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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인간에게는 현재를 기록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 기록을 개인적인 소회를 적는 글로 남기고 자신을 혹은 대상을 찍어 사진을 남긴다.
이것이 계속돼 대중에게 읽혀지고 보여지게 되면 작가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어느 순간 갑자기 그 점같았던 기록의 순간들이 이어져 선이 되고 선은 이어져 형태를 만들어낸다.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은 인간의 의지다. 목적 의식을 갖고 있는 인간의 의지는 그리하여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인류를 발달시켜왔다.
뭐 물론 이런 문명, 문화 꼭 내가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는 있다. 그 누군가가 아마도 할테니… 모든 사람이 예술의 최전선에서 살아갈 수는 없는 법. 그래서 평범한 우리들은 예술의 최전선에서 자신의 의지로 삶을 일궈내는 이들을 존경하고 동경의 대상으로 삼는지도 모른다.
너무 서론이 길었다. 문화 볼모지라는 해외 최대 규모의 한인 거주지라는 명성에 걸맞게시리 한인들이 모여 거주하고 생업을 영위하고 있는 이곳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에 꽤 쓸만한 문화공간 하나가 생겼다. 유니스 김씨가 운영하고 있는 E.K 아트 갤러리가 바로 그곳이다. 사실 E.K 아트 갤러리가 들어선 복합문화공간은 지난해 9월 일부 공간만 오픈해 사용돼왔다. 그러다 지난 4월 ‘미술의 혼(Art Sprit)’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서 활동하는 한인작가와 타인종 작가 38명의 작품 150여점을 전시하면서부터 “아! 그 공간 쓸만하네~”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할만큼 아기자기한 공간구성을 갖춘 갤러리로 문화 관계자들에게 주목받게 됐다.
E.K 아트 갤러리의 시작은 소박했다. 응용미술을 공부하다 미국으로 건너와 패션 디자이너로서 패션업에 종사하던 유니스 김씨는 직업상 전 세계의 패션도시라 할 런던, 파리 등 다양한 도시로 비즈니스 출장을 가게 됐고 피사체로서의 이들 도시의 아름다움에 빠지게 됐다고 한다. 이후 방문했던 곳을 내 기억 속에서만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꺼내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들로 사진을 접하게 됐다.
일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일하러 간 곳에서 사진으로 해소하고 이런 순환의 구조 속에서 사진은 유니스 김씨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됐다.
사진의 묘미를 알게 되면서부터는 미국 전역에 출사 여행을 떠났다. 이렇게 광활한 세상을 만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면 얼마나 원통했을지… 세상의 절경들이, 사람 사는 모습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해졌다. 은퇴한 이후에나 본격적으로 사진을 배우고 촬영하겠다는 마음은 온데간데 없고 무작정 스케쥴을 잡아서 카메라 하나 둘러매고 출사를 떠났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이렇게 새로운 삶에 들어서도록 문을 조금 열어주신 것에 너무나 감사해하며 작품 목록을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작품이 쌓여 나가자 마침내 유명 갤러리에서 사진 전시회를 열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지난해 11월에는 컬버 시티에 위치한 ‘로버트 그래함 갤러리’(Robert Graham Gallery)’에서 ‘그림자 속의 꿈(Dream in Shadow)’ 이란 제목의 초대전을 개최하게 된 것이다. 로버트 그래함은 여배우 앤젤리카 휴스턴의 남편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 조각가 로버트 그래함(1938~2008)이 설립한 갤러리다. 로버트 그래함은 1984년 LA 올림픽대회의 메인 경기장인 콜러시엄의 청동 조각상 제작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바 있는데 이 갤러리는 로버트 그래함의 사망 이후 현재는 아들인 스티븐 그래함이 운영하고 있다. 미술계뿐 아니라 할리우드의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스타들이 모이는 문화계 명소로 명성을 떨치는 곳이기도 하다.
