심리적 안정감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인은행가에서 일어나고 있다.
 
CD고객들은 만기가 도래하면 다시 재가입을 하기 보다는 세이빙스 계좌를 선호하고 있다. 어짜피 낮은 이자율로 큰 수입을 올리지 못할 것이라면 입출금이라도 편한 쪽을 택하는 것이다.
 
은행들도 이자를 받아야 하는 대출이 정상적이지 못한 가운데 이자가 나가는 CD쪽을 그리 반기지 않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금융 데이터 분석회사인 ‘마켓 레이츠 인사이트(Market Rates Insight)’에 따르면 올 상반기 미국민들이 CD에 투자한 금액은 약 2000억 달러 감소한 반면 체킹 및 세이빙스 계좌 예치금은 1710억 달러 증가했다. 아울러 미국인들은 올 1~8월 뮤추얼 펀드에서 총 1453억 달러를 빼낸 것으로 나타났다.
 
마켓 레이츠 인사이트의 댄 겔러 부회장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현금화하기 쉬운 쪽을 선호하기 마련”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경향을 초래한 주된 원인은 낮은 이자율에서 찾아야 한다. 2010년 상반기 미국 은행의 예금 이자율 평균은 1.2%에서 0.99%로 떨어졌다. 1950년대 이후 이자율이 1% 미만으로 내려간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고 장기 투자 상품이나 장기 적금 계좌를 외면하는 민간의 자금이 시장에 풀리는 것도 아니다. 지난 7월 미국인의 신용카드 사용액은 23개월 연속으로 하락했고, 민간의 대출 총액은 최근 18개월 중 17개월째 전월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결국 연방 정부는 기업 투자 및 소비자 지출을 촉진함으로써 불황을 탈출하고자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제 상황은 민간의 소비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는 셈이다.
 
성제환 기자·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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