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 “11세에 처음 만난 라벨…20년이 지나도 천재성에 탄복”

모리스 라벨 탄생 150주년 기념
피아노 독주 전곡·협주곡 음반 발매
“완벽주의 라벨에 비하면 난 평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라벨 독주 전곡 음반으로 돌아왔다. [유니버설뮤직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라벨을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거울’ 중 ‘어릿광대의 아침노래’.

“라벨을 만나기 전까지 제 레퍼토리는 주로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리스트 등 고전파와 낭만파였어요. 라벨을 처음 접했을 땐 굉장히 다른 세계라고 느꼈고, 테크닉도 훨씬 더 어렵게 느껴졌어요.”

첫 만남 이후 20년. 오랜 시간 숙성한 조성진의 라벨이 세상에 나왔다. 일명 ‘노란 딱지’로 불리는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나온 라벨 피아노 독주곡 전곡 앨범이다. 이 음반은 라벨 탄생 150주년을 맞아 나왔다.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안드리스 넬손스 지휘)와 협연한 라벨 피아노 협주곡 앨범도 다음 달 나온다.

라벨 음반 작업은 그가 도이치 그라모폰에 먼저 제안해 이뤄졌다. 탄생 150주년을 맞는 해에 라벨 피아노 전곡을 녹음하면 누구보다 잘 기념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다. 뿐만 아니라 그는 “두 프랑스 작곡가인 드뷔시와 라벨의 다른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클레식 음악이나 인상주의 음악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보통 두 작곡가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드뷔시는 라벨에 비해 훨씬 더 자유롭고 로맨틱한 면이 있는 반면 라벨은 좀 더 지적이고 훨씬 더 완벽주의자에 가까워요. 라벨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 분명히 알았던 것 같아요. 모든 음악이 잘 짜여져 있고, 피아노곡을 오케스트라적으로 쓰려고 했던 것 같아요. ”

연주에 있어 주력한 점은 해석의 정교함이다. 그는 “라벨은 해석의 폭이 넓지 않다”며 “라벨은 자신의 곡을 해석하는 것을 싫어했다. 악보에 써 있는 대로만 연주하라고 지시했고, 아무것도 써있지 않은데 갑자기 크게 치거나 느리게 치는 것을 싫어했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그렇기에 조성진은 라벨을 해석할 땐 컬러와 소리, 질감과 프레이징으로 승부를 봐야한다고 생각해 이 부분에 집중했다.

조성진에게 라벨은 특별한 작곡가다. 프랑스 파리에서 음반을 공부한 만큼 프랑스 작곡가는 그에게 조금 더 가까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접한 ‘어릿광대의 아침’은 2006년 8월 금호아트홀 리사리틀에서 처음 연주했고, 예원학교 재학 시절엔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중 ‘스카르보’를 연주하며 친구들과 놀았다. 당시 그는 “친구들이 발라키예프의 ‘이슬라메이’를 칠 때 나는 항상 ‘스카르보’를 선택했다”며 “그 시절 남학생들은 늘 두 곡 중 하나를 치고 싶어했다”며 웃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오래도록 접한 작곡가이지만, 이번 음반 작업을 통해 라벨의 진면목을 다시금 확인했다. 조성진은 “라벨을 공부하며 그가 얼마나 천재인지 다시금 느꼈다”고 했다. 반면 그는 스스로에 대해선 “평범한 연주자”라고 몸을 낮춘다. “완벽주의자인 라벨에 비하면 저는 완벽주의자는 절대 아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조성진은 라벨의 완벽한 음악세계에 다가서기 위해 “연주를 잘 준비하기 위한 연습과정은 기본으로 충분한 수면, 적당한 운동, 건강하게 잘 먹는 식습관 등 컨디션 관리에 특별히 더 신경 쓴다“고 말했다.

조성진에게 피아니스트는 언제나 ‘좋아서 하는 직업’이다. 그는 “피아니스트는 행복한 직업”이라며 “작곡가들이 쓴 위대한 곡을 연주하면서 천재들의 정신세계와 음악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행복한 경험”이라고 했다.

조성진은 올해 유럽, 미국, 한국에서 라벨 음반 발매 기념 리사이틀을 연다. 오는 25일 빈을 시작으로 전 세계 무대에서 라벨을 들려준다. 오는 6월엔 한국 공연이 예정돼있다. 라벨의 곡을 들려줄 이번 리사이틀은 마라톤과도 같다. 그는 “리히텐슈타인에서 이 프로그램을 한번 해봤는데 (인터미션을 포함해) 3시간이 걸렸다. 마지막 곡을 연주할 때는 정신이 혼미해졌다”면서도 “라벨의 음악 세계를 관객과 공유하고 저 자신도 라벨의 음악 세계에 들어갔다가 나오고 나니 뿌듯함이 컸다”고 말했다.

올해는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지 10년이 되는 해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 배우고 영감도 얻었고, 나름대로 꾸준하게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며 “자연스러운 음악, 말이 되는 음악, 설명이 되는 음악을 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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