‘그림자 속의 꿈(Dream in Shadow)’ 전시회를 마친 후 유니스 김씨는 E.K 아트 갤러리를 미국 화랑업계에서도 인정하는 전시공간으로 꾸미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추가했다. 그들이 삶을 즐기는 태도나 작품을 관조하는 자세 등 문화가 삶의 일부분으로 뗄래야 뗄 수 없는 문화의식이 한인들에게 다소 부족한 것은 문화를 즐기고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의 절대적인 부족 때문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미쳤기 때문이다.
사실 한인 커뮤니티에서 예술 활동을 하는 한인 1세며 1.5세 2세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전시회를 기획하거나 이런 모임을 갖기에 적합한 공간이 없어 지속적인 문화활동이 불가능해지는 경우를 여럿 보아왔던 유니스 김씨는 고민 끝에 남편인 김상훈씨와 상의를 하면서 이 프로젝트는 뼈대를 갖추고 살이 입혀져 살아 있는 생생한 프로젝트로 완성됐다. 지금은 윌셔은행과 합병해 Bank of Hope로 통합된 BBCN 은행의 창립이사를 지냈던 김상훈씨는 오랜 비즈니스 노하우를 바탕으로 아내인 유니스 김 관장과 상의하며 기존의 2층 건물인 E.K 아트 갤러리를 4층 복합문화공간으로 건축하는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크랜서길의 랜드마크가 되기 위해 설계에서부터 특별히 신경을 써서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상징성을 살리기 위해 큰 신경을 쓰고 있다. 지역 주민과의 공청회 절차가 모두 끝나는 올해 연말에 퍼밋을 받으면 약 2년간의 공사를 거쳐 오는 2019년 연말에는 타운의 랜드마크로 손색이 없는 문화공간이 들어서게 될 것이라는 것이 유니스 김 관장과 김상훈씨의 전망이다. “사재를 털어 진행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의 성공은 단 하나다. 한인 커뮤니티에 문화의 향기가 넘치고 타인종 문화와 한인문화, 한국의 작가들과 미국 유명 현지 화랑들이 네트워킹하는 그런 갤러리와 공간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게 우리 부부의 마지막 프로젝트라고 생각하며 온힘을 쏟고 있다”며 각오를 다졌다.
현재에는 1층을 중심으로 전문 사진작가의 집인 ‘Perfect Studio’, 사진동우회인 ‘The Beam Photo Club LA’가 있으며 ‘Kappa Studio’가 자리잡고 있다. 전시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의 작업실 및 연구실과 자료실이 비치돼있고 전시회 개최시 간단한 리셉션과 파티가 가능한 바와 소규모 공연장도 완비돼있다. 2층에는 소규모 독립적인 공간으로 각각 분할이 가능한 상설 전시장이 단독 혹은 전체로 전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돼있다. 최근에는 개인 콜렉터들이 본인의 콜렉션 작품들을 전시하는 공간으로도 종종 대여될 만큼 인기가 있다. 내년 1월까지는 대관이 가능하므로 전시회를 그 기간안에 기획하고 있는 그룹이 있다면 대관이 가능하다.
E.K 아트 갤러리에서는 오는 30일(토)부터 일주일 동안 주목할만한 전시회가 하나 열린다. 한국의 기라성같은 대표 작가 13인의 작품들이 태평양을 건너 이곳 로스앤젤레스에서 ‘한국 현대회화의 오늘’이라는 주제로 작품 전시회를 갖는다. 화가들 이름만 들어도 한국 화단에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중량감 있는 화백들의 작품을 이번 전시회에서 감상할 수 있다.
유니스 김 관장은 “한국 화단과 미국 주류 화단을 연결하는 한미간 화랑업계의 네트워킹을 최종적인 목표로 삼았던 만큼 이번 전시회에 참여하는 작가들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이곳 타운에서는 보기 드문 대형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이번 전시회에 미술 콜렉터와 애호가들의 큰 관심을 당부했다.
이명애 기자
▶www.ek-artgalle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