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7813명 근무지 이탈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대란이 가시화하면서 정부가 20일 군병원 12곳의 응급실을 민간인에게 개방했다. 사진은 민간 응급환자에게 개방된 군병원 열두곳 중 한 곳인 경북 포항에 있는 해군포항병원. [연합]

정부가 전국 주요 수련병원 100곳을 현장 점검한 결과, 소속 전공의 71.2%인 8816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전공의들의 근무지 이탈로 응급실마저 멈췄다. 업무가 마비된 서울 주요 병원 응급실 입구엔 의사도, 환자도 드나들지 않고 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 겸 본부장은 2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을 열고 전날 오후 10시 기준 전국 주요 수련병원 100곳을 점검한 결과, 소속 전공의 8816명이 사직서를 냈다고 밝혔다. 전날 대비 2401명이 증가한 것이다. ▶관련기사 3면

사직서 제출자 중 7813명은 이날 출근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사직서를 수리한 병원은 없다. 복지부는 현장점검에서 근무지 이탈이 확인된 전공의 6112명 중 이미 업무개시명령을 받은 715명을 제외한 5397명의 전공의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 가능성이 대두됐던 초기 응급의학과에서 우려했던 ‘응급실 뺑뺑이’는 이미 현실이 됐다. 이날 헤럴드경제가 중앙응급의료센터의 응급의료포털(E-GEN) 종합상황판을 통해 확인한 결과, 오전 9시 기준 이른바 ‘빅5’ 병원(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성모병원) 일반 응급실 종합상황판에 ‘빨간불’이 뜬 병원은 4곳(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성모병원)이었다. ‘빨간불’의 의미는 일반 응급실에 가용할 수 있는 병상이 50% 미만이라는 뜻이다.

‘빅5’ 병원 중 응급실 이용이 어렵다는 입간판을 써붙이기도 했다. 전날인 20일 오전 서울시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응급실 앞에는 “현재 응급실 병상이 포화 상태로 진료가 불가하다”며 “신속한 진료를 위해 인근 병원 응급실을 이용해 달라”는 입간판이 붙었다. 지난 19일 오전에는 신촌세브란스병원이 응급실 접수를 중단하기도 했다.

수도권 내 종합병원 중에서는 전공의가 부족해 진료가 불가능하다고 알린 병원도 속속 확인됐다. 서울시 강동구 강동성심병원은 전문의 집단 사직이 시작된 지난 20일 인력부족으로 산부인과, 피부과, 정신건강의학과,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안과 진료가 부족하다는 알림을 내보냈다. 지방은 더욱 상황이 심각해서, 대구 영남대학교병원과 카톨릭대학교병원 응급실은 산부인과, 신경과, 소아과, 성형외과 등 다수의 진료과목 관련 환자들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비상진료대책을 세우며 의료공백 사태에 대응하고 있다. 정부는 전국 12개 군병원 응급실을 개방하고,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며 현장 복귀를 촉구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복지부는 주요 수련병원 100곳 중 50곳에 직원을 파견해 현장을 점검하고, 업무개시명령에도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에 대해서는 ‘면허 정지’ 등 행정 처분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조 본부장은 의료계 집단행동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정부는 집단행동 상황에서 중증·응급진료 체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과 지원을 과감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도 회의 후 브리핑에서 “환자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면서 병원이 대비할 시간적 여유조차 주지 않고 일시에 집단적으로 사직하는게 과연 헌법상의 기본권이냐”고 반문하며 “자신들의 권리를 환자의 생명보다 우위에 두는 의사단체의 인식에 장탄식의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고 의사단체를 지적했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 움직임도 점차 번져가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일 오후 6시 기준 전국 40개 의대 중 27개 대학 7620명의 학생이 휴학계를 제출했다. 전날 대비 6487명이 증가한 것이다.

휴학계를 낸 학생 30명(6개교)은 군 휴학 등의 사유로 학교 측이 최종 승인을 한 상태다. 하지만 나머지 7590명의 경우 요건 충족 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미승인 상태다. 휴학계를 제출하지 않은 의대생 사이에서도 수업 거부 등 단체행동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수업거부가 확인된 곳은 3개교로 파악됐으며, 해당학교에서는 학생 면담, 학생 설명 등을 통해 정상적 학사운영 노력을 지속 중이라고 교육부는 설명했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투쟁의 강도를 높여가는 가운데, 의대 증원을 두고 대립하는 보건복지부와 의료계가 계속해서 평행선을 달리며 사안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인다. ‘의사 수가 부족한가’에 대해서부터 근본적인 입장차가 존재한다.

유정민 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팀장과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은 전날 MBC 100분토론에 출연해 이 같은 입장 차이를 확인했다.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측은 의사 수가 부족해 배분 문제를 악화한다고 주장한 반면, 반대 측은 높은 의료접근성을 들어 의사 수 자체가 부족하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민경·김용훈·박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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