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감독이 서울시향엔 왜? ‘축구와 음악은 통한다’

서울시향 홍보대사가 된 거스 히딩크 감독과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룬 ‘국민 영웅’ 거스 히딩크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K-클래식 전도사가 됐다.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서울과 부산의 명예시민이 됐고, 대한민국 1호 명예국민이 된 ‘히동구’ 감독이 이번엔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얼굴’로 전 세계를 누비는 것이다. 국내 3대 교향악단 중 하나인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초대 홍보대사를 맡았기 때문이다. 이 자리는 무보수 명예직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대회의실에서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 오세훈 서울시장, 손은경 서울시향 대표가 참석한 홍보대사 위촉식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나, 음악과 교육 현장, 운동을 연결하는 데에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히딩크 감독이 서울시향의 홍보대사가 된 데에는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과의 오랜 인연이 바탕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5년 전으로 시계를 되돌린다.

히딩크 감독은 “오래 전 츠베덴이 지휘한 콘서트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본 뒤 직접 연락하며 인연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당시를 떠올리며 그는 “얍이 연주자들이 가진 가능성과 개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끌어낸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고, 그런 점을 배우고 싶었다. 영상을 보면서 축구 감독과 지휘자 사이에 유사성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츠베덴 감독은 “난 히딩크 감독님을 ‘마에스트로 히딩크’라고 부른다. 그는 나의 마에스트로이기 때문이다”라며 “히딩크 감독은 한국, 네덜란드에서만 레전드가 아니라 전 세계 레전드다. 그의 연락을 받은 이후로 굉장히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었고, 계속해서 우정을 쌓아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남프랑스 별장에서 함께 여름휴가를 함께 보내는가 하면, 부부 동반 모임을 종종 가지기도 한다. 츠베덴 감독은 “특히 히딩크는 굉장히 요리를 잘 한다”며 “댁에 가서 식사를 할 땐 바비큐를 해주기도 하고, 엄청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오늘의 이 날들이 무척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서울시향의 홍보대사가 됐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두 거장이 ‘절친’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삶의 방향성과 가치관이 닮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손을 내미는 재단을 운영 중이다. 츠베덴 감독은 부인과 함께 1997년에 설립한 파파게노 재단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을 지원하고 있고, 2005년 히딩크 전 감독이 설립한 히딩크재단은 시각장애인 전용 풋살 경기장 건립 사업 등에 힘을 보태고 있다.

츠베덴 감독은 “우리 두 사람 모두 인생에서의 같은 가치에 공감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이번 홍보대사 위촉은) 스포츠와 문화가 함께 할 수 있다는 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인간의 삶에 있어 스포츠와 예술, 음악은 사람들을 하나로 연합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둘은 다른 길을 걸었지만 서로의 분야에 대해서도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히딩크 전 감독은 “기본적으로 팝과 클래식 등 음악을 좋아한다”며 “클래식 음악은 무겁고 어려운 곡보다 이해할 수 있고 선율이 아름다움 곡을 즐겨 듣는 편”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어릴 적엔 축구를 했고, 암스테르담 아약스 팀의 회원으로 지금도 응원 중이라는 츠베덴 감독은 “히딩크가 아약스를 감독한 적이 없어 무척 슬프다”며 “우리 둘의 우정은 탄탄하지만, 응원팀은 달라 팽팽한 긴장감이 있다. 아약스가 나은지 히딩크 감독을 지낸 아인트호벤이 나은지에 대해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며 웃었다.

축구에 있어서도 열혈팬인 츠베덴은 “오케스트라와 축구는 닮았다”며 “오케스트라는 하나의 팀으로 연주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각자가 자신의 악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듣고 이해하며 자신의 연주를 향상할 수 있는 점이 축구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히딩크는 선수들을 혹독하게 훈련시키지만, 막상 경기장에서의 선수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뛴다”며 “저 역시 즐거운 연주를 하려면 무엇보다 꾸준한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츠베덴 감독의 이야기를 듣던 히딩크 감독은 “한국의 축구선수들처럼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이라며 “지금 한국은 새로운 축구 감독을 선임해야 하는데 새 얼굴로 츠베덴을 추천한단. 완벽한 팀을 구성하고, 조직력을 끌어올리는 전문가”라고 했다. 츠베덴은 이에 “지금은 서울시향을 맡고 있어 안타까지만 어렵다”며 농담을 나눴다.

한국 대표팀을 이끌며 히딩크 감독은 “많은 변화를 시도해야 했다”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기도 했다. 그는 “제가 한국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연장자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라며 “다만 이는 경기 중 어린 선수들이 자신의 골 득점 기회를 선배에게 넘겨주거나 주저하는 모습으로 나와 축구에 있어서는 비생산적이라 판단해 바꾸려 했다”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던 츠베덴 감독은 “우리는 둘 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조금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며 “시향의 연주자들도 가끔 놀라기는 하나, 내가 하는 조언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더 나은 결과물을 내기 위한 것이라는 데에 공감하고 더 나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끈질긴 강인함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서울시향의 홍보대사가 됐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앞으로 5년간 서울시향과 동행하는 히딩크 감독은 오는 4일 서울시향의 정기연주회 참석을 시작으로 해외 순회공연에 동행하며 서울을 전 세계에 홍보한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향에서 ‘약자와의 동행’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행복한 음악회, 함께!’, ‘아주 특별한 콘서트’와 연계한 프로젝트 홍보 등 사회적 가치 확산을 위한 활동을 함께 만들어간다.

히딩크 감독은 이날 다양한 이야기로 농담을 주고 받으며 간담회를 마무리 했지만, 아시안컵의 졸전과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 사태, 선수 사이의 불화 등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현실을 묻는 질문엔 “분명 드릴 말씀이 있지만, 이 자리는 서울시향의 홍보대사로 온 만큼 다른 기회가 생기면 이야기해 보겠다”며 “대신 이번주 목요일 서울시향의 경기를 즐겁게 보겠다. 서울시향이 어떤 연주를 들려줄지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