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안아, 이럴 때는 그러지 않아도 돼. 양보하는 거.”
열차 칸을 점령한 좀비들로부터 도망치는 위급한 상황. 아빠가 할머니에게 좌석을 양보한 어린 딸에게 하는 말이다. “이럴 땐 그냥 자기가 알아서 사는 거야.” ‘각자도생’법을 알려주던 “자기 밖에 모르는” 아빠는 다른 사람을 책임지면서 열차 앞 칸으로, 그 앞 칸으로 나아가며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적인 아빠로 거듭난다.
20일 개봉한 영화 ‘부산행’의 석우(공유·사진)는 극중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다. 자칫 ‘공유의 영웅영화’가 될 뻔했던 ‘부산행’은 많은 캐릭터가 조화되는 ‘군중극’으로 탄생했다. 영화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공유의 연기가 군중극으로서 모습을 갖출 수 있게 중심을 잡아주었다”고 말했다.

“‘부산행’ 시나리오를 받고 ‘우리도 이런 거 하는구나, 재밌겠다’ 싶었죠. 그러고 나서 감독님을 만났는데 밑도 끝도 없이 자신감이 너무 많은 분인 거예요. 그래도 불안하기는 했죠. CG나 좀비 비주얼 같은 거요. 막상 촬영 들어가니 배우들이나 스텝이 우려했던 것보다 리얼하다는 느낌을 받아서 다행이었어요.”
미혼인 그가 공교롭게도 ‘딸 아빠’로 나온 영화만 벌써 네 번째. ‘도가니’(2011), ‘용의자’(2013), ‘남과 여’(2016), ‘부산행’ 까지다. 그러나 ‘딸 아빠’가 이제까지의 영화에서는 캐릭터를 만드는 하나의 장치였다면, ‘부산행’에서는 ‘부성애’가 전면이다. “그동안 직접적으로 부성애를 다룬 영화들은 아니었지만 알게 모르게 앞의 영화들이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도 결혼 생각이 있고, 아빠가 될 생각도 하지만 두렵다고도 했다.
“당연히 좋은 아빠가 되고 싶죠. 어렸을 땐 이 말도 자신 있게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부산행’을 찍으면서 유난히 ‘내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정말 많이 하게 됐어요. 단순히 육아를 잘할 수 있을지 아닐지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아이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어떻게 가르쳐줄지,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어떻게 설명해줄지 그런 것들요.”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2007) 때부터 정의롭고, 든든하고, ‘스윗’한 역할만 맡아 온 공유는 악역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부산행’에서 배우 김의성이 연기한 역할이 탐났다고. “전 악역을 아직 안 해 봤어요. 그러다보니 악역이라는 판타지가 있었던 거죠. 저도 못되게 할 자신 있는데.” (웃음)
올해 ‘공유’ 이름이 올라가는 작품만 영화, 드라마를 걸쳐 네 작품이나 된다. ‘남과 여’, ‘부산행’ 다음은 김지운 감독의 ’밀정’, 연말에는 김은숙 작가의 tvN 드라마 ‘도깨비’(가제)로 브라운관에 복귀한다.
30대 후반의 주연급 남자 배우 중 가장 활발한 행보다. 그런데도 그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매너리즘이라는 게 나한테 오지 않을까? 그런 우려가 있었어요. 하지만 좋은 작품을 하면서 스스로 자각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괴롭지만, 더디더라도 양분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세진 기자/jinl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