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20만가구 1년 사용 전력 생산
자연조건·베트남 정책 힘입어 사업 확장
탄소배출권 넘어 RE100 솔루션도 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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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현지시간) 찾은 SK이노베이션 E&S의 베트남 탄푸동 해상풍력발전단지 모습 [SK이노베이션 E&S 제공] |
13일(현지시간) 오후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남쪽으로 차로 2시간을 달려 티엔장(Tien Giang)성 벤짜우 선착장에 도착했다. 다시 배를 타고 북동쪽 바다로 30여분을 나아가자, 수평선 위로 거대한 회색 기둥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곳에는 기둥 높이만 105m에 이르는 총 36기의 터빈들이 바다 위에 500m 간격으로 도열해 있었다. 길이 75m, 지름 150m에 달하는 터빈 날개들은 쉼없이 회전하며 바닷바람을 전기로 바꿨다.
이곳은 SK이노베이션 E&S가 운영하는 탄푸동(Tan Phu Dong·TPD) 해상풍력발전단지다.
현장에서 만난 권기혁 SK이노베이션 E&S 베트남 대표사무소장은 “이곳은 (해안에서 10㎞ 이내의) 니어 쇼어(near shore) 입지임에도 한국의 오프 쇼어(off shore) 해상풍력과 유사한 이용률을 보이는 곳”이라며 “바람이 잘 부는 날의 풍속은 초속 10m(시속 약 36㎞)를 넘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터빈 1기당 하루 평균 35메가와트시(㎿h, 전기를 만든 ‘양’을 나타내는 단위)의 전력을 생산하며, 전체 연간 발전량은 443기가와트시(GWh)에 이른다. 베트남 20만가구가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규모다.
TPD 해상풍력은 베트남 티엔장 지역 최대 규모이자, 상업 가동에 들어간 첫 해상풍력 프로젝트다. 사업은 2021년 1단계 50㎿ 착공을 시작으로, 2023년 5월 2단계 100㎿까지 완공되며 총 150㎿ 규모로 준공됐다. 총 사업비는 약 4500억원에 달한다. 베트남 대기업 TTC의 재생에너지 자회사 GEC가 초기 개발을 주도했고, SK이노베이션 E&S는 2022년 지분 45%를 확보하며 파트너사로 참여했다.
생산된 전력은 해저케이블을 따라 육상 변전소로 전송되고, 베트남 국영 전력회사 EVN과 장기 고정단가 계약을 체결해 연간 약 500억원 규모 매출을 올린다. 권 사무소장은 “바람만 있으면 터빈은 24시간 돌아간다”며 “동남아에서도 나라마다 특성이 다른데, 베트남이 풍력 발전의 최적의 입지”라고 말했다.
풍력·태양광 적합환경에 정책 지원까지
SK이노베이션 E&S가 베트남에 주목한 이유는 뚜렷하다. 풍력과 태양광에 모두 적합한 자연 조건, 여기에 현지 정부의 정책적 드라이브까지 더해졌다.
베트남은 일조량이 풍부하고, 남북으로 길게 뻗은 해안선 전역에 고르게 바람이 불어 풍력·태양광 모두에 적합한 입지다. 게다가 베트남 정부는 4월 개정된 국가전력개발계획(PDP8)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 36%, 2050년 75%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에 SK이노베이션 E&S는 2023년 현지 사무소를 개소하며 베트남 재생에너지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권 사무소장은 “베트남은 일조량이 풍부해 태양광 발전의 하루 평균 이용률이 29%에 달할 정도로 재생에너지 자원이 뛰어난 국가”라고 말했다. 풍력 발전 효율에 대해서는 “바다 수심이 얕고 바람이 육지 가까운 곳에서도 강하다”며 “니어쇼어 풍력만으로도 한국 해상풍력과 유사한 수준의 발전 효율을 낼 수 있으며, 풍력 발전 이용률이 60%를 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제조기업의 ‘RE100(재생에너지 100%)’ 수요도 높다. 베트남은 삼성전자, 애플, 인텔 등 글로벌 기업의 핵심 생산 거점이기도 하다. 이들은 공급망 탄소 감축이 필수적이기에, 재생에너지 확보는 사업 지속의 핵심 조건이 된다.
