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22일 산호세에서 열린엔비디아 GTC에서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기조연설을 하고 있다.[AP] |
우리는 PC의 시대를 지나 스마트폰 시대를 넘었고 이제 인공지능(AI) 산업 혁명시대라 불리는 시기를 살고 있다. 글로벌 주식시장을 호령하던 주인공들은 지속해서 순위가 바뀌었다. 글로벌 시가총액순위에서 최고의 우량주로 남기 위해서는 해당 기업이 성장을 거듭하고 시장이 기대하는 실적을 끊임없이 충족시키거나 뛰어넘어야 한다. 영원히 시장을 호령할 것 같은 기업이 더 이상 글로벌 우량주 반열에 들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글로벌 기업이라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기대치를 상회하며 대형주의 자리를 지켜내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과 기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닷컴 버블 이후의 글로벌 1위 기업의 역사 변천 과정을 통해 세상이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엑슨모빌은 1996년까지 시총 1위 자리를 지켰으나 1997년 코카콜라에 1위를 내줬으며 1998년에는 제너럴일렉트릭(GE)이 1위에 올랐다.
닷컴 버블과 마이크로소프트
닷컴버블(dot-com bubble)은 인터넷 관련 분야가 성장하면서 관련 주식 시장 가격이 급속히 상승한 광분의 시기를 말한다. 1995년 시작되어 2001년 닷컴 버블이 붕괴했다. 민간과 기업에서 대규모로 전산 장비를 구매하고 전산화를 추구하던 시기다. 1995년 인터넷 브라우저의 대중화를 이끈 ‘넷스케이프’가 등장했다. 이후 익스플로러, 크롬 등에 의해 잊힌 웹브라우저이지만, 넷스케이프는 인터넷 시대를 이끈 혁명가였다. 넷스케이프의 성공적인 상장은 IT 벤처에 뛰어든 창업자들과 벤처캐피탈 회사를 고무시켰다.
닷컴 버블을 넘기고 지금까지 큰 영향력을 미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혹자는 아마존을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시기 시총 5830억 달러에 이른 마이크로소프트(MS)의 역사는 주식 역사에서 중요하다. MS는 이후 2015년에 가서야 다시 시총 5000억 달러를 넘어섰으니 긴 기간 전성기 시절의 영예를 되찾지 못했다.
2004년 미국 대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이 시총 1위 기업으로 다시 올라선다. 이후 GE는 올 4월 창립 13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3개 회사로의 분사(GE에어로스페이스, GE버노바, GE헬스케어)가 완료됐다. GE 주가는 최고경영자(CEO) 잭 웰치의 재임 기간 약 3000% 상승했다. 기업가치가 140억 달러에서 4500억 달러까지 뛰었다. 이는 같은 기간 S&P500 상승률(약 330%)의 9배에 해당한다. GE는 1993년 9월 미국기업 중 시가총액 1위에 오른 후 2004년에 마지막으로 1위(시총 5040억 달러)를 기록했다.
제조업에서 금융회사로 변신한 GE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직격탄을 맞는다. 순식간에 파산 위기에 처한 GE캐피탈은 연방정부의 구제금융을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주식시장 전통 강자인 정유 기업들이 치고 올라왔다.
석유왕 록펠러가 설립한 스탠더드오일의 후신인 엑슨모빌이 2005년부터 6년간 1위 자리를 지켰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와 항공, 수송 부문이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에너지 수요가 급증했다. 이에 따라 엑슨모빌, 셰브론 등 정유주들 시가총액이 불어났다.
인터넷의 발달과 시스코
1990년대 후반 인터넷 네트워크를 장비 시장을 장악하며 단번에 빅테크 반열로 오른 기업이 있다. 바로 시스코다. 인터넷 기초 인프라 구축 붐이 일며 시스코의 주가는 급격히 치솟았다. 1990년과 2000년 기업공개(IPO) 사이에 1000배 이상 증가했다. 잠시 동안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회사로 군림했다.
시스코는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의 붕괴로 큰 타격을 입었다. 인터넷에 대한 과도한 투자가 중단되자 시스코의 매출 구조가 흔들렸다.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 사업에 다른 경쟁자들이 빠르게 나타난 것도 위기 요인이었다. 클라우드 컴퓨팅으로의 전환에서 시스코의 대응은 늦어졌고 빅테크 반열에서 멀어졌다. 시스코 주가는 1995년 1월 2달러 수준이었다. 2000년 3월 27일 80달러까지 무려 4000% 폭등했다. 3월 28일부터 특별한 이유 없이 급락했다. 2002년 10월 8달러까지 추락했다. 2000년 3월 MS를 잠시 제치고 시총 1위에 올라섰으나 기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전자상거래의 발달과 아마존
2019년 아마존이 세계증시 시가총액 1위에 올라섰다. 과거 시장 규모별로 1위를 한 모든 기업의 역사를 보면 놀라웠다. 1926년 초부터 아마존이 시총 1위 기업으로 올라서기까지 미국 증시에서 1위를 차지한 기업은 10개에 불과했다.
아마존은 11번째로 시총 1위 기업이 되었다. AT&T와 IBM을 포함한 일부 회사들은 정상에서 몇 년을 보냈지만 알트리아, 듀폰과 월마트를 포함한 다른 기업들은 채 한 달도 정상을 지키지 못했다.
월마트는 2002년 말에 불과 3일 간 미국의 시총 1위 기업의 영예를 차지했다. 사실 아마존이 시총 1위로 오르기까지 한 달 동안 시장 가치가 7000억 달러 이상인 애플, MS, 아마존은 각각 며칠동안씩만 1위를 했다. 당시 시총 1위 기업 비중은 지금에 비해 크게 작았다. 시총이 큰 기업들 순위가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운명이었다. 아마존은 그런 상황에서 시총 1위를 굳히지는 못했다.
