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뉴얼·신사업…패션업계 ‘명암’ 가르다

장기불황·SPA 공습…성적표 희비 휠라, 20대 공략 집중…제2의 전성기 LF·SI·한섬 등 사업다각화 영역 확장

삼성물산 패션부문·코오롱FnC 등 부진 사업축소·체질개선 등 브랜드 구조조정

국내 패션 업계가 숨가쁜 변화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장기 불황과 저렴한 ‘제조ㆍ직매형 의류(SPA)’ 브랜드의 공습으로 국내 패션 산업이 크게 위축된 가운데, 지난해 성적표를 받아든 패션 기업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각기 다른 생존전략에 따라 운명이 갈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한 휠라(FILA)는 리뉴얼을 통해 ‘한물간’ 브랜드라는 인식을 벗고 단숨에 ‘매출 4조’를 넘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LFㆍ한섬 ㆍ신세계인터내셔날은 의류부터 화장품, 리빙 등까지 섭렵하며 업종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통해 위험을 분산시켜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가겠다는 전략이다. 반면 삼성물산 패션부문과 코오롱FnC는 실적 부진의 늪에 빠지면서 사업 축소, 체질 개선 등에 나서고 있다.

▶휠라 ‘매출 4조’ 넘본다=휠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잇달아 경신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휠라코리아 매출은 2016년 9671억원에서 지난해 2조9546억원으로 세 배 가량 뛰었다. 지난해 영업이익(3571억원)도 2016년(118억)과 비교해 2926.2% 급증했다.

휠라의 성공 비결은 과감한 브랜드 리뉴얼이다. 휠라는 1990년대 전성기를 누린 뒤 혁신에 뒤처지면서 2000년대 초반 파산 위기까지 몰렸다. 그러나 2007년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이 이탈리아 본사를 인수한 뒤 2016년 브랜드 전면 혁신에 나서면서 상황을 반전시켰다.

‘아저씨 브랜드’라는 고루한 이미지를 벗기 위해 기존 고객층인 4050세대를 과감히 포기하고 1020세대 공략에 집중했다. 중국 푸젠성 진장 지역에 ‘휠라 글로벌 소싱센터’를 세워 운동화의 단가를 30~50% 낮췄다. 또 판매 채널을 백화점ㆍ쇼핑몰에서 편집숍ㆍ온라인으로 옮겼다. 그 결과 1020세대가 사랑하는 브랜드로 재탄생한 휠라는 매출 4조 시대를 넘보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높기만 한 ‘매출 2조’의 벽=삼성물산 패션부문은 4년째 성장이 정체된 상태다. 2015년 1조7382억원, 2016년 1조8430억원, 2017년 1조7495억원, 지난해 1조7594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에는 이서현 전 삼성물산 패션 부문 사장이 일선 경영에서 물러나면서 기업 매각설까지 돌았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부진이 장기화되자 브랜드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2016년 남성복 엠비오와 핸드백 라베노바 운영을 접었다. 지난해에는 중국에서 2년 동안 운영하던 SPA 브랜드 에잇세컨즈 매장을 닫고, 올해에도 캐주얼 브랜드 노나곤과 남성복 브랜드 빨질레리를 철수했다.

▶코오롱, ‘매출 1조’ 클럽서 밀려나나=코오롱FnC의 지난해 매출은 1조456억원을 기록했다. 작년 영업손실은 399억원에 이른다. 2013년 1조3147억원으로 최고 매출을 찍은 후 4년 연속 하락세다. 이대로라면 올해 매출 1조 클럽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때 국내 패션업계 ‘빅4’로 불리던 코오롱의 추락은 놀랍지 않다. 경쟁사들이 수입 브랜드, 온라인, 가구, 화장품 등 새로운 먹거리로 눈을 돌릴 때 코오롱스포츠에만 의존했다. 머지않아 아웃도어 시장이 침체기를 맞으면서 코오롱스포츠의 매출도 급갑했다. 단순한 사업 포트폴리오로 매출 하락을 자초한 셈이다. 코오롱은 온라인 ‘코오롱몰’ 강화, ‘커넥티드 패션’ 사업 육성 등으로 돌파구를 마련할 예정이다.

▶“패션 하나로는 답 없다”…신사업이 돌파구=내수 침체와 소비 트렌드 변화가 맞물리며 패션산업 성장이 정체되자 패션 기업들은 식품, 유통업, 생활용품, 부동산업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LF는 가장 활발하게 다양한 부문에서 사업 다각화 작업을 벌여왔다. 2015년부터 LF푸드를 통해 베이커리 카페 ‘퍼블리크’의 지분을 인수했고, 2017년에는 일본 식자재 유통 전문 기업 모노링크와 유럽 식자재 전문 기업 구르메F&B코리아를 인수해 식품 사업을 집중적으로 키웠다.

이밖에도 방송, 교육, 화장품 등 여러 분야로 손을 뻗었다. 지난해에는 국내 3위 부동산 신탁회사 코람코자산신탁을 인수하며 다시 한 번 생활문화기업으로 거듭났다. LF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7066억원, 1195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5%, 8.5% 신장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SI)은 화장품 업계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2012년 ‘비디비치’ 인수를 통해 화장품 사업에 진출한 이후 화장품 사업부 매출이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SI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2626억원, 555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 각각 14.5%, 118.5% 증가했다.

▶‘패션 외길’ 걷던 한섬, 화장품까지 품나=한섬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매출(1조2992억원)과 영업이익(919억원)이 각각 전년 동기 대비 5.7%, 67.3% 뛰었다. 한섬은 2017년 ‘매출 1조 클럽’에 진입한 이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섬의 성장 비결은 ‘선택과 집중’에 있다. 지미추, 끌로에, 벨스타프 등 효율성이 떨어지는 10여개 브랜드를 과감히 정리했다. 대신 타임, 시스템, 마인 등 대표 브랜드에 집중 투자했다. 몇 년 동안 고수해온 ‘노세일, 고급화’ 전략도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

한섬은 그동안 패션 사업을 탄탄히 다지며 경쟁력을 입증해 왔다. 최근에는 ‘화장품 제조 및 도소매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하며 화장품 사업 진출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한섬 관계자는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밝혔다.

박로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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