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같은 정치 환각, 박정희로 155엔 무슨 일이…신박한 풍자극 ‘구미식’ [고승희의 리와인드]

블랙코미디 연극 ‘구미식’의 풍자
‘보수의 성지’가 만든 보수 추종자들


연극 ‘구미식’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나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할 수 있다면 왕궁에 가려고 노력할거야, 왜냐하면 그게 날 인간답게 해주니까.” (벨벳 언더그라운드 ‘헤로인’ 중)

11개의 의자가 놓인 무대, 나른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이 흐른다. 곧이어 한 사람의 등장. 그는 자신을 1944년 세상에 나온 ‘유리동물원’을 쓴 테네시 윌리엄스의 동성 연인 프랭크 멀로라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 연극이 끝날 때까지 단 한 번 등장한다는 생뚱맞은 발언으로 관객을 혼란스럽게 한다. 연극 ‘구미식’의 시작이다. 제 17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2025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구미식’은 어떤 단어일까. 연극에 대한 기본 정보가 없는 관객이라면 이 단어를 특정 지역과 연결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단어를 ‘구미식(歐美式)’, ‘유럽이나 미국에서 통용되는 특유의 양식이나 격식’을 뜻하는 말로 이해했을 관객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배우들은 연극이 중반을 달려갈 즈음, 이렇게 말한다. “아직 제목의 의미를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며 “공연이 끝난 후 네이버에서 구미식을 치고, 나무위키를 검색해보라”고. 반드시 ’나무위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작 80분의 짧은 연극에서 시간을 쪼개 배우들의 입을 빌려 말하는 이 대목이 극 중반 나올 때의 노림수는 명확하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패러디와 블랙코미디, 풍자로 무장해도 이 이야기는 지금 ‘우리의 이야기’라는 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연극 ‘구미식’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네이버에 ‘구미식’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청소년에게 노출하기 부적합한 검색결과를 포함하고 있습니다”란 문장이다. 그 결과에 ‘나무위키’ 설명이 포함된다. 1969년 국내 치초의 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된 구미는 한 때 ‘유흥의 도시’였다. ‘구미식’은 그 시절 만들어진 용어로 ‘구미 스타일의 유흥업소 문화’의 대명사다.

연극은 동떨어진 두 세계를 콜라주처럼 박음질한다. 대한민국의 도시 ‘구미’와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유리 동물원’이다. ‘구미식’은 ‘유리 동물원’ 속 등장인물 톰이 난데없이 구미에 상륙하며 보고 듣고 겪게 되는 이야기와 그의 세계에서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려간다. 물론 여기서 구미는 ‘극도로 보수적인 가상의 지방 도시’라는 설정이다. 사실 구미시의 실제 별칭은 ‘보수의 성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이며, 그의 집과 자료관은 물론 동상이 2개나 세워진 곳이다.

연극은 경계를 뻔뻔하게 넘나들고 현실을 능청스럽게 비튼다. 1930년대 대공황 시절 미국에 살던 톰을 2025년의 구미로 소환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조각조각 떼어져 하나로 연결된다. 톰에겐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지만, 전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톰이 ‘클로짓 게이(Closet Gay,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는 사람)’이고 약물 중독자라는 사실이다. 사실 ‘유리 동물원’ 속 톰의 이름은 톰 윙필드이나, 연극에선 그를 톰 윌리엄스라고 부른다. 작가인 테네시 윌리엄스를 딴 것이다. ‘구미식’의 극본을 쓴 이홍도 작가는 구미공단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테네시 윌리엄스가 쓴 자전적 희곡처럼 그 자신의 경험을 녹였다.

무대는 예상치 못한 곳으로 튀어 흥미롭다. 신박하고 독특한 구성이자 전개 방식이다. ‘유리동물원’ 속 톰을 소환한 연극은 마치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처럼 “광고 후에 동영상이 시작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B급 정서가 묻어낸 각양각색 지역 광고를 보여준다. 무대 중앙 배치된 전광판은 마구잡이로 만든 광고는 ‘한 때’ 유흥의 도시로 명성을 떨쳤고, 현재도 ‘구미식 노래방’이라는 틱톡 태그까지 이어지게 한 ‘구미 스타일’이라는 확신까지 심어준다.

연극 ‘구미식’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광고 후 연극은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낸다. ‘가상의 도시’인 구미시 박정희로 155 새마을운동 기념 공원에 있는 ‘행복한 동상’이 등장하면서다.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의 패러디다. 이토록 뻔뻔하고 강도 높은 풍자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행복한 동상’은 노골적으로 정체성을 드러낸다. 유치하고 커다란 보석이 박힌 왕관에 각선미를 드러내는 새빨간 트렁크를 입은 동상. “저녁이면 노래를 들었다”는 그의 독백에 배경음악으로는 심수봉의 ‘그 때 그 사람’이 흘러나오고, 그러던 어느날 “난 총에 맞았다”고 고백한다.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행복한 왕자’를 패러디한 이 ‘행복한 동상’은 이쯤하면 누가 봐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행복한 동상과 행복하지 않은 톰이 만난다. 공원 한 켠 남성 공용화장실에 살고 있는 클로짓 게이이자 약쟁이. 우울의 날들을 유일하게 버틸 헤로인을 구하려는 그에게 ‘행복한 동상’은 당근과 일거리를 준다. 자신의 ‘제비’가 돼 그의 추종자에게 몸을 치장한 보석을 주면 대가로 약을 제공한다.