현재 SK이노베이션 E&S는 2020년 닌투언(Ninh Thuan) 지역 131㎿ 규모의 태양광, 2022년 150㎿ 규모의 TPD 해상풍력에 이어, 최근 떠이닌(Tay Ninh) 지역 7㎿ 지붕형 태양광 시범사업, 라오스-베트남 국경간 756㎿ 육상풍력 수출 프로젝트까지 베트남과 인근 지역에서 약 1GW 규모의 운영·개발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 2023년 6월에는 호치민에 재생에너지 전담 사무소를 개소하며 본격적인 현지 사업 발굴과 확장을 추진 중이다.
전기생산에 탄소배출권까지 ‘일석이조’
베트남 해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단순히 전기만 만들어내지 않는다. 이곳 TPD 프로젝트는 탄소배출권 확보라는 전략적 무기까지 갖췄다. SK이노베이션 E&S는 투자 당시, TPD 프로젝트가 온실가스 감축 사업으로 인정받을 경우, 해당 감축분에 대한 탄소배출권 전량을 15년간 확보하는 조항을 계약에 포함시켰다. 예상 확보량은 연간 약 26만톤 규모다.
글로벌 탄소시장도 변화 중이다. 교토의정서 기반의 청정개발체제(CDM)에서 파리협정 기반 지속가능발전체제(SDM)으로 전환되며, 2027년까지 새로운 국제 탄소시장이 개화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SK이노베이션 E&S 관계자는 “SDM 체계가 본격화되면 베트남 내 다른 프로젝트들도 탄소배출권을 즉시 확보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RE100 설루션 사업 글로벌로 확장
SK이노베이션 E&S는 베트남 사업을 시작으로 제조기업들이 많이 진출한 동남아, 동유럽, 북미 등으로 재생에너지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현재 보유한 약 1GW 규모의 글로벌 재생에너지 파이프라인을 2030년까지 2배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재생에너지 사업을 SK이노베이션이 보유한 에너지 포트폴리오의 핵심 축으로 키운다는 목표다.
기존 탄소배출권 확보 중심 사업을 넘어, 글로벌 제조기업들을 대상으로 ‘RE100 설루션 공급자’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단순한 발전 사업을 넘어, 글로벌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전력거래계약(PPA) 방식으로 직접 공급하는 사업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이미 국내에서는 누적 1GW 규모의 PPA 계약을 성사시키며 민간 최대의 재생에너지 공급자로 자리잡았다.
SK이노베이션 E&S 관계자는 “국내 민간 1위 재생에너지 사업자로서 축적한 실행 역량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을 본격 개척해 나가겠다”며 “탄소 감축과 에너지 전환에 기여하는 글로벌 재생에너지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현지 글로벌 기업에 ‘신재생 전기’ 직접 판매도 준비
SK이노베이션 E&S는 해외 재생에너지 사업의 거점인 베트남에서 전력 직접 판매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해외 재생에너지 투자가 탄소배출권 확보에 집중됐다면, 현지 직접 전력구매계약(D.PPA) 시장이 열리며 새로운 수익 모델 확보에 착수한 것이다.
