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육강식의 인정사정없는 이기심만이 판치는 정글과도 같은 대도시 삶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가난한 소년의 얘기가 담겨 있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명곡 ‘더 복서(The Boxer)’. 무자비한 글러브가 남긴 상처와 수치심, 지옥 같은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귀향하겠다는 희망마저 분노와 절망으로 바뀌고, 여전히 링에 서 있어야 하는 권투선수. 하지만 또 누군가는 그 권투선수처럼 단 한 번만이라도 링 위에 올라가 싸워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꾼다.
정치ㆍ경제ㆍ문화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관 지어져 있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작은 균열이나 충격에도 영향을 받는다. 세상은 점점 더 혼란스럽고 1년 365일 내내 혹독한 겨울의 시련만이 가득한 것 같다. 이런 묵시록적인 비관론의 근거는 도처에 깔려 있다. 음악 신으로 한정해 바라보아도 무엇 하나 제대로 서있는 것이 없는 상황이다.
전대미문의 기적과도 같았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비롯한 K-팝 열풍, 전 세계가 열광하고 세계정복이 멀지 않을 것 같았던 2012년의 떠들썩했던 축제의 광기는 찰나의 기적으로 끝나고 만 것인가. 여전히 매스미디어는 K-팝의 위대한 성과와 기적을 떠들어대지만, 공허하기만한 신화나 전설을 듣는 기분이다.
음악생산자들을 거리로 나서게 한 온라인 음악 산업 정상화의 슬로건 ‘스톱 덤핑 뮤직(Stop Dumping Music)’은 지난해 비틀린 음악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하나의 상징이었다. 거리, 수많은 카페, 스마트폰 등 세상 어디에도 음악은 넘쳐나지만, 그 음악을 만들고 제작하는 대부분의 생산자들은 가난하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배고플 것이라는 체념에 빠져있는 듯하다. 오디션ㆍ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이름과 얼굴을 알리지 못하는 대부분의 창작자들은 ‘듣보잡’이 돼버리고, 열악한 인디밴드들의 무대인 클럽의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음악 생산자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없는 시스템, 미디어의 소외로 인한 대중들의 무관심, 티켓 세일즈 파워를 가진 소수가 독점하는 차별성 없는 페스티벌은 신을 더욱 멍들게 하고 있다. 음악 신뿐 아니라 블록버스터급 몇몇 영화가 스크린을 장악해 작지만 강력한 메시지와 예술성을 담보한 독립영화는 상영관조차 확보하지 못해 대중에게 선보일 기회조차 잃어버리고 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은 대형 유명 라이선스 뮤지컬에 맞서는 창작 뮤지컬의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다.
“더 위너 테이크 잇 올(The Winner Takes All)”. 승자독식 첨단자본주의의 숨 막히는 현실 속에 문화예술도 공산품과 똑같은 취급을 받아 몇몇 승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패배자들은 깨지고 쓰러지더라도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링 위에조차 올라가보지 못한다. 공정한 판정을 내릴 수 있는 전지전능한 심판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헤드기어 같은 보호 장비를 원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은 단 한 번만이라도 공정한 경쟁의 장에 나서 똑같은 선수로서의 존중을 받으며 제도나 편견에 차별받지 않고 당당하게 싸울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할 뿐이다. 분노의 힘이 아니라 정확한 진단과 자각을 할 수 있는 지혜가 모이는 새 봄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응민 파스텔뮤직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