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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많이 울었습니다.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죠. 다시 한 번 지혜를 내 위안부 문제를 풀어나가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습니다.”
재미한인유권자 단체인 시민참여센터(KACE·Korean American Civic Empowerment)의 김동석 상임이사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보고 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그는 2007년 7월 30일 미 하원이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과 관련해 일본 정부에 공식적이고 분명한 시인과 사과 등을 요구하는 ‘위안부 결의안 121호’를 채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그는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 주인공 나옥분(나문희 분) 할머니가 미 의회 공개 청문회에서 증언하는 것을 돕는 역할로 깜짝 출연했다. 비록 카메오지만, 10년 전 자신의 모습을 직접 연기한 것이다.
전날 한국을 찾은 김 상임이사를 26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전날 밤늦게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는 그는 “할머니의 일상이 소개되다가 자연스럽게 위안부 문제로 전환되는 것을 보고 놀랐다”면서 “사회정의에 관한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것이 영화의 힘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다룬 영화에 배우들이 출연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청문회에서 증언한 할머니들의 결단만큼이나 배우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준 데 대해 존경심을 표한다”고 전했다.
김 상임이사는 10년 전 일본계 3세인 마이크 혼다 민주당 전 하원의원이 위안부 결의안을 발의하는데 혼신을 다해 도왔다.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위안부 관련 이야기에 반응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또 미 연방 하원의원 435명 중에 반(反)중국, 친(親)일본 성향의 의원들만 있었죠. 그래서 한인들이 지역구 의원들을 찾아다니면서 설득작업을 벌여야 했습니다.”
당시 일본의 반대 로비가 거셌던 만큼, 그는 일본과 한국이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설득을 시도했다고 한다.그는 “위안부 문제를 홀로코스트처럼 인류보편의 가치, 인권문제, 특히 여성 인권문제로 접근했기 때문에 당시 의원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면서 “아마 한일 외교적 문제로 접근했다면 미국 정치인들도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떠올렸다.
그의 전략은 주효했고, 결의안은 하원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이를 계기로 위안부 문제는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게 됐고, 20만 명 이상의 아시아 여성이 일본군 성 노리개가 됐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김 상임이사는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위안부 결의안이 채택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일본은 그대로라는 마지막 자막이 가슴에 비수가 돼 꽂혔다”고 털어놨다.그러면서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우선순위를 두고, 미국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 그리고 정치인들이 이 이슈를 폴로업(follow-up)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는 앞으로도 북미 관계 등 정치 이슈와는 별개로 인권문제로 다뤄져야 합니다. 또 한국 시민사회도 일본으로 가기 전 피해국들과 연대부터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그들을 잘 도봐줄 의무가 있습니다.”
김 상임이사는 1985년 미국에 유학 왔다가 1992년 LA에서 벌어진 LA 폭동 사건을 계기로 진로를 바꿨다. 이후 30년 넘게 미국에서 한인들의 정치력 신장을 위해 풀뿌리 정치운동을 펼쳐왔다.김 상임이사는 최근 대통령 정책자문기구인 민주평통 제18기 해외지역 자문위원으로 위촉됐다. 이번에 한국에 온 것도 민주평통 임명장을 받기 위해서다.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이기도 한 그는 10월 중 미국에서 평창올림픽을 알리기 위한 홍보 행사도 연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