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캉 사원(Jokhang Monastery)과 바코(팔각)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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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사는 구도시와 신도시로 나뉘는데 조캉 사원 일명 대조사는 구 도시중에도 가장 중심지에 자리잡고 있다. 물론 위치적으로 도시 중심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많은 티벳인들의 마음 속 한 가운데 조캉 사원이 자리잡고 있는듯 보였다. 수많은 티벳의 순례자들이 며칠 또는 몇달동안 오체투지를 마치는 마지막 종착지가 바로 이 성스러운 조캉사원인 것만 봐도 이 사원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토번 왕국의 송찬캄포 왕에게는 500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티벳의 역사를 바꾸게 한 두명의 왕비가 있었다.
제 1의 왕비는 네팔의 부리구티(Bhrikuti) 공주이고 제 2의 왕비는 청나라의 문성공주(Wen Chang)이다.
이들이 티벳 왕에게 시집올 때 자기가 살던 나라에서 믿던 불경과 불상을 가지고 왔는데 그것을 모실 사원이 필요해서 647년에 지은 것이 바로 조캉 사원이다. 조캉 사원이 있던 자리는 원래 호수였다고 한다. 이 호수에 산양(goat)들의 등에 흙을 날라와 메운 후 그 자리에 사원을 세웠는데 ‘라사’를 ‘염소의 땅’이라고 부르는 것은 염소라는 뜻의 ‘라’와 흙의 ‘사’를 합한 것으로 바로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처음 이 사원을 지을 때는 법당이 8개 뿐이었지만 계속 증축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사원이 된 것이다. 불심이 깊은 왕비들에 의해 왕도 왕비와 함께 불교를 믿게 되었고 그리하여 토번 왕국은 불교가 부흥하는 나라가 되었으며 지금까지 티벳에 라마 불교가 뿌리 내리고 융성하게 된 기본이 된 것이다.
그 당시 조캉 사원을 짓는데 필요한 목재를 비롯한 모든 건축 재료는 나무가 잘 자라고 부국했던 네팔에서 가져왔다.
그리고 조캉 사원은 그 당시 청국보다 국력이 왕성했던 네팔을 향하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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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문성공주의 방에 사람들이 많이 참배하지만 아마 그 당시는 제1의 왕비인 부리구티 공주의 방을 찾아오는 사람들로 인해 문전성시를 이뤘을 것이다.
시집간 여자는 친정이 든든해야 한다는 말이 새삼 실감이 나는 곳이다. 중국에 비해 국력이 훨씬 약해진 현 시점에서 네팔 공주의 방을 찾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조캉 사원에서 아주 가까운 호텔에 묵고 있었기 때문에 사원까지 구경도 할 겸 걸어 가기로 했다.
미로같은 좁은 골목길을 돌아돌아 상점들이 많은 바코거리를 지나 그 유명한 조캉사원 앞 광장에 서니 티벳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 있는 듯 수많은 순례자들이 마니통을 돌리며 걷거나 오체투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원 앞 광장에 높이 세워놓은 깃대에 매 달려있는 오방색 깃발이 바람에 흔들린다. 조캉 사원 앞에는 약크 뻐터와 마니통을 든 참배객들이 줄지어 서서 문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또 많은 사람들은 배를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하고 있었다. 사원은 모두 4층으로 아래층에 있는 코트야드(court yard)에서는 하늘을 볼수있게 ‘ㅁ’자 식으로 건물이 지어졌다.
사원 안은 어두웠고 약크 기름속에 심어논 촛불 심지 타는 연기와 향 그리고 승려들이 경을 읊는 낭랑한 목소리로 가득했다.
보리가루인 짬바로 만든 여러 모양의 제사용 물건이 상에 놓여 있었고 벽에는 많은 선인들의 모습이 유리관 속에 진열되어 있었다. 이 사원에는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수 천개의 불교 그림인 탕카(탱화)가 소장되어 있고 800여개의 금속 불상과 경전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특히 문성공주가 가져온 순금 불상을 보고 축복을 받으려는 행렬은 길게 늘어졌고 부티구리 공주의 방은 사람들의 발길조차 뜸했다. 나무로 만든 계단을 올라 여러 개의 법당이 있는2층을 지나 3층으로 올라가니 지붕의 화려한 자태가 눈 속으로 쏙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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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칠은 한 두 마리의 사슴이 마주 보고 앉아서 라마 불교의 상징인 둥근 윤회의 바퀴를 바라본다. 이곳에서는 사원앞 마당에서 기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더 잘보였고 멀리 포탈라 궁의 장엄한 모습도 한 눈에 들어온다. 사원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 길 왼편에는 승려들이 앉아 불경을 읽으며 광장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불심을 심어주려는듯 보였다.
티벳,네팔 그리고 중국식 건축의 혼합체인 조캉 사원은 티벳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라는데 관리를 잘해서인지 잘 보존되어 있었다.
문화 혁명때는 돼지 우리로 전락해 버렸지만 1980년 다시 재건돼 마치 슬픈 티벳의 운명을 보는 듯하였다. 복도 천정에 칠해 놓은 청색 단청과 파란 하늘지붕에 만들어 놓은 황금빛 찬란한 사슴과 윤회의 바퀴,온갖 무늬로 장식한 마니통, 매듭이 없이 연결돼 ‘영원의 매듭’을 그려놓은 검은 천 조각이 바람에 나부낀다.
조캉 사원 주위에는 8각 모양의 길이 있는데 이길에서 마니통을 돌리며 걷는 또는 오체투지를 하는 티벳인을 쉽게 볼수있다.
1km나 되는 이 길이 바로 바코 거리이며 조캉사원 앞에 있는 바코 광장으로 연결된다. 지금 이곳은 외국 관광객들이 매우 선호하는 곳으로 기념품 가게가 줄지어 늘어서 있어 티벳의 독특한 토산품,예술품,장식품을 비롯하여 탱화나 골동품을 비롯하여 약크 기름, 마니통 등 없는 것이 없을 만큼 큰 시장으로 변했다.
특히 푸른빛의 터코이즈나 산에서 채취한 붉은 빛의 산호는 값이 그리 비싸지 않아 부담없이 선물하기 좋은 기념품으로 팔리고 있다.
이 바코 거리와 광장에서는 좋은 기념품을 흥정하여 싼 값에 살수도 있기에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