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의 시대상황 통해 현재 비판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는 대사들
현재 시청자들에 끊임없이 질문
KBS ‘정도전’의 인기는 정통사극의 부활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퓨전사극, 팩션사극, 판타지 사극들이 유행하면서 정통사극은 지루하고 ‘올드‘(old)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퓨전사극의 인기가 완전히 죽은 것도 아니다. 퓨전사극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해를 품은 달’은 사실상 현대극과 다를 바가 없었다. 복장만 바꾼 현대 로맨스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정도전’이라는 정통사극, 대하사극의 부활은 정통사극을 원하는 시청자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 확인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중장년층 뿐만 아니라 젊은 시청자들도 ‘정도전‘을 많이 본다는 건 변화해야 하는 현재의 드라마 시장에서 매우 고무적인 현상 하나로 볼 수 있다.
초반 개혁파 정도전이 수구파 이인임에 의해 귀양갔던 나주에서 양지라는 젊은 여성과 만들어간 러브스토리는 100% 허구지만, 이는 정도전이 민본사상을 강화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준 에피소드다.
‘정도전’의 대부분은 정사(正史) 중심이고 역사 고증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때문에 시청자들도 ‘정도전’을 보면서 여말선초의 사회적 상황에 대해 배우는 것이 많다. 역사적 사실을 알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도전’이 당시의 시대 상황을 통해 현대사회의 정치, 인간관계를 통렬하게 비판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이 배우고, 느끼는 게 더 많을 것이고, 그 점이 ‘정도전‘이라는 정통사극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최영을 연기한 서인석은 “정통사극은 현 세대를 위한 것이다”면서 “선조들이 살았던 과거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현실의 교본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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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전’의 인기는 정사를 바탕으로 한 정통사극의 부활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과거로 현재를 이야기하는 제작진의 통찰이 놀라울 정도다. |
이제 초반 인기를 견인한 이인임도 죽었고 최영도 퇴장했다. 역사의 큰 인물들이 차례로 물러나며 ‘정도전‘의 재미가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지난 주말 방송된 31~32회를 보면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난다. 이인임으로 대표되는 권문세족을 반대한 신진사대부내에서도 분파가 다양하다는 점이다. 출신성분으로 볼때 이색과 조준, 권근, 이숭인 같은 권문세가 출신, 정도전과 하륜 등 향리 출신, 이방원 같은 군벌 아들 등 다양한 세력들이 신진사대부를 형성하며 특정 사안에 대해 분열하고 연대한다. 같은 권문세가 출신의 신진사대부내에도 목은 이색은 제자인 정도전과 조준과 차이가 많다.
가령, ‘사전 혁파’라는 혁명적 개혁 상소를 올린 조준 일파에 대해 문하시중인 이색은 사전 겸병의 폐해를 막을 수 있는 일전일주제라는 온건적 개혁을 주장한다. 온건파 세력의 수장 이색은 명에 사신으로 동행하는 문제를 놓고도 수시중대감 이성계와 대립한다. 이런 상황속에서 나오는 대사들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현재의 시청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들이 많다. 우왕이 강화도로 쫓겨가고 어린 창왕이 보위를 이은 상태에서 신진사대부들 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대립, 설득을 보는 것은 국사시간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역사를 공부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정도전‘의 인기에는 이인임을 연기한 박영규를 빼놓을 수 없다. 이것도 이인임이 살아야 정도전이 산다는 점을 간파한 제작진의 의도다. 정도전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 슬로건을 외치게 하지 않고 이인임이라는 수구파가 어떻게 해서 구체제에서 탄탄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됐는지를 보여주는 게 ‘정도전‘에 대한 관심을 유도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제작진의 이 의도는 적중했다.
최영은 시대를 읽은 안목에는 한계를 노출하기도 했지만 요동 정벌을 단행하는 등 충정만은 절대적인 신뢰를 얻었다. 최영의 참수장면을 보면서 거목의 퇴장에 존경심을 보내고 싶었다. 최영은 생각, 사상과 이를 실현시키는 방법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인물이다.
정도전은 이성계와 대업 완수라는 혁명의 기치를 높게 들었다. 정몽주는 이들 두사람과는 견해 차이가 있지만(가령,정도전과 이성계는 전제 개혁을 지금 바로 하자고 하는 반면 정몽주는 전제 개혁의 속도를 줄여달라고 말한다) 두 사람과 아직은 ‘형제’ ‘목숨‘ 같은 끈으로 묶여있다. 하지만 아버지 대신 명나라로 사신을 다녀온 이방원과 정몽주, 정도전 세 사람의 관계는 또 다르다. 아직은 한 배를 타고 있지만 ‘어떻게’ 갈라서는 지도 관심의 대상이다. 이방원이 최후 승자가 되고 정몽주와 정도전은 조선시대에 역적이었다가 복권되는 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어떤 방식으로,어떤 의미를 주면서 역사가 진행돼 현재의 시청자들에게 어떤 각성을 줄지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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