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만에 막 내린 볼리비아 쿠테타…장성 등 17명 체포

26일(현지시간) 볼리비아 행정 수도 라파스 대통령궁에 무력 진입해 쿠테타를 시도한 군인들이 3시간 만에 물러난 뒤 쿠테타를 주동한 후안 호세수니가 육군참모총장이 철군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돼 이송되고 있다. [AFP]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볼리비아의 ‘쿠데타 시도’와 관련해 볼리비아 정부는 27일(현지시간) 육군 장성을 비롯해 17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단 3시간 만에 막을 내린 쿠데타 시도에 대해 정부가 강력하게 진상규명 의지를 보이는 가운데 야당 일각에선 장병들의 수도 진군과 철군 경위에 대통령이 어떤 형태로든 개입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쿠데타 시도에 이어 대통령과의 조율설까지 나오면서 사태는 또다른 국면으로 확산하고 있다.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에두아르도 델 카스티요 내무장관은 이날 공식 브리핑을 열고 “무위로 돌아간 쿠데타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17명을 체포했다”며 “이들은 대부분 군인으로, 전·현직 장성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우니텔을 비롯한 볼리비아 주요 언론에서 생중계한 이날 브리핑에서 델 카스티요 내무장관은 “이번 사건에 깊숙이 관여한 3명의 행방을 쫓고 있다”며 추가로 신병 확보에 나선 이들이 있음을 강조했다.

앞서 델 카스티요 장관은 TV방송 우니텔과의 인터뷰에서 “일부 군 장성과 장교가 민주 정부를 전복시키고자 3주 전부터 치밀하게 쿠데타를 모의해 전날(26일) 실행에 옮기려 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볼리비아 정부는 업무 처리 지연을 비롯해 무력을 동원하지 않는 ‘소프트 쿠데타’ 움직임이 군 내에 있다는 정보를 이미 받은 상태였다고 델 카스티요 장관은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전날 대통령궁 주변에서 벌어진 형태의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며 “이는 국민 여러분께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볼리비아 정부는 피의자들의 유죄가 인정되면 15∼3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델 카스티요 장관은 전날 물리적 충돌로 12명이 부상했다고 덧붙였다.

대통령 측근이 대통령에 반기?=엘데베르를 비롯한 현지 언론들은 이날 수니가 장군이 지금까지 군내에서 루이스 아르세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 때문에 수니가 장군이 느닷없이 쿠데타 시도 선봉에 서서 정부 전복을 꾀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모습을 ‘현실감 없는 충격적인 장면’이라고 묘사했다.

복수의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실제 수니가 장군은 쿠데타 시도 불과 사흘 전인 지난 23일(일요일)께 친선 농구 경기에 아르세 대통령과 함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두 사람은 당시 다른 참석자들과 같이 단체 사진도 찍었다고 엘데베르는 전했다.

이튿날인 지난 24일(월요일) 수니가 장군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의 내년 대선 출마 가능성을 강한 어조로 비난하며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출마한다면, 헌법상 보장된 군의 평화유지 등 기능에 따라 (그를) 막을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아르세 대통령과 한때 정치적 동맹 관계였다가 지금은 완전히 갈라서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당 내 계파 싸움 속에 지지자 간 갈등과 반목도 이어지는 상황이다.

모랄레스 측은 지난 25일(화요일) 수니가 장군의 인터뷰 내용을 문제 삼으며 고발을 예고하는 등 즉각 반발했다. 아르세 정부에 수니가 장군의 보직 해임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 보도마다 사실관계는 엇갈리지만, 아르세 정부는 25일에 수니가 장군에게 보직에서 해임될 것이라는 언질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매체는 “실제 해임까지 이뤄졌다”고 전했다.

루이스 아르세 대통령 볼리비아 대통령 지지자들이 27일(현지시간) 볼리비아 라파스의 경찰청 밖에서 쿠테타를 일으킨 볼리비아 군에 대한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스페인어로 쓰인 팻말에는 ‘쿠데타 반대. 민주주의 존중’, ‘쿠데타 음모자들을 투옥하라’고 적혀 있다. [AP]

▶긴박했던 ‘6월 26일, 라파스’=쿠데타 시도 당일인 26일에는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수니가 장군은 이날 오전 11시 군 내부 행사(계급장 수여식)를 주재했다. 당시 각 부대 지휘관에게는 ‘각 정위치 대기’ 지시가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모랄레스 전 대통령의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공개됐다.

이어 오후 2시30분께 일련의 병력이 탱크·장갑차와 함께 수도 라파스에서 처음 목격됐고, 오후 3시께 대통령궁과 의사당 앞 무리요 광장을 둘러싼 것으로 확인됐다. 아르세 대통령은 오후 2시57분께 자신의 엑스에 “규정에서 벗어난 군대 배치가 이뤄졌다”고 적었다.

오후 3시49분에는 장갑차가 대통령궁을 부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켰는데, 2분 뒤 수니가 장군은 대통령궁에 들어가 대통령을 대면한 자리에서 “민주주의를 회복하러 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모습은 현지 언론과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됐다.

아르세 대통령은 오후 5시12분께 3군 수장 3명을 모두 교체하고서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저와 내각 구성원은 이 곳에 굳건히 서 있다”고 연설하며 국민적 결집을 촉구했다.

이후 대통령궁 앞으로 몰려온 시민들의 군에 대한 성토와 국제사회의 규탄 움직임 속에 결국 군은 3시간여 만에 무리요 광장에서 물러났고, 수니가 장군은 이날 오후 7시5분께 경찰에 체포됐다.

27일(현지시간) 볼리비아 엘 알토의 모습. [로이터]

▶석연찮은 수도 진군과 철군…친위 쿠데타 의혹도=수니가 장군은 경찰에 연행되면서 “대통령이 내게 상황이 매우 엉망이라며, 인기를 높이기 위한 뭔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쿠데타 시도에 대통령이 암묵적 지시가 있었다는 취지의 언급이다.

이에 대해 델 카스티요 내무장관은 “진실성이 결여된 진술”이라며 “군이 정치에 개입하는 건 심각한 규정 위반”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야당을 중심으로는 수니가 장군 주장과 수도 진군·철군 경위에 대해 명확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통령과 내각 전체가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고 장병 동원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던 정황, 대통령궁 인근 통신 시설을 차단하지 않은 채 살려둔 사실, 군대 움직임을 생중계하도록 둔 결정, 장병들이 신속하게 무리요 광장에서 물러난 점 등 ‘일반적인 쿠데타 흐름’과는 다르게 어떤 면에선 사전에 조율된 듯한 인상마저 준다는 주장도 제기된다고 볼리비아 언론들은 전했다.

볼리비아 정치 분석가인 카를로스 토란소는 영국 방송 BBC의 스페인어판(BBC 문도) 인터뷰에서 “수니가 장군이 대통령궁에 들어가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기는커녕 일부 정치범 석방을 요구했다는 것도 이상하다”며 “이번 사태로 아르세 대통령은 큰 주목을 받았지만, 지지율은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호르헤 산티스테반 변호사(예비역) 역시 현지 라디오에서 “전날 사건은 쿠데타라기보다는, 소규모 군인들의 계획된 정치행위라고 봐야 한다”며 “수니가 장군 체포 이후 얼마 안 돼 정부에서 ‘수니가 장군이 모든 부대의 지원을 받은 건 아니다’고 했는데, 정부가 어떻게 이리 빨리 전모를 파악할 수 있었을까 싶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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