당시 아마존의 강점은 여럿 있었다. 가장 먼저 클라우드 사업의 호조를 꼽을 수 있다. MS의 클라우드 사업이 급성장했지만 1인자는 아마존 웹서비스였다. 당시 시장조사업체 시너지 리서치에 따르면 아마존웹서비스는 공공 클라우드 시장의 40% 가량을 점유했다. 아마존의 텃밭인 전자상거래 분야 지배력 역시 핵심 성장엔진이었다. 당시 아마존은 미국 전자상거래 시장의 절반가량을 책임지기도 했다. 아마존은 온, 오프라인을 망라한 미국 소매시장의 5%만 점유하고 있어 점유율을 더 늘릴 여지가 많다는 게 중론이다. 아마존의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알렉사를 비롯해 헬스케어, 광고 등이 포함됐다.
2024년 9월 9일 캘리포니아쿠퍼티노 애플 본사에서 열린신제품 아이폰 16 발표회에서팀 쿡 애플 CEO가 무대에서 연설하고 있다.[REUTERS] |
스마트폰과 애플 왕국
2011년 엑손모빌을 제치고 세계 1위 시총 기업으로 올라선 기업이 있다. 스티브 잡스와 팀 쿡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콤비는 거의 흔들림 없이 애플 제국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생성형 AI가 산업의 모든 규칙을 바꿔놓는 시대가 열리면서 권력 이양이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 사이 애플을 제치고 MS와 엔비디아가 시총 1위 기업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시총 1위를 둘러싸고 2024년 세 기업간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애플은 아이폰의 중국 판매량 감소, 애플카 사업 중단, 애플워치 판매 중단, 각종 법적 분쟁과 반독점법 이슈라는 악재를 만났다. AI 경쟁에서도 다른 빅테크와 달리 이렇다 할 행보를 보이지 못했다. 애플 인텔리전스로 온디바이스 AI로 소비자에 다가서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1990년대 PC 시대에 부동의 시총 1위를 지키던 MS는 클라우드 사업으로 부활하기 까지 애플을 시총에서 넘어서지 못했다. 사실 엑슨모빌, GE, 페트로차이나, 아람코 등이 잠시 1위를 차지하기도 했지만 시총 1위 자리는 애플과 MS 두 회사 간의 경쟁이었다. MS는 한동안 애플과 구글, 삼성 등에 밀려 큰 어려움을 겪었다. 윈도우 판매에만 의존하다가 모바일 시장에 적응하지 못해 실적 부진이 이어졌지만, 클라우드를 통해 상황에서 반전을 이루었다. 2018년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의 시총을 3년만에 뛰어넘었으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러한 상황을 이끈 사령탑은 3대 CEO 사티아 나델라였다. MS는 2024년에도 시총 1위를 했으나 그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애플이 인텔리젼스를 내세우며 AI 경쟁에 뛰어들며 성장 가능성에 날개를 달고자 한다. 올해 7월 시총이 최초로 3조 5천억 달러를 돌파했다. 애플 인텔리전스가 지난달 28일 전 세계에 출시되었다. 삼성전자 주도의 AI 폰 시장에 삼성의 최대 맞수인 애플이 본격 가세하며 모바일 AI 대전이 벌어지고 있다. 애플 인텔리전스가 당장은 AI 맛보기 수준이지만 세상은 애플의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는 상황이다. 소비자 만족의 AI 생태계 조성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인공지능과 엔비디아
세계 반도체 1위 기업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은 이제 거목이 되었다. 2000년대 이후 우리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를 10년 단위로 만났다. 앞으로 IT(정보통신)계의 10년은 젠슨 황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9266일(약 25년 4개월). 이는 엔비디아가 상장 이후 시가총액 3조 달러 고지를 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현재까지 MS와 애플만 3조 달러 클럽에 들어섰다. MS는 상장 이후 3조 달러가 되기까지 37년 10개월 11일이 걸렸다. 애플은 42년 6개월 18일이 걸렸다. 엔비디아가 위대한 것은 이들보다 시간이 훨씬 짧았다는 점이다.
엔비디아의 AI 가속기는 점점 연산 기능이 높아지고 있다. 엔비디아의 신제품 블랙웰 공급을 앞두고 시가총액 1위를 탈환하려는 모습이다. 10월 25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엔비디아의 시총은 장중 한때 3조5300억달러에 달해 애플의 3조5200억 달러를 소폭 상회했다. 애플과 엔비디아의 시총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상황에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크리스 밀러의 〈칩워〉의 이야기다. 모바일 기기가 등장했다. 인텔은 작은 시장에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 인텔은 컴퓨터 프로세서 시장을 과점하면서 엄청난 이윤을 누리고 있던 터라 틈새시장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인텔이 스스로 패착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그저 또 다른 휴대용 컴퓨팅 기기일 뿐이고 틈새시장에 불과하다고 보았던 모바일 폰 시장을 빼앗기고 만 것이다.
HBM에서 뒤쳐진 삼성전자에는 인텔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HBM은 기술 변화의 길목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종’이다. 지금 새롭게 탄생하는 두뇌(GPU와 기타 AI 반도체)는 새로운 손발(메모리)을 필요로 한다. 중요한 것은 손발이 점점 더 두뇌에 가까워지고, 같은 칩 위에서 작동하고, 아예 두뇌와 상호작용하면서 마치 한 몸처럼 붙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엔비디아가 그 길로 가는 길을 재촉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행보에 세상의 관심이 몰려있지만 시총 1위를 하고 굳히기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