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터뷰]이윤지, 당신의 30년 後가 기대됩니다

연기자로서 대중을 만난 지 어느덧 10년. 데뷔 이래 쉼 없이 다수의 작품을 소화했다. 누군가를 빛내기 위한 역할도 마다치 않았고, 가장 빛나는 역할로 사랑도 받았다.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미니시리즈부터 중장년층을 아우르는 일일극과 주말극, 공포와 로맨스 180도 다른 영화로 관객들도 만났다.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하는 배우 이윤지는 꾸준히 대중 앞에 모습을 비쳤다. 최근 종영된 KBS2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극본 문영남, 연출 진형욱)이 그의 최신작이다. 왕씨 집안 셋째딸 광박으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꿈을 찾아 선생님을 그만두고, 작가 지망생으로서의 길을 걸으며 가족과 갈등 한 번, 반대하는 결혼을 추진하기 위해 갈등 두 번, 끝으로 시아버지와의 사이에서 갈등 세 번. 우여곡절 많은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보냈다.


◆ 배우, 그리고 ‘이윤지’를 성장할 수 있게 해준 작품

종영했지만, ‘왕가네 식구들’을 향한 애정은 한 작품을 마친 한 배우의 아쉬움 그 이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연기자’가 아닌 한 개인으로서도 한 걸음 나아가게 만들어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끝나기 전에 약간은 홀가분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마지막 회가 흐르는 한 시간 내내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동안은 역할 때문에 울곤 했는데, 이번엔 가족들이랑 헤어진다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질 않았어요. 물론 배우 인생에서도 큰 도움이 되는 작품이겠지만, 이윤지라는 한 사람을 두고도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기의 완성도는 제가 판단하는 부분이 아니니까, 잘 모르겠지만요(웃음)”

특히나 정이 많이 든 작품이다. 한여름에서 가을을 지나 한겨울까지 오롯이 왕가네의 식구로 지내서일까, 다른 작품보다 유독 아쉬움이 컸다.

“식구들에게 정이 많이 들었어요. 작품이 가족들의 이야기이고, 현실과 가깝다 보니 훨씬 이입이 많이 되어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스스로도 ‘이렇게까지 울 일인가?’ 할 정도로 눈물이…(웃음) 끝난 뒤에 고이 모아둔 대본을 펼쳐놓고 또 한 번 울음을 터뜨렸어요”

이윤지는 셋째 딸 광박으로 ‘왕가네 식구들’ 속 엄마, 아빠, 할머니, 그리고 언니들에게 기댔다.

“배우대 배우, 연기로도 상담했고 사적인 부분까지도 털어놓는 사이였어요. 가족끼리 있을 법한 일들과 생각, 가깝게는 언니들 그리고 엄마에게도 모르는 건 여쭤보고 좋은 말씀도 많이 듣고요”


◆ ‘광박이’를 통해 얻은 배움

‘왕가네 식구들’ 속 광박은 꿈과 사랑을 위해서라면 누구보다 용기 있는 인물이었다. 식구들 모두와 잘 지냈고, 집안의 해결사 노릇도 톡톡히 했다. 별 탈 없이 지내는 듯 보였으나 꿈과 사랑을 얻기 위해서 외적, 내적 갈등을 이겨냈다.

“광박이 같은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용기 있고, 어떤 선택에서 결단력 있게 추진하는 모습, 이런 친구가 있으면 참 좋겠다 싶었죠”

“광박이를 통해서도 많은 걸 배웠어요. 그렇게 당차던 아이가 결혼과 시집살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서는 조심스러워하고, 답답한 모습도 보였죠. 작품 속 캐릭터에게 좋은 영향을 받으려고 하는 편인데, 광박이는 여전히 성장해나가고 있는 이윤지라는 사람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입니다”

작품 속 캐릭터에게 받은 좋은 에너지로 다음 행보를 이어가는 이윤지. ‘그의 행동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라는 마음으로 캐릭터를 바라봤고,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친구가 됐다.

“생각해보면 배우라는 직업은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성과물이 나오는, 한 사람의 세월의 흐름이 작품과 캐릭터에 고스란히 녹아드니까요. 때로는 그게 어렵고 힘들기도 하겠지만,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책임감을 갖게 하니까요. 20대와는 다를 수밖에 없는 지금, 역할뿐만 아니라 ‘이윤지’도 변했고 성장해갑니다”

가족극이었기에 또래보다 선배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나문희, 김해숙, 장용.

“나문희 선생님을 비롯한 김해숙, 장용 선배님을 보면서 ‘멋지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주름만큼의 내공을 바라보게 된 거죠. 이번 작품을 하면서 선배님들이 ‘이렇게 살면 된다’는 앞으로의 지침을 보여주셨어요. 다가오는 건 받아들이고, 떠나가는 건 보내면서 그렇게…”

“작품과 함께 나이를 들어간다는 말, 그게 무엇인지 20대를 꽉 차게 달려오니 확 와 닿아요. 카메라 앞에서 나이가 들어가고 있구나, 기분이 좋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 강렬함을 줄 수 있는 배우

2013년에 시작해 새해를 맞이하며 작품 하나를 끝마쳤다. ‘광박’을 만나기 전 이윤지였더라면 진작에 다음 작품이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애써 빠져나오려고도, 세탁기를 돌리고 그것도 모자라 손으로 문질러 새하얗게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걸 10년이 흐른 지금, 비로소 알았다.

“데뷔 후 처음으로 조금 쉬어봐야지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동안은 ‘쉬면 뭐해요?’라는 생각으로 살아왔거든요. 공간을 비워두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틈 없이 계획을 세우고, 습관이 달력을 보는 것일 정도니까요(웃음). 늘 과분한 계획을 세워놨었는데…이번엔 아직 차기작을 정해놓지 않았습니다. 나를 돌아보며, 다시 땅 다지기를 한 번 해야 할 것 같아요. 사소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가장 다른 점이에요”

백지가 아니어도 좋다. 색이 조금 바래도 그것 역시 나름의 매력이 있으니까.

“이번만큼은 마음가짐이 좀 달라졌다고 할까요? 백지로 돌아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지난날이 있었다면, 이번엔 그냥 두기로 했어요. 빠져나갈 건 나가고, 남은 것은 그대로 두려고요. 깨끗하게 세탁해서 탈수까지 하는 방법을 추구했는데 이번엔 날도 그리 춥지 않으니 밖에다 한 번 널어볼까 합니다”

배우로서는 물론, 이윤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왕가네 식구들’. 극이 끝나고 많은 이들에게 회자된 ’30년 후의 에필로그’, 실제 배우 이윤지의 30년 후가 새삼 기대된다.


“안달하지 않아도, 조급해하지도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았어요. 나이가 2에서 3으로 넘어갈 땐 불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는데, 나이를 괜히 먹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웃음). 저도 기대해보고 싶어요. 결과물이 어떻든 이 또한 과정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잠시 뜸을 들이던 이윤지는 이윽고 말을 이었다.

“나문희 선생님이 출연하신 영화 ‘수상한 그녀’를 보았는데, 큰 스크린에 선생님의 얼굴만 가득 차 있는데…그게 그렇게 강렬할 수가 없더라고요. ‘나도 먼 훗날 강렬함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될 수 있을까?’ 대단하다, 놀라면서 봤어요. 선생님 나이가 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그렇게 꼭 오랜 시간 성장하면서 관객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관객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며 ‘잘 살아가는 배우’라고 존중, 존경받고 싶어요. 또 하나, 배우이기 전에 늘 좋은 사람이고 싶고요(웃음)”

김하진 이슈팀기자 /hajin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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