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연합] |
[헤럴드경제=홍승희 기자]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프랑스 총선 1차 투표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집권 여당이 소수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역대 네 번째로 대통령과 총리의 소속 정당이 다른 '동거 정부'가 구성될 것으로 1일 전망되고 있다.
동거 정부는 대통령과 총리가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중요한 시기로 평가받지만 대통령 공약 실현이나 개혁 추진에는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낮은 지지도와 이번 선거 결과가 가져올 당내 분열까지 고려하면 임기 절반이 남은 마크롱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에 빠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프랑스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혼합한 이원집정부제다. 대통령은 국가수반으로서 외교·국방을 담당하며 총리와 각료 임면권, 비상권한 발동권, 의회 해산권 등의 권한이 있다. 총리는 정부 수반으로서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정부 활동을 지휘한다. 각료 제청권, 법안 발의권, 의회 소집권 등도 행사한다. 헌법상 권한으로 대통령은 원하는 사람을 총리에 앉힐 수 있다.
그러나 하원이 정부 불신임안을 통과시킬 수 있어 하원 다수당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총리를 임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여소야대 상황에선 야당 출신 총리를 임명할 수밖에 없다. 동거 정부가 탄생하는 제도적 배경이다.
동거정부는 권력 분산과 견제를 통해 정치적 균형을 유지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대통령과 총리의 정책 우선순위나 방향성이 달라 중요 법안 처리나 개혁 추진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질 수 있으며, 특히 외교 정책에서 혼선을 빚을 경우 국제 무대에서 국가의 신뢰도와 이미지에 타격을 입게 된다. 권한이 분산되다 보니 책임 정치가 어려워지는 문제도 있다.
이에 프랑스는 2000년 시라크 대통령 시절 대통령 임기를 7년에서 5년으로 줄이고 대선과 총선 일정을 조정해 한달 간격으로 잇따라 치를 수 있게 바꿨다. 대통령 지지도가 높은 집권 초기 총선을 치러 여당이 다수당이 될 확률을 높여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2000년대 이후 프랑스에 동거 정부가 없었던 이유는 이 때문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동거정부의 위험을 무릅쓰고 극우 바람을 꺾기 위해 의회 해산이라는 '육참골단'의 충격 요법을 썼다. 총리 자리를 내줄지언정 2027년 대선을 극우에 넘길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지난 12일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2027년에 극우에 권력의 열쇠를 내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극우당 국민연합(RN)이 수권 능력을 증명하지 못하면 다음 대선에선 'RN 심판론'이 작동할 거란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마크롱 대통령이 건 도박의 대가는 남은 임기 3년이다. RN이 마크롱 정부에서 추진한 개혁이나 정책들을 뒤엎겠다고 벼르고 있어서다.
연금 개혁이 대표적이다. RN은 마크롱 대통령이 64세로 연장한 정년을 62세로 되돌리겠다고 공약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한 '조력 사망' 도입도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RN은 이 제도가 "죽음을 돕는 것"이라며 반대한 터라 이 법안이 다음 의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작다.
RN의 에너지 부가가치세 인하, 기본 생필품 부가가치세 폐지 등의 공약엔 여당이 반대해 경제 분야 정책도 충돌이 예상된다. RN의 강경한 이민 정책도 마크롱 정부와 간격이 넓다.
다만 일각에서는 동거정부가 들어선다 해도 우려만큼 변화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르몽드에 따르면 정치학자 알랭 가리구는 '프랑스의 정치'란 저서에서 "동거 정부의 갈등적 성격에도 통치가 불가능할 거라는 두려움은 실현되지 않았다"며 "1차 동거 정부 동안에 105개의 법안이 통과됐고 결정적 교착은 없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