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0일에 멈춘 서울시장…중단된 ‘시민 혁명 프로젝트’

박원순 서울시장의 유고로 시장 권한을 대행하게 된 서정협 행정1부시장이 10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향후 계획 등을 포함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

박원순 서울시장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소식이 전해진 10일 서울시는 충격에 빠졌다. 서정협 시장 권한대행(행정1부시장)이 10일부터 보궐선거(내년 4월7일)로 새 시장이 취임할 때까지 시정을 이끌지만, 박 시장 철학 아래 추진됐던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등 굵직한 사업들은 ‘올스톱’ 됐다고 봐야 한다.

이날 서울지하철 9호선 2·3단계인 언주역∼중앙보훈병원역 구간 파업이 유보됐고, 서울시의회는 10일 오후 계최 예정이던 10대 후반기 의회 개원기념식과 제296회 임시회를 잠정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박 시장은 2011년 말에 오세훈 전 시장의 중도 사임 이후 시장직에 올라 9년 간 재임하는 동안 개발·속도 위주의 패러다임을 바꿔 인간성 회복에 노력했다. 10년의 ‘시민 혁명 프로젝트’를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자주 드러내곤 했다. ‘걷는 도시 서울’ ‘태양의 도시 서울’ 등의 비전 아래 친환경 사업들에 공을 들였다.

늘 인권, 소수자, 약자에게 관심을 가졌던 박 시장은 지난 6일 민선7기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은 인간 중심, 사람 중심 도시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제가 세 번이나 서울시장에 당선된 건 서울 시민들이 개발 중심의 토건 중심 도시가 아니고 ‘내 삶을 바꿔달라’고 하는 삶의 질을 높이는 시민들의 바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철학을 가진, 그런 기저를 가진 저를 세 번이나 수도 서울의 책임을 맡겨주신 게 아닐까”라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박 시장은 ‘천운’이 따르는 사람이라고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취임 직전 우면산 산사태로 16명이 사망하는 등 서울은 여름이면 광화문, 강남사거리 등에서 물난리를 겪었다. 하지만 박 시장 임기 9년여간 대홍수나 재난 없이 대체로 평탄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이번 코로나19 사태 등 감염병 위기는 있었지만, 박 시장은 정부보다 한 발 빠른 대처로 호평받았다. 바이러스가 창궐할 때마다 그의 지지율은 올랐다. 박 시장의 3선 성공 뒤에 안철수의 중도 포기, 최순실 사태와 촛불혁명 등 정치변화의 시류도 ‘천운설’을 뒷받침했다.

여권의 유력 대권 후보이기도 했던 고인은 “대통령이 아닌 소통령이라 부르자. 시대가 원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직원 조회에 패션쇼 무대에 서며 춤을 추는 등 탈권위 시대 지도자다운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비판도 없지 않다. 서울시 청년수당은 지금은 보편화된 복지 포퓰리즘 시대의 문을 연 열쇠였다. 늘 수첩에 보고 내용을 빼곡히 적고, 한밤중에도 직원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등 ‘워커홀릭’의 모습은 시청 공무원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시 공무원들은 ‘늘 일 벌이기 좋아하고, 아이디어가 많은 시장’으로 기억했다.

박 시장은 5부시장 체제, 장기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하는 등 임기 2년을 남긴 시점에도 실험을 계속했다. 보좌진이 “이제 새로운 사업은 그만하시자”고 해도 박 시장은 “이걸 하지 않으면 죽겠는 걸 어떻게 해”라며 새 사업을 펼친다고 그의 측근이 전하곤 했다. 박 시장은 스스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남은 과업들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끝내 내려놓게 됐다. 한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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