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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창제 과정을 다룬 사극 영화 ‘나랏말싸미’가 24일 개봉과 동시에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한글, 즉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눈병에 시달려가며 직접 창제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초·중·고 역사 교과서도 ‘세종 친제설’을 반영해 기술하고 있다.
‘나랏말싸미’는 이런 정설이 아니라 ‘야사’를 다룬다. 억불정책을 펴던 세종이 비밀리에 승려 신미와 손잡고 한글을 만들었다는 가설이다.
극 중에선 신미가 세종의 조력자 수준을 넘어 거의 혼자 한글을 만들다시피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영화는 시작 전 자막을 통해“다양한 훈민정음 창제설 중 하나일 뿐이며,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고 전제했다. 조철현 감독은 지난 15일 시사회 이후 간담회에서 “저로서는 넣고 싶지 않은 자막일 수 있으나, 그 누구도 역사에 대한 평가나 판단 앞에서는 겸허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관점에서 자막을 넣었다”고 밝힌 바 있다.
조 감독은 “신미 스님의 존재는 영화를 만들기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 이후 많은 책과 논문, 동영상 등 신미의 행적을 찾아 탐방도 하고, 여러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관객과 누리꾼들은 영화가 공개되자 “심각한 역사 왜곡”이라며 뭇매를 가하고 있다. 영화 커뮤니티와 SNS에선 “아이들이 사실로 받아들일까 봐 보여주기가 무섭다”, “세종대왕의 업적을 폄훼했다” “영화라는 매체의 힘을 고려할 때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은 지켜야 한다” 등의 비판 글이 쏟아졌다.
네이버 영화 사이트에선 항의 표시로 가장 낮은 별점 1점을 주는 ‘평점 테러’도 이어졌다. 일부 커뮤니티에선 영화를 보지 말자는 보이콧 움직임도 일었다.
논란이 커지자, ‘나랏말싸미’와 관련한 강의 영상을 찍었던 유명 한국사 강사 이다지씨는 관련 영상을 삭제했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영화는 재미있는 상상력을 만들어진 것이지만, 저는 공신력 있는 내용을 전달해야 하는 강사로서 학생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철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삭제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작품이 다큐멘터리가 아닌 만큼 픽션으로서 즐겨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SNS에서도 “영화의 힘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래도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한글의 위대함, 중요성을 느끼게 해준 영화다” 등의 평이 올라왔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영화를 봤는데, 세종의 새 문자 창제 의도를 잘 그린 것 같다”면서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역사를 배우려 해서는 안 된다. 영화는 영화로 보되, 한글을 세종이 직접 창제했다는 사실은 부모나 교육을 통해 정확히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역사책에 없는 한글 창제의 뒷이야기를 상상력으로 채워 넣은 부분이 국민 정서에 반할 수는 있다”면서도 “영화는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닌 만큼 관객이 어느 정도는 픽션 영화의 성격을 인지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