연극은 한 정치 지도자의 그릇된 인식과 통치 방식을 통해 길러진 보수 추종자들을 보여준다. 지도자는 당근과 채찍을 주지만, 사람들은 ‘당근의 환상’에 취한다. 그는 “듣고 싶어하는 걸 들려주고, 보고 싶어하는 걸 보여준다”며 먹고 사는 것이 갈급한 이들에게 먹고 살 수 있는 삶을 준다. 그가 나눠준 보석은 톰이 갈구하는 헤로인과 다름 없다. 정치적 환각에 빠진 사람들에겐 허상이 만든 도시에서 자행되는 억압과 핍박, 갖은 부조리와 조작, 감금 사건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가상의 도시와 행복한 동상이 서있는 새마을공원은 차별과 환상으로 얼룩지고, 쓰레기가 넘쳐나는 고장난 도시임에도 이곳은 끊임없이 사람들의 눈을 가린다. 파시스트 도시의 전형이다. 그것이 조금 이상하다 느끼는 이는 미국에서 건너온 톰 뿐이다. 스스로 죽기를 결심한 ‘제비’ 톰은 연인이자 구원자인 멀로를 찾지만 구미시엔 구원자가 없다. 마약 중독자의 삶은 현실과 환각의 경계처럼 보이나, 사실 그것은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노래한 1960년대 미국의 실상과 다르지 않았다. 이것은 다시 한 번 ‘우리의 이야기’라는 점을 말하는 연극의 방식이다. 더불어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마약과의 전쟁’은 톰이라는 인물을 통해 시공간을 넘나들며 연결된다.

연극 ‘구미식’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연극 ‘구미식’은 나무위키가 일러주는 설명에 더해 ‘보수의 추종자’, ‘극우의 국민’을 키워내는 방식이라는 정의를 덧댄다. ‘가상의 도시’가 그리는 이야기는 2025년의 대한민국과 닮았다. 행복한 동상은 “이 버러지 같은 빨갱이 놈들”이라며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1년 5월 16일(5.16 군사정변), 1961년 5월 27일(5.16 군가정변) 1964년 6월 3일(6.3항쟁), 1972년 10월 17일(10월 유신), 1979년 10월 18일(부마민주항쟁) 등 총 5번의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연극의 대본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2022년이었고, 1년 전 현재의 형태로 대본을 정리했다. “역사는 반복되고, 끊임없이 돌아온다”며 대국민 연설을 하는 ‘행복한 동상’의 모습은 어쩐지 공포스럽다. “반국가 세력 척결을 위한 것”이라고 계엄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과거의 지도자는 40여년 후 2024년 12.3 계엄을 끝까지 정당하다 말하는 2025년 탄핵 정국의 주인공과 찰떡같이 닮아서다.

연극의 연출을 맡은 전인철은 “독재자가 만든 도시, 그 도시에서 태어난 청년들,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우리 삶의 방식이 건강한가에 대해 질문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연극은 대안도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지만, 블랙코미디의 강도 높은 풍자로 우리의 ‘삶의 방식’을 다시금 곱씹게 한다. 이홍도 작가는 “쉽사리 건들지 못하는 수많은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구미식’은 패러디와 블랙코미디라는 방법을 택했다. 패러디는 대상과 싸우지도 대결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대상 안에 틈입함으로써 그 내부에 균열을 일으킨다. 패러디는 대상을 완전히 전복시키진 못하지만 웃음을 통한 균열로써 전복의 가능성을 싹 틔운다”며 “정면 승부가 아니라 측면 승부를 노리고, 이길 가망이 희박할 때, 패러디는 도리어 해볼 만한 선택이다. 막대한 문제들에 맞서 무모한 싸움을 벌여야 할 때, 패러디는 그럼에도 취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전략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했다.

연극 ‘구미식’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전략은 통했다. 연극처럼 태극기와 성조기를 양손에 든 사람들이 탄핵 반대를 외치며 광화문과 종로를 점령할 때, 대학로의 한 극장에선 ‘구미식’이라는 연극이 반복되는 역사를 비틀어 보여줬다. 연극이 끝난 뒤 공연장을 벗어나 마로니에 공원을 마주하면 ‘탄핵의 부당성’을 보여주겠다는 이장호 감독의 영화 ‘하보우만의 약속’ 현수막이 걸려있다. 관객들은 무대에서 만난 과거와 무대 밖의 오늘을 마주하며 갖가지 감정을 품게 된다.

‘구미식’의 마지막은 구미에서 나고 자라 ‘구미식’으로 교육받은 노인의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이름은 한옥분, 설정은 화자의 작은 할머니. “우리가 잘 살고 있는 것은 세종대왕, 이순신보다 훌륭한 박 전 대통령 덕분이고, 죽은 박 대통령이 영령이 돼 지켜주기 때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에 대한 회상이다. 연극이 끝난 이후에도 누군가는 구미식이 아닌 다른 방식을, 또 다른 누군가는 여전히 구미식의 삶을 택할 것이다. 다만 이 연극이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식과 인식을 돌아보게 했다면, 그것으로도 무대는 역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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