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여전히 불안한 먹거리·공공서비스 물가 등 최근의 물가 상황에 대해 ‘어려운 국면’에 놓여 있다고 입을 모았다.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국제 유가 상승, 작황 부진에서 비롯된 일부 농산물값 급등 등 통제할 수 없는 요인으로 인한 물가 부담이 가중되고 있어서다.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정부가 쓸 만한 카드가 많지 않다 보니 ‘현장 점검’이나 ‘품목 관리’ 위주의 대책만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 ‘고물가·고금리’가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굳어졌다는 진단도 나왔다.
6일 정부와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지난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8%로 반년 만에 2%대로 내려왔지만, 상반기 다시 3% 안팎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국제유가 상승에 더해 신선과일 등 농산물 가격의 고공행진, 꺾이지 않는 강달러 등이 물가를 떠받치고 있어서다.
정부는 주유소 현장점검이나 할인·관세 지원, 품목별 수급 관리 등으로 물가 누르기에 나서고 있지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튀어오를지 모를 물가에 전전긍긍하는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물가 상승이 수치로 드러날 때마다 비슷한 대책만 ‘재탕’, ‘삼탕’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물가 상승을 이끄는 국제 유가와 농산물 가격은 우리가 통제하기 어려운 산유국의 감산 결정, 중동 정세, 기후 요인 등의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 “일시적으로 반등하는 농산물·에너지가격을 잡긴 잡아야 하는데 대응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 문제”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통화정책 대응이 필수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통화정책의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정부가 물가 관리에 나서려다 보니 선택지가 많지 않았을 것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물가 안정을 달성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통화정책”이라면서 “그 외에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를 시장 원리대로 가장 자연스럽게 안정시킬 수 있는 방안은 금리 인상인데, 이를 제외한 상황에서 효과성 있는 정책을 내놓기 쉽지 않다”면서 “과거에 해봤던 정책들도 현 상황과는 안 맞는 경우가 많다”고 봤다.
전반적으로 물가 불안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잇따랐다. 이미 높아진 물가 수준에 더해 임금과 공공요금, 환율 등 물가를 끌어올릴 요소들이 산적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고물가·고금리가 뉴노멀로 자리 잡은 상황”이라며 “앞으로 임금이 더 오를 가능성이 있는데, 그러면 물가가 또 오르고 아파트 분양가 상승으로 주거비용이 커지면 다시 임금을 올려달라고 하는 구조가 이어지기 때문에 쉽게 안정되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빈기범 교수는 “미국도 물가 불안으로 금리 인하가 지연될 가능성이 커지는 등 우리도 최소 2년간은 물가를 둘러싼 녹록지 않은 환경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가를 들썩이게 하는 대외 변수에 대응할 만한 카드가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정책적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석병훈 교수는 “설을 앞두고 할당관세로 수입 농산물을 들여오는 등 공급을 늘리는 방안을 썼는데, 계절적으로 수요가 늘어나는 기간에 그런 정책을 쓰지 않았다면 가격이 더 올라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최근 가격이 급등한 품목에 대해서는 단순히 생산뿐만 아니라 복잡한 유통 구조 속에서 문제가 없는지 들여다봐야 한다”면서 “정부가 재작년부터 ‘총력’을 언급했는데 일부 품목에 대한 전격적·한시적인 수입방안도 고려해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양준모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만 생각하면 해법(금리인상)은 정해져 있지만, 이것이 서민들에게 큰 고통을 줄 수 있기에 물가가 오르는 걸 용인하되 상승률을 떨어뜨리는 방향의 정책을 쓰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이런 기조 하에서 누적된 물가 부담은 향후 2년에 걸쳐 서서히 해소되겠지만, 유가나 환율 등 외부적인 요인이 도와주면 조기에 마무리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영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