SK이노베이션 E&S에 따르면 이 회사는 베트남 D.PPA 시장 선점을 위한 대규모 수요처(오프테이커) 확보와 프로젝트 개발을 추진 중이다. 권 사무소장은 “글로벌 기업과 협의 중인 D.PPA 기반 프로젝트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베트남 정부는 지난해 7월 D.PPA 제도를 발표하며 공식화했다. 3월에는 D.PPA 제도의 구체적인 기준이 담긴 전력법 하위 시행령 제57호(Decree No. 57/2025/ND-CP)가 발효됐다. 이에 따라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대규모 전력 소비자는 국영 전력사인 베트남전력공사(EVN)를 거치지 않고 전력을 직접 사고팔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런 제도 변화는 베트남에 생산거점을 둔 제조기업들의 요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이들 기업은 EVN을 통해서만 전력을 공급받았고, 재생에너지는 사업장 지붕에 소규모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거나 재생에너지 인증서(REC) 구매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특히 베트남은 2023년 여름 대규모 전력 부족 사태를 겪기도 했는데, 기업 입장에선 D.PPA로 추가 재생에너지를 확보하면 전력 안정성도 높일 수 있을 전망이다.
재생에너지 사용 늘리는 글로벌 기업과 협의 가능성
SK이노베이션 E&S는 2020년부터 베트남에서 재생에너지 사업을 펼쳐왔다. 2022년에는 베트남 대기업 GEC와 합작해 총 150㎿ 규모의 TPD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완공했고, 최근엔 떠이닌 지역에 7㎿ 지붕형 태양광 발전도 구축했다.
여기에 더해 D.PPA 시장 진출을 위한 신규 사업 개발에도 속도를 낸다. 베트남 D.PPA 시장은 이제 막 문을 연 상태로, 아직 뚜렷한 선도 사업자나 대표 계약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SK이노베이션 E&S는 초기 시장을 주도하며 대규모 수요처를 선점하고, 베트남 내 재생에너지 사업 모델을 다각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주로 RE100을 추진하는 글로벌 기업과 수요자 맞춤형 전력계약을 설계하는 방식이 될 전망이다. D.PPA 제도는 RE100 선언 기업의 이행 수단으로도 주목받는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중요한 정책 도구란 평가다. 무엇보다 베트남은 아디다스, 나이키 등 글로벌 브랜드의 주요 생산 거점 중 하나로, 다수의 기업들이 공급망 전반에 재생에너지 사용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베트남에 생산거점을 두고 있으며, D.PPA 관련 법령에 환영의 뜻을 밝힌 바 있는 삼성전자 등이 향후 수요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지 전기료·사용량 급증…D.PPA 활용 가능성 고조
아울러 베트남은 최근 전력 소비 증가와 전기요금 인상이 겹치면서 D.PPA 제도의 활용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베트남전력공사는 최근 전력 소매 요금을 평균 4.8% 인상했다. 경제성장률도 가파르다. 베트남 통계청(GSO)에 따르면 베트남의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 대비 6.93% 성장하며 최근 5년간 분기 기준 최고치를 기록했고, 연간 성장률 목표도 8%로 제시됐다. 이에 따라 산업용 전력 수요 역시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도 변화 또한 수요 확대에 기여할 전망이다. 베트남의 D.PPA는 ▷재생에너지 발전소와 수요자가 사설 송전망을 통해 거래하는 물리적 D.PPA(온사이트형) ▷국가 전력망을 활용해 거래하되, 가격 차액을 정산하는 가상 D.PPA(오프사이트형)로 구분된다. 지난 3월 시행된 시행령 제57호는 이런 구조를 제도적으로 구체화했고, 참여 대상도 확대했다. 과거에는 월평균 50만킬로와트시(㎾h) 이상의 대형 소비자만 참여 가능했는데, 현재는 20만㎾h 이상이면 참여할 수 있어 글로벌 기업들의 진입 장벽도 낮아졌다.
권기혁 사무소장은 “베트남은 현재 전력 수요와 가격이 모두 빠르게 오르고 있는 상황”이라며 “D.PPA는 수요자 입장에서 전력 비용을 장기적으로 고정할 수 있고, 공급자 입장에선 안정적인 수익구조 확보가 가능해 양측 모두에게 경제성이 있다”고 했다.
티엔장(베트남)=고은결 기자




