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대행 권한’ 여야 아전인수 논쟁 [이런정치]

유불리 셈법에 입장 뒤바뀐 與野
與 헌재재판관 청문회 불참 결정
초선 공부모임서도 관련 토론
野 “인사청문 절차 신속 추진”
“기일 내 처리 안되면 본회의로”
쟁점법안 거부권 놓고도 평행선


권성동(왼쪽)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7일 국회 의장실에서 열린 국회의장 주재 양당 원내대표 회동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김진·박자연·양근혁 기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권한을 놓고 여야가 ‘아전인수격’ 해석을 내놓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심판의 운명을 결정할 헌법재판소 재판관 구성 문제부터, 당장 민생 전반에 영향을 미칠 법안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등에 광범위하게 걸쳐져 있다. 그럼에도 여야는 향후 정국 유불리에만 집중하며 과거 입장을 ‘정반대로’ 뒤집는 발언도 거리낌 없이 뱉고 있다.

18일 정치권에 따르면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문제와 관련해 국민의힘은 ‘거부권 행사는 가능하지만, 헌재 재판관 임명은 선례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헌재 재판관 임명은 가능하지만 거부권을 행사하면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양당의 입장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 때와 정반대로 달라진 것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전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지금은 대통령이 궐위가 아닌 직무정지 상황이기 때문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 전까지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없다”라고 못박았다. 하지만 권 대행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 전인 2017년 2월1일 퇴임을 앞둔 이정미 헌재 재판관의 후임 문제와 관련해 사견을 전제로 “이 재판관 후임을 대법원장이 지명하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하는 절차를 지금부터 밟아야 한다”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지며 야권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자기 모순에 빠진 건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도 “국민의힘이 빠지더라도 개의치 않고 헌재 재판관 인사청문 절차를 신속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2017년 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는 “권한대행의 신임 헌법재판관 임명은 어불성설”이라고 했고, 우상호 당시 원내대표도 “황 권한대행이 국회가 동의하지 않을 인사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라고 한 바 있다.

여야가 과거 입장까지 뒤집으면서까지 신경전을 벌이는 건 헌재 재판관 구성이 탄핵 심판뿐 아니라 조기대선 여부와 그 시기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현재 헌재 재판관은 국회 추천 몫 3인이 공석인 6인 체제로, 추가 임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6인 만장일치’가 나와야만 탄핵 심판이 인용된다. 반면 3인이 추가로 임명되면 9인 중 6인 찬성 만으로도 인용된다. ‘탄핵 반대’ 당론의 국민의힘은 6인 체제가 가장 유리한 반면, 민주당으로선 추가 임명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실제 국민의힘은 오는 23~24일 헌재 재판관(마은혁·정계선·조한창) 인사청문회에 불참을 결정했다. 국민의힘은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만큼 청문회에 참석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이 자당 추천 몫인 마은혁·정계선 후보 임명 절차를 강행하더라도, 절차적 하자를 지적하기 위한 명분 쌓기에 들어갔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헤럴드경제에 “인사청문회 같은 경우, 국회법이나 인사청문회법상 정해진 기일 내에 처리되지 않으면 본회의에 바로 올라갈 수도 있다”라고 했다.

정작 헌재에서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재판관 임명이 가능하다’는 발언이 나왔다. 김정원 헌재 사무처장은 전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대한 임명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저희는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 사무처장은 ‘6인 체제’ 심리 가능 여부에 대해서도 “6명이 심리를 시작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법률적인 문제도 없다고 재판부에서는 판단하고 있다”라고 했다.

박찬대(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7일 국회 의장실에서 열린 국회의장 주재 양당 원내대표 회동에 참석해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이상섭 기자


여야는 거부권 문제를 놓고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박수민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이날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논리적으로 이것(법안)이 문제가 있으면 거부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문제가 없으면 당연히 집행해야 되는 것”이라며 “논리의 문제이지, 권한대행이니까 무조건 안 된다고 볼 수는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권한대행을 맡았던 고건 총리가 사면법 개정안 등 두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선례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국민의힘 초선의원 공부모임은 오는 23일 오전 헌법학자들과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를 주제로 토론회도 열 예정이다.

반면 민주당은 “거부권 행사를 포기하시라”라며 연일 한 대행을 압박 중이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권한을 남용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묵과하지 않겠다”라며 거부권 행사 시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 가능성을 시사했다. 현재 정부가 거부권 행사를 고심하는 법안은 지난 11월 말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국회증언감정법 ▷국회법 ▷농수산물 가격안정법 ▷농어업 재해보험법 ▷재해대책법 개정안 총 6건이다.

다만 여야는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 수사 여파로 공석이 된 국방부 장관 및 경찰청장 자리를 놓고선 “안보·치안 공백을 둬선 안 된다”라며 후임 임명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관련 논의는 이날 권 권한대행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회동 이후 물꼬를 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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