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상 탓 ‘부동산 대폭락’…주요 선진국 절반 집값 붕괴

캐나다 온타리오주(州) 오타와의 한 아파트 앞에 ‘판매중(FOR SALE)’표지판이 설치된 모습. [포스트미디어]

“글로벌 주택 시장이 ‘잔인한 압박(brutal squeeze)’에 직면해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현재 전 세계적인 부동산 시장이 직면한 가격 하락 추세에 대해 묘사한 문장이다. 선진 경제권의 부동산 시장 침체를 시작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국에서 주택시장 불황의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 경제를 괴롭히고 있는 기록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부동산 시장까지 침체의 길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이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응책으로 각국 중앙은행이 내놓은 급격한 기준 금리 인상 조치가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 폭등으로 이어지고, 대출자들에겐 경제적 압력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규 부동산 구매자들의 구매 능력을 저하시켜 수요를 침체시키고, 이미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구매한 사람들은 빚에 허덕이게 만들며, 부동산 중개 시장과 건설업계엔 감원 칼바람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자칫 부동산 시장 붕괴가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도 나온다.

▶글로벌 부동산 시장, 불과 1~2년 새 천당서 지옥으로=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이상 전 세계 부동산 시장은 최저 수준 주택담보대출 금리와 수요에 따라가지 못하는 공급 탓에 가격이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던 호황을 맞이했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대응책으로 각국 정부가 푼 천문학적인 자금은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며 부동산 가격 폭등세에 기름을 끼얹었다.

하지만, 빠른 상승 속도만큼 내리막 역시 가팔랐다. 영국의 경제연구소인 옥스퍼드이코노믹스가 모니터링한 세계 주요 18개국 중 9개 국가에서 부동산 가격 하락 추세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캐나다와 스웨덴은 지난 2월 이후 현재까지 8% 이상의 하락폭을 기록했고, 뉴질랜드는 전년 최고치와 비교했을 때 12% 이상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기도 했다.

이 같은 하락 추세는 세계 제1의 경제 대국인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주택건설업협회(NAHB)와 웰스파고가 발표한 10월 주택시장지수(HMI·50 이하 악화, 50 이상 개선)는 전월보다 8포인트 하락한 38로 집계됐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2020년 5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코로나19에 따른 봉쇄 시기를 제외하면 2012년 8월 이후 10년 만에 최저치다. 지난 4월 77이었음을 감안하면 반년 만에 반토막이 났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같은 부동산 경기침체의 가장 큰 요인으로 치솟는 금리를 지목했다. 미국의 30년 만기 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의 평균 금리는 지난 20일(현지시간) 현재 6.94%를 기록했다. 2008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다른 국가들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뉴질랜드의 경우 8년 만에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가 7% 선을 돌파했고, 영국 역시 5년 만기 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의 평균 금리가 12년 만에 6% 선을 넘어섰다.

▶부동산 시장 붕괴發 가계 부채 대란 우려=부동산 시장 붕괴가 위험한 이유는 가계 부채 폭탄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글로벌 경제 전반으로 불길이 옮겨붙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자신의 소득 중 대출 상환에 투입해야 하는 비중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개인 재정 상태에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을 비롯해 북유럽 국가들의 가계부채 수준이 국내총생산(GDP)의 100%에 이르거나 이미 넘어서고 있는 위험 선상에 놓여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개인 소득 대비 가계부채의 비중이 높은 캐나다, 호주, 스웨덴 등에선 이미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스웨덴 중앙은행 총재는 이 같은 상황을 “화산 꼭대기 위에 앉아있는 격”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고정금리 대출 상품을 선호하는 미국·영국과 달리, 변동금리 대출 상품을 선호하는 유럽·호주·아시아권 국가 등에선 기준 금리 급등이 가계 사정에 더 민감하게 작용하는 추세다.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승이 시민들의 가처분 소득을 즉각적으로 감소시키며 소비 후퇴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력이 줄어드는 것은 경기 전반이 ‘불황’에 돌입했음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시그널로 여겨진다.

생애 첫 주택 구매자 등 사회에 갓 진입한 젊은층이 금리 급등이란 리스크에 더 취약하다는 점도 큰 문제란 게 전문가 다수의 공통된 의견이다. 가뜩이나 자산 규모가 작은 상황 속에 주택 구입을 위해 부채를 확장한 만큼 주택담보대출 이자 급증 상황을 헤쳐나갈 ‘실탄’이 부족하기 때문이란 점에서다.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가 이번 부동산 시장 폭락 추세 속에서 전문가들이 꼽은 가장 대표적인 취약층이다.

부동산 중개 업체 햄프턴스는 영국에서 45세 미만의 주택 소유자의 경우 현재처럼 높은 모기지 금리는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고 추정했다. 영국 부동산 전문가인 아드리안 앤더슨은 “코로나19 호황기에 부동산 자산 사다리에 오르기 위해 대출 능력을 확장한 구매자들이 인플레이션과 함께 이제 더 높은 금리 부담을 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부동산 시장 침체가 동시다발적인 글로벌 금융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충분히 암울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특히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결과적으로 고용 시장의 걸림돌이 되면서 전반적인 경제 상황에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동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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